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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기억이냐 슬픔 없는 행복이냐

SF 시리즈 넷플릭스 드라마 <원헌드레드> 리뷰


공상과학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망각'을 대표하는 레테의 강도 그러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망자가 타나도스의 안내로 하데스의 궁전으로 가기 전에 건너는 다섯 개의 강 중에서 '레테의 강'에서 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사망한 영혼들이 저승사자 앞에서 마시는 '천국'이라는 차 역시 이를 비유한 것 같다.


최근 몰입해 보면서 시즌3까지 단숨에 넷플릭스를 정주행 한 미드 <원헌드레드>는 우주 정거장 연합체인 방주에서 살던 100의 청년들이 핵전쟁으로 파괴된 지구에 생존 실험을 위해 보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특히, 시즌 3에서는 인공지능과 생존을 건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도 인간의 자유의지로 살아갈 것이냐,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 고통과 상실감을 망각한 채 행복을 선택할 것이냐는 담론을 묵직하게 내뱉는다.




우주정거장의 권력 다툼에 내몰려 폐허가 된 지구로 내던져진 100명의 청년 수감자들의 서바이벌 어드벤처는 코로나라는 유례없는 전염병 홍역을 치른 우리에게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 물정 모르고 맹랑한 얼굴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어떤 곳을 향할지도 모른 채 낙하선(우주선)에 오르게 되고, 여기에는 방주의 지도자(수상)와 위원들의 자녀도 포함됐다.


지구에서는 하늘인(스카이 크루)이라 일컬어지는 이들 청년은 이후, 방주에서 발생한 문제로 뒤따라 지구에 내려온 어른들과 함께 지구에서 살고 있는 지상인(트리 크루)들과의 전투를 펼치면서 점차 전사의 모습을 띠게 되고 방사능 피폭을 피해 고도의 의학기술을 보유한 웨더산의 지상인들과 일전을 치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청년들은 절체절명의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연이어 개별 캐릭터의 에피소드를 통해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기르게 되고, 소중한 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상실감에 쌓여 점차 괴물로 변해가며 폭주하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특히, 지상인으로부터 슬픔과 고통을 없애주는 '빛의 도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지구에 내려와 수상직이 박탈된 자하 일행을 통해 발견된 상징이 새겨진 칩을 삼키면서 마치 홀로그램이나 증강현실과 같은 가상 세계에서 지난 기억을 잊고 행복을 찾으면서 이야기는 절정을 치닫는다.


항상, 불로소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고 했던가. 자하는 빛의 도시 시민들을 모으기 위해 다시 하늘인이 거주하는 아카디아를 찾고 지상인 사령관 렉사의 사망과 동시에 무정부 상태의 세계를 자하를 조종해왔던 인공지능(AI) 앨리의 폭주를 통해 얼음왕국의 강경파에게 사령관의 자리를 내주면서 자싱인들 사이에게 '완헤다(죽음의 사령관)'으로 불리는 클라크 일행은 위기를 맞는다.    

  

인간의 감정과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인공지능 앨리는 핵전쟁 직전 우주과학자 베카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 복제형 인공지능이었다는 과거가 점점 드러나면서 이에 사실상 정신을 지배하는 공포정치가 시작된다. 이 부분은 세계사 속에서 나치 등 독재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클라크를 비롯한 하늘인들은 앨리가 전쟁과 폭력으로 몰아넣는 위협적인 존재임을 파악하고 계보를 이을 새로운 사령관을 찾아 나서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지상인들의 세계는 쿠데타에 의해 피로 물든다.



이 작품은 영화 <헝거게임>이나 <다이버전트>처럼 SF 장르로 그룹 간 갈등과 서바이벌을 소재로 몰입도 높은 이야기 전개가 매력적이다. 특히,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인간의 망각 욕망을 주제의식으로 내세우며 기억을 지워버린 후 자유의지를 잃고 기계 소모품처럼 권력자에게 조종받은 채 가족 등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조차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 같다.


아직 코로나가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이 겪었을 고통과 좌절은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고통을 외면한 채 행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당장은 힘들더라도 극 중 캐릭터처럼 생존 방법을 찾고 주변 사람들과 지혜를 모아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가 아닐까.


이 드라마는 시즌 7까지 나왔다고 하여 아직도 정주행 중이다. 두 번쨰 인류 멸망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나가는 지 주목된다. 고통스러운 기억이냐 슬픔 없는 행복이냐, 삶의 태도에 대한 성찰을 전하는 미국 드라마 <원헌드레드>였다.

/소셜큐레이터 시크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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