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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서른', 나를 포기하지 않는 상하이의 사랑법

[리뷰] QR코드와 위챗으로 디지털화된 중국판 '미생'ㅈ


오래전 직장 생활을 할 당시 업계 담당자들 간 직무에 대한 노하우를 전하고 다양한 업계 정보를 교환하기 만들었던 오프라인 모임에서 이제 막 서른의 나이가 되었던 워킹맘이 있어 서른 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노래방에 함께 가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떨리고 울먹이며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서른이란 나이는 남성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버텨나가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인생에서 하나의 관문과 같습니다. 인격체로서 홀로 서기를 본격 시작하는 성인식 통과의례처럼 다가오는 '서른 살'을 모계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중국은 더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13억이 넘는 인구 탓에 한 때 가구당 1명으로 출산을 제한했던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 앞당겨지는 결혼과 이혼, 출산과 육아 등 다양한 고민은 서른 살의 여성에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서른 살이니까 괜찮아..삶에 온기를 전하는 위로



주로 영화와 국내 드라마만 봤던 넷플릭스에서 <달콤한 나의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三十而已)>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세 여성이 매우 희망적이었던 서른 살의 나이에 맞이하게 되는 역경과 사건 속에서 나를 포기하지 않는 상하이 식의 사랑법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할 때도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알아야 해. 절대 상처받지 않게 말이야



지난해 7월부터 상하이의 동방위성 TV와 텐센트 비디오를 통해 방영됐고, 넷플릭스에서도 '인기 중드'로 핫하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세 여성의 이야기 외에도 극 중 배경이 되는 상하이의 모습은 최근 세계 경제의 양강 구도를 이끌어낸 디지털화된 중국의 변화상을 경험케 합니다. 한글 제목 역시 '서른 살이니까 괜찮아'라는 톤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이들을 위로하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서울 이상의 회색 도시, 상하이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는 현재 코로나19로 힘겨운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우리에게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고 슬기롭게 이겨나갈 힘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담백한 서사와 에필로그 형식의 노점상 가족 이야기


특히 국내 드라마와는 달리, 거의 매회마다 소제목을 띄워 상하이 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가족의 일상을 에필로그처럼 덧붙여 대조적으로 그려냈습니다.   


45분 남짓한 러닝타임으로 43부작의 장편드라마임에도 우리나라의 주중 연속극이라기보다 주말드라마 성격이  짙은 것 같습니다.


국내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떠올리는 중국의 최상류 층이 등장하는 데도 그 흔한 출생의 비밀이나 막장 설정은 걷어내고 담백한 서사로 이야기를 끌어가 중년층보다는 또래에 공감할 만한 20-40대 시청자들에게 몰입감을 더할 것 같습니다.



결혼-이혼-비혼, 서로 다른 처지의 서른 살 동갑내기



남편과 불꽃놀이 디자인 회사를 공동 창업 후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던 전업주부 구자(TongYao 분)는 아이의 미래와 남편 사업의 영업을 돕기 위해 상류층을 동경하다가 잇따른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지만 갑자기 나타나 남편의 주변을 맴도는 연하녀로 인해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자유의 몸이 된 게 최고의 서른 살 생일선물 아니겠어?



선을 봐서 일찍 결혼한 샤오친(MaoXiaotong 분)은 회사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핵인싸 사원으로 지내다가 아이를 유산한 후 남편과 이혼하고 연하남의 애정공세를 받지만, 부모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는 전 남편도 신경 쓰입니다.




마지막으로, 명품 매장에서 영업력이 우수한 슈퍼바이저로 인정받은 왕만니(JiangShuying 분)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상하이 외곽으로 이사하고, 회사의 포상 휴가로 떠난 크루즈 여행에서 만난 상류층 썸남과 연애를 이어가지만 알고 보니 비혼 주의자라던 썸남은 사실혼이었다는 사실에 좌절합니다.



정체성 성찰 속에 디지털화된 중국 사회의 이면 조명



하지만 지난 20회까지 이야기를 봤을 때, 이들 세 여성은 벼랑 끝에 몰렸다고 생각되었을 때 자신을 놓지 않는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 세 여성이 나눈 대사 속에서 미디어와 여론의 뭇매 속에서도 조직 사회에서 단단히 발을 디디고 설 수 있는 용기가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디지털화된 중국 사회의 이면을 조명하는데요, 위챗과 QR코드로 속도감 있게 관계망을 확장하고 송금과 결제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즈니스에서도 종이 명함 대신에 메신저를 추가하고, 우리나라에선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공용 장소 입장 시 개인 식별정보로 일상화된 QR코드가 송금과 대출은 물론, 노점삼의 충유빙 구입할 때 이용되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30년을 살면서 이제야 자신을 좀 찾은 듯해. 다른 사람을 책임질 생각을 하기 전에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해.



우정과 연대, 정글같은 도시에서 버텨낼 힘이 되다


서른 살 동갑내기 세 여성의 만남도 극적입니다. 구자와 샤오친은 같은 건물에 집과 회사가 있어 오랜 친구이지만, 자신을 시기한 동료 직원으로 인해 해고 위기에 놓였던 만니는 샤오친에게 도움을 받으며, 동갑내기 친구들의 우정은 정글과 같은 세상 속에서 버텨낼 힘이 됩니다.  마치 직장인의 애환을 그려낸 우리 드라마 '미생'처럼요.


특이할 만한 것은 세 여성에게 가족이란 제도는 비바람을 막아주지 못하지만, 이에 반해 노점상 가족의 힘겨운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건 가족애처럼 보였습니다.

처음 보지만 언뜻 중국 영화배우 장쯔이를 닮은 듯한 동요(TongYao)는 캐릭터 간에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해결사와 같이 등장하는 인물 구자 역을 맡아 안정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커리어우먼 상을 그려냈습니다.





낯설지 않은 귀여운 외모의 모효동(MaoXiaotong)은 러블리한 매력을 발산하면서도 이들의 끈끈한 관계를 이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해줬으며, 장슈잉(JiangShuying)은 화려한 도시 상하이의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해내면서도 절제 속에서 토해내는 내면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세 여성의 자기 성찰과 서로 다른 선택 기대돼


아직 43회까지는 20여 회 방송분이 남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꽌시로 대변되는 중국의 학연, 지연주의가 점차 디지털화되면서 심화되는 가운데, 자녀의 독립적인 생활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부모들의 선택을 볼 때 중국의 전통 가족주의가 해체 위기에 놓여 있음을 성찰케 하고 100세 시대를 내다보는 현대 사회에 마흔,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오십, 육십 등 나이를 앞둔 중년층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반성케 합니다.


 특히, 드라마 전체를 지배하는 세 여성의 연대라는 정서는 우리나라의 막장드라마처럼 위적인 설정이나 무리한 이야기 전개 없이 극 중 주인공들에게 삶을 포기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이 아닌 지혜로운 성찰로 이끌며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상하이의 사랑법을 그려낸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이었습니다.

/ 힐링 큐레이터 시크푸치


p.s. 드라마는 43회차로 종영됐고 필자는 현재 24회차 정주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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