아름다운 일몰과 칠흑 같은 밤안개..숲길에서 나를 찾듯
얼마 전 올해 첫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봄꽃 구경을 위한 여행을 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최근 흐름이 된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라이프를 실천할겸 학생들의 여름방학과 직장인들의 휴가철 성수기를 피하고 최근 체력도 고갈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었죠.
관광보단 여행을, 이곳저곳 다니기보단 한 장소에 오래 머무는 등 게으른 탓과 마치 별장처럼 단골 게스트하우스(이하 게하)가 있다는 게 안심이 돼 무작정 여행을 결정하고 숙소와 항공권 예약을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책 한 권을 정독하겠다는 목적 아래 게하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아름다운 일몰과 천연 원시림인 곶자왈, 제주 오일장 등을 둘러보며 오래 머물러도 눈치가 보이지 않고 바다가 보이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4박 5일간 여행을 했죠.
물론, 장마 기간이라 햇볕을 만나기가 쉽진 않았지만 다행히 일기예보와 달리 아열대성 기후 탓인지 밤새 내리다가 아침이면 비가 그쳐 역시 '여행은 일단 떠나고 볼 일이다'라는 걸 느끼게 했죠.
해변에서 구름에 가린 일몰의 장관에 경탄하기도 했지만, 일몰을 보고 나서 혼자 게하로 돌아오는 길은 왕가위 영화의 미장셴을 연상시켰어요.
분무기를 틀어놓은 듯 해안가로부터 올라오는 물안개로 인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며 무섭기까지 한 자연의 양면성을 느꼈습니다.
마치 '인간의 마음으로 한 치 앞 날씨도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제주도에서 늦은 밤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가급적 삼가라'는 대자연의 경고처럼 들렸다고 할까요?
또한, 곶자왈이 목초가 풍부한 탓에 소의 방목지로도 활용됐던 사실을 알게 됐고 산책로에서 소 떼를 만나기도 했는데요, 올 초 관람했던 환상숲 곶자왈과 달리 화순 곶자왈은 천연 원시림 상태로 잘 보존돼 있고 청명한 새소리를 들을 수 있으나 인적이 너무 드물고 구릉지에 위치해 주의가 필요해 보였어요.
비가 내린 탓에 미끄럽고 황톳길이 푹 꺼지기도 하는 등산로를 연상시키는 산책로가 후덥지근 한 날씨와 어우러져 땀을 많이 흘리게 만들었죠.
특히, 악천후 때는 지난 밤 해안가의 물안개처럼 습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에도 덤불을 원형으로 한 곶자왈의 특성상 내부는 덥기도 하고 같은 듯 다른 길을 반복하는 숲길에서 길을 잃을 우려도 있어 자연이 얼마나 무섭고 경이로운지 깨닫게 합니다.
제주도를 찾는 여행객들이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자는 욜로 라이프를 실천한다면, 현지에서 머물렀던 하랑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을 비롯해 사장님 소개로 찾은 카페 사장님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덴마크어로 안락함, 아늑함을 뜻하는 말로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을 일컫는 '휘게(Hygge)'라는 트렌드를 실천한 것 같았어요.
바다 전망이 좋은 카페, '카페 콜라'는 제주 한림읍 해안가에 위치한 핫플레이스인데요, 사장님은 "12년간 전 세계를 다니며 코카콜라 관련 소품과 판촉물 등을 전문적으로 수집했던 사람이 카페를 하게 됐다"며 한 분야의 취미와 몰입이 전하는 즐거움을 전파했어요.
모슬포항 부근, 대정오일장에서 랜드마크가 된 하와이안코나커피 라는 간판이 적힌 '나비 정원'은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예멘 모카와 함께 세계 3대 커피 원두 원산지로 하와이에 부속된 섬 코나에서 재배되는 유기농 커피 핸드드립 전문 카페입니다.
손님의 취향별, 건강 상태에 따른 다양한 음료를 제공하는데요, 카페 뒤 아름드리 정원에 새겨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은 이 카페의 지향점을 대표합니다.
"5초 만에 뚝딱 내려지는 속도의 경제, 상업용 브랜드 커피와 달리 커피를 내리는데 7~8분의 기다림과 여유가 요구되는 핸드드립 커피를 고수했다"는 카페 사장님의 철학은 여행객에게 여유로운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려는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따스해집니다.
일간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정여울 작가도 최근 칼럼에서 "‘타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판단하고 내가 창조하는,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만 알면 된다"며 욜로와 휘게라는 라이프 트렌드를 설명했어요.
여행 기간에 게하에 함께 머무는 여행객 가운데 제주도 올레길 코스가 있는 오름을 하루에 몇 개씩 다니겠다는 계획도 들었는데요, 기후가 변화 무쌍한 제주도는 넓어서 특정 지역을 정하고 관광이란 강박에서 벗어나 현지인들에게 조언받아 나만의 속도로 여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
From Mornin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