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17살이 다시 웃었다. 싱가포르에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그때의 미소를 찾아

by 정선미

17살.

멋을 내기보단 교복 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껴입고, 귀찮은 두발 규정에 머리를 싹둑 잘라내고는 갈색 나비핀을 꽂고 다녔다. 우리는 매점 앞에서 , 학교 담을 넘어가서 사 먹은 라면 한 그릇에 행복하고 즐거웠다. 매일같이 웃느라 바빴다.

겁날 것도, 주눅 들 일도 없던 여고 시절.

그 시절, 나는 가장 신나게 웃고, 맘껏 까불 수 있었고, 그렇게 함께한 친구들이 있었다.

2년, 혹은 3년을 매일같이 붙어 지내다 졸업과 동시에 각자의 길로 흩어졌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인연을 놓지 않았다.


함께 대학생활을 공유하고, 취업과 결혼, 출산을 함께 겪으며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살다 보면 멀어지는 친구들이 더 많다지만, 우리는 서로의 생일을 기억했고, 누군가 아프거나 힘들 때면 잊지 않고 안부를 전했다.


그러던 몇 년 전, 내가 제안을 했다.

“야, 우리 모임 통장 하나 만들까? 모아서 언젠가 여행 가는 거야.”

그 ‘언젠가’는 말뿐일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정말로 돈을 모았고, 드디어 2025년.

우리는 17살의 웃음을 가슴에 품고, 친구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로 떠났다.

34년 우정의 첫 해외여행.

여행 가방을 다 챙겨놓고, 남편에게 해야 할 당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렇게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지만,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세은인 잘 지낼 수 있을까?’

남편이 잘 돌봐주겠다고 여러 번 말했고, 실제로 걱정할 만큼 나쁘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내 마음은 쉽게 놓이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세은이를 처음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맡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여행은 내게 ‘도전’이자 ‘용기’였다.

그날 밤, 불을 끄고 누운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설렘과 죄책감, 기대와 두려움이 뒤엉켜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 눈물엔 또 다른 감정도 있었다.

“이제는 나도 나를 좀 챙기자.”

“이 여행을 통해 다시 힘을 얻고 돌아오자.”

그렇게 나는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친구들과 함께 하늘을 날아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친구 남편의 배려로 우리는 호텔 대신 친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친구의 남편과 딸이 방을 내주고, 호텔로 나가준 것이다.

비싼 호텔값 대신 여행 경비에 여유가 생기자 우리는 호사를 누리며 여행을 만끽했다.

현지에 사는 친구 덕분에 헤매지 않고 즐겁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30년 넘는 우정은, 그 자체로 완벽한 여행 가이드였다.

서로에게 싫은 소리 하나 없이, 모든 일정이 물 흐르듯 흘렀다.

언제나 내 곁에서 특별한 말 없이도 묵묵히 들어주고,

함께 밥을 먹고, 맥주를 마셔주던 친구들.

선 넘는 충고도, 간섭도 없이 그저 ‘곁’이 되어준 친구들.

그래서 우리는 여행 중간중간,

“중년이 되어서 이렇게 함께 여행하니, 우리 참 잘 살고 잘 지낸 것 같아.”

하고 자주 자축하며 행복해했다.


오랜 친구가 지속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오랜 친구는 시간이라는 검증을 통과한 관계다.

좋을 때만 함께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모난 시절도, 우울한 시간도

묵묵히 견뎌낸 사람이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하다.

결혼, 육아, 일, 질병, 가족 문제, 이사, 경제적 변화…

이 수많은 굴곡 속에서도 여전히 연락하고,

다시 만나면 어제 본 듯 편안한 사람이 있다는 건

삶이 내게 준 축복이다.

오랜 친구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완벽한 친구’라서가 아니라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편견 없이 바라봐 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삶은 덜 외롭고, 훨씬 든든하다.

예전엔 바빠서 1년에 한두 번 겨우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하나둘 대학생이 되면서 더 자주 연락하고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여행과 이벤트가 기대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보면,

나는 친구들이 모두 멋지게 나이 들어가리라 믿는다.

오늘의 여행을 감사하며,

내일의 우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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