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머리로 살아 본 나의 말들
나의 머리카락은 노란 갈색이다.
(아니 노란 갈색이었다... 슬프지만, 흰머리가 나기 전까지)
“염색한 건가요?”
“아빠가 혹시 한국분이 아니신가요?”
하지만 내 노랑머리는 자연스러운 유전이었다.
작은 오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나에게 ‘사과하지 않는 사회’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졌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저렇게 어린아이 머리를 노랗게 염색을 했나?”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가 혹시 외국 분이세요?”
나의 노랑머리는 아빠에게서 그리고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이었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던 시대, 아빠는 직장생활을 위해 젊은 시절부터 늘 검은 염색약으로 머리를 감춰야 했다. 흰머리가 나기 전부터, 자연스러운 머리색은 세상 앞에 드러날 수 없었다.
나는 평생동안 아빠처럼 머리카락을 검은 염색약으로 바꾸면서 살지는 않았지만 학창시절 동안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 자주 있었다.
두발규제가 엄격하던 1980년대, 완장을 찬 선도부들은 내 머리만 보면 먹잇감을 발견한 듯 달려들었다. 규율 위반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애썼고, 결국 교무실로 끌려가 엄마의 확인 전화를 받아야 했다. 일단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마치 범죄자의 변명이라 여기듯이 신뢰하질 않는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황당한 과정에서 사과를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잔뜩 오해를 해놓고는 “아니면 말고.”
그 시절 나는 알았다. 어른들이 말하는 “실수할 수도 있다”라는 말 뒤에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 시절 완장을 차고 벼슬인 양 후배들을 몰아세우던 선도부들이 사회에 나와서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아랫사람을 제대로 이끌고 가르쳤을까.
아니면 여전히 잘못을 덮고, 사과할 줄 모르는 기성세대가 되었을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그 그림자가 보인다. 후배가 잘못하면 목소리를 높여 가르치려 들지만, 선배가 잘못하면 애써 말을 돌리고 변명으로 덮어버린다. 후배에게는 따끔한 지적을 요구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고개 숙일 줄 모르는 모습.
나는 내 노랑머리처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몰아붙이거나 쉽게 오해하고 단정 짓기보다는
실수했을 때는 분명히 인정하고 정직하게 사과하는 어른들이 많아지는 사회를 바란다. 자신의 행동에 정직하게 임하는 모습을 어른들이 , 선배들이 먼저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진짜 후배 세대를 올바르게 이끄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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