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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_1219. 스크린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

평온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지혜 성찰

 

최근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 탓인지, 계절 탓인지 주변에 위독하거나 세상을 달리 했다는 어르신들의 부고가 들려옵니다. 얼마 전 영화배우 김주혁의 교통사고나 인기 아이돌그룹 멤버의 사망 소식 등 죽음은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안방극장에서도 올해는 화제작 <도깨비>가 죽음과 윤회 등 동양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현재의 삶을 성찰케 하며 상상력 넘치는 판타지에 매료케 했다면, 최근 방영 중인 KBS 수목드라마 <흑기사>는 즉흥적인 만남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한 남자의 순애보를 판타스틱하게 그려냅니다.

 

죽은 자가 이승에 머무는 49일간의 환생 이야기를 소재로 한 판타지 드라마가 잇따라 방영되고, 지난주 말 노희경 작가가 쓴 tvN 4부작 드라마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죽음을 앞두고 서로에 대해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하며 가족과 인생의 의미를 성찰케 했죠.


 

극장가에서도 죽음을 소재로 한 사후 세계를 그려낸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할 예정인데요,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이 이번 주에 개봉하고, 내년 오스카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오르며 지난 3주간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던 픽사의 영화 <코코>는 서로 다른 방식의 상상력과 세계관으로 사후 세계를 그려내며 우리에게 죽음의 사유를 통해 인생을 성찰케 합니다.

 

특히, 영화 <신과 함께>는 내년에 속편이 예정된 2부작으로, 원작 웹툰과 캐릭터 설정을 바꿔 연말 극장가에서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가족 관객에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용화 감독은 마치 사후 세계를 소재로 한 법정 드라마처럼 인간이 죽은 후 49일간 서로 다른 자연적 속성을 지닌 7개 지옥에서 심판을 받는 과정을 완성도 있는 CG VFX 기술로 구현해냅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가학적인 폭력으로 인한 관심사병의 총기 사고 등 일간지 사회면을 가득 채웠던 극적인 사건 사고들을 에피소드로 활용해 액션, 스릴러, 추적극 등 요소를 더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의미 있는 시작처럼 다가오고 원작 웹툰에서 전하는 용서와 신의라는 주제 의식을 판타지 드라마라는 범주에서 풀어내는 것 같아요.


지난주 말, OBS의 영화음악 프로그램 <전기현의 씨네뮤직>에서도 영화 속 '마지막 배웅'을 테마로 일본 영화 <굿, 바이>, 영국 영화 <스틸 라이프>, 한국영화 <행복한 장의사> 등 죽음과 인생을 성찰케 하는 세 편을 소개했는데요.


누군가를 멀리 떠나 보낸다는 건 말 못 할 슬픔을 동반합니다. 함께 했던 추억, 더 잘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 다시는 사랑을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 등 복잡한 정서가 뒤섞여있어요.


장례는 이승에서 치르는 소중한 사람과의 마지막 이별이지만, 사후 세계로의 새로운 여행을 축복하고 배웅하는 의식으로, 나라마다 문화적인 그 여행이 즐겁고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겁니다.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영화 <굿, 바이>는 죽음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과 남겨진 마음을 달래고 위로하는 마음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작품이죠.

도쿄의 오케스트라의 단원인 주인공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는 악단 해체로 인해 해고되면서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 분)와 함께 고향에 돌아와 망자를 수습하고 꾸미는 납관 도우미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은 고인을 아름답고 생기있는 모습으로 꾸미는 베테랑 납관사의 염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정을 찾아가지만, 아내마저 죽음의 그늘에 머무는 일에 두려워 불결하다며 만류하고 떠나게 돼요.


모두가 기피하는 일이었지만 일과 삶에 집중하는 다이고는 첼로를 켜듯 섬세한 손길로 고인의 모습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면서 그들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배웅합니다.

아내도 임신해 그의 곁으로 돌아오지만,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다시 찾아올 용기가 없어 평생 떨어져 살던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접하며 일상을 뒤흔듭니다.



원망했지만 그리웠고, 미워했지만 차마 지우지 못했던 아버지를 염습하면서 가슴 벅차도록 행복 했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당시에 아버지에게 건넸던 조약돌을 손에 쥔 채 영면한 부친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이별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굿, 바이>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아름다운 배웅으로 승화할 수 있다고 전하면서 지난 2008년 8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어요.


주인공이 아버지를 직접 염습하는 장면에서 영화음악가 히사이시 조의 'Memory'가 흐르는데요, 마지막 배웅에서 씻김굿처럼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진심이 담기 서정적인 선율은 망자의 영면을 기원하는 것은 물론, 남겨진 이들에게도 힐링을 선사하는 것 같아요.


