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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 위기 속 아버지상의 복원

[리뷰]키워드로 살펴보는 '승리호' 다섯 가지 관람 포인트



두 번의 개봉 연기 끝에 넷플릭스를 통해 <승리호>의 베일이 벗겨졌습니다. 오는 2월 5일, 넷플릭스의 스트리밍을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 사용자에게 공개되는 영화 <승리호>는 마블코믹스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떠올립니다. 다만, 정통적인 SF 우주영화 라기보다는 B 급 감성을 더한 한국적인 SF 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래의 우주 역시, 오늘날과는 다름없이 선택받은 5%의 시민을 제외한 사람들은 황폐해진 지구에 남거나 우주쓰레기를 수거하는 우주 노동자로 전락하였습니다. 영화가 던지려는 메시지를 다섯 가지 관람 포인트와 함께 풀어내보려고 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한국적인 공상과학 영화


영화 <늑대인간>을 연출했던 조성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2092년의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스페이스 오페라'로, 환경 오염으로 인해 황폐해진 지구를 대신해 우주 식민지 시대를 사는 인간의 모습을 색다른 상상력으로 그려냈습니다.


영화는 장대한 우주 서사를 써내려가 듯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대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거액이 현상금을 노리고 이를 쫓는 정체 모를 집단과 위험한 거래를 계획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재로 택했습니다.


생명의 나무, 슈퍼 플랜트를 재배해 살기 좋은 행성으로 이주를 도모하는 우주 식민지 UTS(Utopia above the Sky)의 통치자 설리번의 화성 이주 선포식을 사흘 앞두고 이 행성 주변에서 시민으로도 살 수 없으며 우주 쓰레기 수거 노동자로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아웃사이더 한국인 4인방이 우주선 승리호와 더불어 펼치는 우주 모험을 그려냈습니다.


전직 UTS 기동대 에이스 출신으로, 작전 중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겪고 모든 것을 빼앗긴 후, ‘승리호’의 파일럿이 된 태호(송중기 분)를 중심으로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리더 장선장(김태리 분), 엔진실을 맡은 터프가이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분), 수다스러운 원삿 원킬의 작살 로봇 업동이(유해진 분) 등이 팀워크를 이룹니다.




우주로 확대된 환경 문제, 이야기의 시작


코로나19로 다소 경각심이 줄어들긴 했지만 인체에 유해한 미세먼지와 산업화로 인한 환경 오염은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SF 영화에서 어두운 미래로 그려집니다.


<승리호>의 공간적 배경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기오염으로 멸망한 지구예서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의 이야기를 그려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드나이트 스카이>처럼 영화 속 지구도 더 이상 황폐해져 인간이 살 수 없게 됐습니다.


그로 인해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영화 <헝거게임>에서처럼 자본과 권력, 미디어를 장악한 자들에 의해 사실은 왜곡되고 또다시 계급 자본주의의 세계가 지속됩니다.


주연배우였던 갤 가돗이 직접 제작에 참여했던 DC코믹스의 영화 <원더우먼 1984>에서 빌런 맥스처럼 극중 탐욕이 가득한 설리번 역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소폭탄이 내재된 휴머노이드 로봇 도로시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행성 주변에서 살아가는 비시민들의 정서적인 고향인 지구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화성으로 이주시키면서 권력과 부를 독점하려는 그의 속내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에 빗댄다면 생계를 위해 보유한 승용차에 해당되는 우주선을 수리하고 벌금을 내느라 살수록 빚이 늘어나는 우주 노동자들은 극중 태호처럼 우주선 내의 공용 자산을 빼돌리기도 하고 여가시간에는 도박으로 시간을 소일하며 시스템이 통제하지 못하는 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황폐해진 지구로부터 위성 궤도에 흘러드는 우주 쓰레기까지 영화에서는 환경이란 문제를 우주로 확대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환경과 미디어를 무기로 탐욕을 채우려는 권력자와 자신들의 터전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내려는 아웃사이더 집단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노봇, 트랜스 휴머니즘의 시대


일상적인 쓰레기 수거를 하다가 청소차에서 도로시를 발견한 승리호 4인방은 현상수배된 대량살상무기로, 아이이 형상을 한 도로시를 피해 숨바꼭질을 하듯 이러 저리 피해 다니고, 여느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얼굴로 대원들을 쫓아다니는 도로시의 본래 이름이 꽃님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아이와 함께 발견된 철제 박스와 학생 가방에서 나노봇에 관한 연구 자료와 아이와 통화한 흔적이 있는 대포폰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활기를 띱니다.


기존 할리우드 SF 영화와 달리,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가 아닌 나노봇이 등장합니다. 최근 각광받는 바이오산업처럼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이 의학과 만나 생명 연장의 꿈과 불치병의 치유라는 인류의 과제를 풀어낼 실마리로 영화는 나노기술을 소개합니다.


