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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갔어 버나뎃' 열정과 용기, 관계 트라우마 처방전

[영화리뷰] 내 안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가는 여정



오스카의 단골 후보로 거론되는 명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우울, 코믹, 광기의 변화무쌍한 캐릭터 3종 세트를 선물 받은 듯한 영화가 있습니다.   


다소 소재가 독특해 보이는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은 건축계 아이콘이던 화려한 과거와 달리 가정에 올인하면서 재능을 묵혀 두었던 버나뎃(케이트 블란쳇 분)의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낸 다양성영화입니다.


<비포 선 라이즈> 시리즈와 <보이후드>를 연출한 리처드 링글레이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케이트 블란쳇은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블루 재스민> 이후  다시 한번 우울증을 호소하는 캐릭터로 변신해 주목됩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중학생이 된 딸의 독립을 앞에 두고 일종의 '번 아웃'에 시달리며 불면증과 외부와 소통을 단절하고 쇼핑에 중독되는 등 관계 트라우마가 우울증으로 발전하고, 국제 범죄에 연루돼 자신이 의존해왔던 스마트폰과도 결별하는 건축가 버나뎃으로 변신해 내년도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활동이 제한된 현실처럼 영화 속 버나뎃 역시 새로 바뀐 환경과 갈등하거나 적응하는 대신에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 온라인 비서 '만줄라'에 기대어 쇼핑은 물론 내면의 불안감과 분노까지 표출합니다.


하지만 버나뎃은 선뜻 밖으로 나서지 못해 딸과의 남극 여행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되고 외지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마을 공동체에는 문제적 이웃으로 낙인찍힌 데다가  FBI 수사관의 방문으로 그의 친절한 온라인 비서의 실체가 신원을 도용하는 국제범죄단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남편 엘진(빌리 크루덥 분)는 정신과 전문의의 왕진에 더해 버나뎃에게 정신과 병동에서의 요양을 권고하지만 정작 그를 치유하는 것은 인공의 흔적이 드문 대자연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쾌한 캐릭터와 기발한 스토리로 독자를 사로잡은 마리아 샘플이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전 세계 30개국에서 출간, 다수의 미디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베스트셀러로서의 저력은 영화 제목처럼 버나뎃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가족의 뜻하지 않은 남극 여정이 시작되면서 나타납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 공동체가 무력해지면서 모든 것이 일상을 되찾은 이후에도 우리는 관계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 트라우마를 풀어갈 해결책으로 영화는 무언가에 몰입하는 열정과 결단을 동반한 용기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극 중 무일푼으로 남극으로 여정을 떠난 버나뎃은 일상에서 벗어나면서 마치 날개를 크게 펼친 독수리처럼 비상하듯 생기를 찾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마주하고 여정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장애물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갑니다.



남편의 선택과 달리, 극 중 유일하게 버나뎃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딸, 비(엠마 넬슨 분)를 통해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삽입된 영상에서는 스타 건축가로서 빛났던 버나뎃의 모습을 환기시킵니다.


그가 이웃과 갈등하는 것이 가사와 육아, 출산이란 전형적인 삶이 만들어낸 산물이며, 영화 속 건축가 선배 폴(로렌스 피시번 분)의 조언처럼 자신의 열정을 발휘하는 창작이야말로 그의 트라우마를 이겨낼 처방전임을 보여줍니다.


버나뎃의 이웃과 불화가 지속되면서 그를 정신과 치료와 병동에 요양하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보편적 상식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가 가족이나 직장, 사회 공동체 속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상식이란 보편성이 때로는 얼마나 커다란 오류를 일으킬 수 있는지 경고하는 것 같았습니다.


버나뎃을 찾아온 정신과 전문의도, 소통에 의한 합의가 아닌 일방적인 결정을 할 뻔한 남편도 자칫 몰상식한 사람으로 남을 뻔했으니까요. 연륜과 경험의 우위에 따라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일컫는데요,  가장 최선의 처방전을 낼 수 있는 건 자신일 것입니다.



버나뎃뿐 아니라, 힘든 여정 속에서도 딸과 함께 창작에 몰두하는 아내에게 응원을 보내는 엘진의 변화 역시 쉽지 않은 용기처럼 다가왔습니다.  이 작품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엔딩 크레디트와 더불어 에필로그 형식으로 연출된 스펙터클한 남극 기지의 장관입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존재감은 영화 속에서 단연 압권입니다. 관계에 힘들어하는 히스테릭한 모습부터 새로운 여정에 상기된 얼굴,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기까지 <블루 재스민>보다 더욱 다채로운 캐릭터로 진화한 것 같습니다.


번 아웃을 극복하고 대 자연 속에서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쏟아내는 버나넷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실패를 경험했거나 삶의 정체감이나 무력감에 빠져 있는 분들에게 이 작품의 관람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열정과 용기라는 관계 트라우마 처방전을 조명한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이었습니다.   


/ 힐링큐레이터 시크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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