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외딴 골목길 한쪽 다리를 다쳐 줄에 묶여있는 강아지, 애처롭게 바라보는데 외면할 수 있을까. 만약, 그 앞을 지나던 당신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과거의 강력반 형사와 현재의 수사팀 프로파일러가 의문의 무전을 교환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려낸 드라마 <시그널>에서 장기미제 사건 전담수사팀이 맞게 되는 세번째 에피소드, 홍원동 연쇄살인사건의 전말이다.
장기 미제사건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은 사건이 진난 10년, 30년에도 고통과 슬픔 속에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정작 권력의 비호 아래 죄책감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데 대한 공공의 분노를 일으켰던 것이 이 드라마가 화제를 모은 이유다.
극 중 이 불쌍한 강아지는 범인이 희생자를 유사한 방식으로 유인하는 범행 도구로 사용된다. 이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좁은 골목길에서 이어폰을 낀 채로 선뜻 걷지 못할 듯하다.
일종의 '범죄심리학' 개론처럼 다가오는 이 드라마에서는 살인범이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소통이 단절되어 이어폰을 낀 채로 귀를 막고 다니는 부녀자들을 타깃으로, 수 차례의 납치, 살인을 자행한다.
특히, 범인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편의점에서 만난 부녀자들과 한 두 차례 시선을 맞추고는 결국 강아지를 미끼로 도움을 청하고, 등을 돌린 부녀자들을 검은 비닐봉지로 덮어 씌워 기절시킨다.
이 장소는 동네 슈퍼나 마트와 달리, 타자에 무관심한 공간으로 김혜수와 이제훈 등 형사들이 주목했던 희생자들의 동선 중 교차점이기도 하다.
손이 결박당한 채 검은 봉지를 뒤집어쓴 피해자들은 극도의 공포감과 불안을 나타내는데, 이는 범인이 유년시절 우울증을 앓는 모친으로부터 학대받은 방식 중에 하나로, 그는 정서적 교감이 없는 관계의 왜곡이 낳은 괴물이었다.
특히 형사 지망생 순경 차수연(김혜수 분)은 선배인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의 사건 해결을 돕기 위해 사건이 발생한 지역 피해자의 동선을 따라 걷다가 앞선 피해자들처럼 편의점에 들러, 범인과 시선을 맞추게 되고, 강아지로 유인해 파놓은 덫에 걸려들어 죽을 고비를 맞이한다.
하지만 머리에 검은 봉지를 쓴 수연은 범인이 자신을 결박해놓고 자리를 비운 사이, 탈출을 시도하고 방향감각을 잃은 채 범행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범인과 다시 부딪힌다. 하지만 뒤이어 쫓아온 이재한의 고함에 물러나고 극적으로 이재한과 만나 목숨을 건진다.
이후로 수연은 동일한 범행 수법의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경찰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외상 후 장애(트라우마) 증상을 나타나게 된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거리에서 사회적 약자를 돕는 등 남의 일에 대한 과도한 간섭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이재한 형사의 열망이 전해졌을까, 검은 비닐봉지에 머리가 씌워져 쌀포대와 돗자리 등으로 시신을 포장해 유기하는 범인의 행적은 장기 미제사건 전담 수사팀에 의해 살인범의 집이 확인되면서 연쇄살인범이 깔끔하게 모아놓은 피해자의 유품 등이 결정적 증거로 발견돼 범인을 검거했다.
더욱이 과거의 이재한 형사 역시 범행 소굴에서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수연의 행적을 역추적해 범인을 검거하면서, 과거가 바뀌어 현재의 박해영 역시 연쇄살인이 조기에 종료되고 살인범이 치료감호소에 입원해있는 풍경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이 드라마는 기존의 범죄 수사극이나 범죄 드라마와 달리, 사건의 피해자 입장에서 죽음을 기억하고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부의 불균형, 공소시효 만료 등 기회 불평등이 미제 사건을 만든다고 조명하고 있다.
기존 실화 소재의 드라마에서처럼 검사장이나 국회의원 등을 부정부패에 연루된 권력층으로 캐릭터의 설정 방식은 전형적이지만 15년 전후의 상대적 시간을 통해 사건을 풀어가는 김은희 작가의 스토리 전개 방식은 열린 결말로 마쳐 호평을 얻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남긴 사건의 전말과 공포감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줄에 묶인 채 다리를다친 강아지 옆을 지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