  

베니스영화제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영화 <스틸 라이프>의 주인공 존 메이(에디 마산 분)도 가족을 대신해 고독사한 무연고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구청 공무원으로 추도문을 쓰고 장례식에 혼자 서서 22년째 단조로와 보이는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예산 낭비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고 통지를 받고 자신의 아파트 건너편에 살던 무연고자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맡게 됩니다.


가족과 친구도 없이 고독사할지도 모를 불안감 때문이었을까요, 주인공은 무연고자와 인연이 있던 사람을 찾아 나서며 그에 대해 알아가게 되죠.

동료를 위해 투쟁할 줄 안다는 것과 부친과 연락을 끊고 살던 딸 켈리(조앤 프로갓 분)로부터 공수부대 참전용사였고, 전쟁 트라우마로 거리의 노숙자가 됐다는 말을 듣게 되고 절친을 떠나보내는 사람처럼 의욕적으로 좋은 묘비와 관, 전망 좋은 묘지까지 직접 고릅니다.



켈리와의 마음은 뒤늦은 사랑의 설렘까지 느끼게 하며 "시간이 많다"고 헤어지지만, 너무도 허무하게 불의의 사고로 본인 역시 아무도 찾지 않는 무연고자로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켈리조차도 연락이 닿지 않고 쓸쓸하고 외로운 그의 장례식과 인부들이 떠난 묘지엔 아무도 없지만, 묘지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죠.

엔딩 장면은 아마도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남아 오랜 여운을 선사하는데요, 존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기억한 영혼들이 그를 지켜주는 것이죠.


무색무취한 인생에 대한 냉소와 찬란하고 영롱한 온기가 공존하는 사유를 전하는 영화 <스틸 라이프>는 불의 사고, 가족의 비극 등 기막힌 일이 닥쳐도 삶은 지속한다는 보편적인 진리 속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기묘한 성찰과 따스한 위안이 돋보이며 단조롭고 공허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영롱해질 수 있다는 성찰을 전합니다.


방송 DJ 전기현은 이 작품의 미덕을 "죽음과 기억을 바라보는 침착하고 절제된 시선에 있다"라고 전하며 "우리 중 '누구도 함부로 잊혀도 되는 쓸모없는 인생은 없다"라고 덧붙였어요.


주인공이 무연고자의 과거를 찾는 여정에서 흐르는 작곡가 레이첼 포트만의 테마곡 'Still life'는 에디 마산의 고독이 체취처럼 배어 나오는 연기와 어우러지며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장문일 감독의 영화 <행복한 장의사>는 서로 다른 욕망으로 시골 장의사가 된 세 청년의 험난한 장의 수업을 유쾌하게 그려내며, 슬픔 만이 이별의 무게를 견뎌내는 방법이 아님을 '낙천 장의사'라는 이름처럼 밝고 경쾌하며 역설적인 웃음으로 풀어냅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한심한 청춘들은 시골 장의사에서 10년째 장례 한번 치르지 못하고 의욕을 잃고 지쳐 있던 중 동네 주민들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장 노인(오현경 분)은 손자 재현(임창정 분)이 자신의 마지막 배웅을 해주길 바라면서 장의 수업을 하다가 진짜 장례를 치르는 일을 맡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도 고독사한 노인을 장례를 치르면서 '훌륭한 장의사는 몸뿐 아니라 고인이 가는 마지막 배웅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장 노인의 가르침이 활기를 띠다가 어느 날 옆집 소녀의 익사 사건은 세 청년에게 죽음을 대하는 고통과 슬픔을 체험케 하며 성장통을 조명합니다.



철구(김창완 분)와 대식(정은표 분)은 떠나고 어릴 적부터 연정을 품었던 꽃집 처녀 소화(최강희 분)의 바램처럼 할아버지의 곁에 남게 된 재현은 잇따라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죠.


소화의 주검을 바라보는 재현은 후회와 자책이 섞인 미안한 마음과 함께 미처 고백하지 못한 사랑을 편안하고 아름다운 여정으로 떠나보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는데요, 마지막 답례를 하듯 국화 꽃잎이 되어 밤하늘에 흩날리는 고인의 영혼이 그를 위로합니다.


재현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고, 자신이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매일 꿈속에서 만난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읊조리며 주제의식을 전합니다.


영화음악가 김홍집이 작곡하고 가수 노영심이 가사를 붙인 영화의 테마음악 '이제는 쉴게요'는 "이제는 갈래요. 슬픈 건 아니죠. 다음에 만나면 우리 크게 손짓해요"라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어린이 합창단의 화음이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에 슬픔에 젖은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일본의 문화사를 따르듯이 1인 가구의 증가와 전통적인 가족주의가 해체되어 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언제 닥쳐올  지 모르는 죽음을 꽃이 지천으로 핀 야산, 노을이 아름다운 강처럼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여정으로 여긴다면, 두려움과 슬픔, 고통이 없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Fom Morni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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