딥 러닝, 인공지능과 더불어 미래를 혁신할 4차 산업 혁명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진화된 생명과학 기술인 트랜스휴먼 기술입니다.  


트랜스 휴머니즘이란,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사상과 능력치를 바꾸는 지적, 문화적 운동을 일컫는데 영화 속 설리번은 이를 시스템 통제에 활용해 시민들의 생각을 조종하고 폭력과 강압에 의해 지배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승리호 대원들이 거액의 현상금을 노리고 만나게 되는 강현우는 나노봇을 통해 딸의 불치병을 치유하는 동시에 향후 전개될 스토리에서 복선을 깔아 둡니다.


나노봇은 인체의 혈관에 투입해 불치병을 치유하기도 하고 이를 통해 마치 안드로이드 로봇보다 더 인간스럽게 만들지만, 이름 모를 우주의 어떤 곳에서는 나노 입자처럼 떼를 지으며 생명체를 위협하기도 하면서 영화에서 중요한 소도구로 등장합니다.




우주 개척 시대의 한국인, 보통 사람 히어로


이번 영화에서 한국인들은 커다란 우주 속에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10개월 전 400만 뷰를 기록했던 'Korea, Wonderland? 참 이상한 나라' 영상에서처럼 위기 시마다 발휘되는 한국인 고유의 특성이 이번 영화 <승리호>에서도 드러납니다.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사는 승리호 4인방은 자신의 문제로 인해 무관심하다가도 도로시, 아니 꽃님이 등장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되새기는 태호를 비롯해 부서지고 깨져도 시스템 통제에 저항합니다.


또한,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고 함께 모여 찌개에 밥을 먹고 여가 시간에는 고스톱이나 게임을 즐기거나 우주선을 정비하고,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는 우주선 사용료로 쌓인 빚을 청산해나가는 오늘의 한국인의 모습과 다름없는 보편성을 지녔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한국인 특유의 적응력과 생활력도 등장하는 캐릭터 속에 녹여 냈습니다.


특히 권력이나 부에 매몰되지 않는 것은 물론 한국 영화 속에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왔던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가족이나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희생을 아끼지 않는 선택과 최근 종영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한 에피소드처럼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는 가만있지 않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활용해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끌어갑니다.


아마도 인류의 멸망이 예고되더라도 부모들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아이를 살리려 할 것이고, 위기의 순간에는 공감과 연대의식을 근간으로 공동체 정신을 다시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한국적인 정서는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아닌 주인공들이 영화 후반부에 극적인 위기의 돌파구로 작용하며 당초 우려되었던 신파적인 감성과 캐릭터들의 감정 과잉을 막는 데 기여하는 것 같습니다.




설날 연휴 겨냥 '아버지'라는 이름의 복원


마지막으로, 이 영화 속엔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상을 복원하는 것 같습니다. 극중 주인공인 태호도 자신의 친 자식은 아니지만 기동대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몰래 데려온 순이라는 딸을 키우는데, 아빠처럼 홀로 돌보는 육아 스토리는 정겹습니다.


이후에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한 채 도박장에서 글 공부를 하는 순이를 외면하다가 아이를 잃어버린 후 죄의식에 쌓여 회한의 세월을 보냅니다.


오늘날의 아빠들도 이와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급증하면서 육아휴직을 통해 아빠가 육아를 분담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정에서조차 아버지의 위상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이의 탄생과 유아 때는 엄마 이상으로 많은 애정과 사랑을 쏟아붓지만,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외부 환경과 혹독한 조직 사회에서 길들여지다 보면 가족보다는 일에 매몰돼 아이에게 소홀하게도 됩니다.


특히 대부분 엄마들이 아이들의 양육과 공부를 담당하면서 만약 아이들이 더 성장하며 사춘기를 맞게 되면 아빠와 아이들과의 관계는 더 소원해지기 마련입니다.


극중 태호는 꽃님이를 만나면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 사람이 되겠다'라는 순이와의 약속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아빠, 강현우가 왜 도로시라 일컬으면서까지 딸에게 나노봇 기술을 사용했는지 성찰하게 합니다.


강현우의 딸에 대한 부성애는 태호의 트라우마를 환기시키고 설리번이 테러 단체라 일컫는 검은 여우단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꽃님이를 돌보고 놀아주는 승리호 대원들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설리번의 폭주와 로봇 기동대의 총구를 피해 도로시를 살려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태호의 모습은 딸을 업은 아빠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딸에 대한 회한 가득한 속죄와 함께 개인의 사적인 도구가 아닌 다음 세대를 이어갈 생명력을 불어 넣는 아버지의 따스한 마음을 복원하려는 주제의식과 결부시킨다면, 영화 초반부에 생명의 나무를 내세운 설리번의 선전 동영상도 역설적인 복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설날 연휴를 앞두고 아버지를 생각게 하는 가족영화이자, 위기 속에 아버지 상의 복원이 엿보였던 SF 영화 <승리호>였습니다.

/소셜필름 큐레이터 시크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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