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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 불안의 시대, 계급 자본주의의 환멸 응시

[리뷰] 글로 먹고살 수 없을 때 당신의 선택은?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주연배우 루카 마리넬리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 <마틴 에덴>은 20세기 중반 이태리를 배경으로 오직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펜 하나로 세상과 맞선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 이태리의 신흥 거장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미국 출신의 작가 잭 런던이 쓴 동명 소실을 원작으로 하여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예술 영화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에게 수여하는 플랫폼상을 수상하면서 평단에서 더 주목하였는데 불안의 시대, 계급 자본주의의 환멸을 성찰하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마초 기질로 주먹 하나만큼은 최고인 선박 노동자 마틴 에덴(루카 마리넬리)은 상류사회의 여자 엘레나(제시카 크레시 분)를 만나면서 지성과 상류사회에 대해 동경하면서 독학으로 작가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됩니다.


수많은 도전과 좌절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는 것도 잠시, 사회적인 계급의 유리천장을 넘지 못하면서 뒤늦게 다가온 사랑조차도 포용하지 못하고 절망하는 등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가 암울하고 어둡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태리 나폴리의 해안가를 배경으로 엘레나와 인연을 쌓은 마틴은 작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원작 소설에서 여주인공의 이름과 유사한 자신의 멘토 루스로부터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인 사회주의로서 작가의식을 조언받으면서 미디어에 주목받는 작가로 성공하기에 이릅니다.


마틴은 자본가의 권력유지를 목적으로 한 자유주의도 맹목적인 계급 타파를 주장하는 사회주의도 아닌 개인주의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어필하지만 파시즘의 광기가 가득 찬 전쟁의 시대에, 자신이 내놓은 책의 본질에 공감하지 못하고 열광하는 민족과 이를 사회주의자라는 오명을 씌운 언론과 여론에 환멸을 느낀 채 스스로를 부정하기에 이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시를 쓰는 버스기사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패터슨>을 떠올리는 스토리로, 한 남자의 대서사 로망을 그려낸 로맨스 영화라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관을 나서면 인간의 근원적 본성인 생존을 성찰하는 파노라마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까닭은 시대를 초월해 코로나19나 현실을 잠식해버린 오늘날, 고용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프리랜서 시나리오 작가나 브런치에 개인 플랫폼을 갖고 글을 쓰는 작가들이라면 공감될 만한 '글을 팔아 먹고살 수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제기하는 듯했습니다.


극 중의 마틴 에덴처럼 시대가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알아준다면 그나마 희망을 품고 위안을 얻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인 문제로 자신의 꿈을 포기합니다.


이러한 지에서 네오리얼리즘 형식으로 양극화된 신자유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왕정 시대의 신분 제도보다 더욱 양극화한 자본주의의 계급화된 환멸을 응시하는 듯합니다.


특히, 기존 상류사회로의 신분 상승을 열망하던 영화 후반부 자신의 멘토, 루스의 선택은 그러한 환멸에 방아쇠를 당겼고 전쟁의 광기가 삼킨 바닷가에서 환영에 이끌려 그가 꿈 꾸던 낙원을 응시한 채 초첨을 잃어버린 듯한 마틴의 시선은 재능 있는 작가를 놓친 시대의 아픔으로 다가와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태리의 알랭 드롱으로 불리기도 했던 루카 마리넬리는 주인공 마틴 에덴 역을 맡아 작가와 신분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문학청년으로 변신해 스크린 위에 시대 속의 아픔을 아로새겨 넣는 미친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불안의 시대, 계급 자본주의의 환멸을 응시하는 영화 <마틴 에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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