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앞둔 딸과 종로에 갔던 날
발달장애 딸과의 일상 속에서.
세상으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마음의 벽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제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약속을 잡았다.
오빠네 조카들과 나의 두 딸, 그리고 새언니까지 종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새 출발을 하게 된 첫째 조카를 축하해 주고 싶었다.
고모로서 밥도 사 주고, 용돈도 쥐여 주고 싶었다.
내가 만든 자리였다.
처음에는 둘째 딸만 데리고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하는 자리이니 괜찮을 거라 믿고 세은이도 함께 데리고 나갔다.
요즘 세은이와 외출하는 일은 예전보다 쉽지 않다.
밖에 나가면 마음에 드는 물건이 생기기 전까지 잔뜩 화가 나 있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 할지 몰라 늘 긴장 상태다.
화가 났다가 사소한 일에 갑자기 풀렸다가
다시 화가 나기를 반복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가족은 외출할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어제 문득 깊이 자각했다.
어제도 집을 나설 때부터 세은이는 화가 나 있었다.
차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찾았고 급하게 들러야 했다.외출때마다 겪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도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서울에 머물고 있는 둘째 딸이 도착했지만
세은이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곧이어 조카와 새언니도 도착했고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세은이는 밖에 나오면 늘 그렇듯
단호한 몸짓으로 밥을 먹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나는 평소처럼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나에게는 익숙한 이 상황이
일 년에 몇 번밖에 만나지 않는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낯설고 당황스러운 장면일 수 있을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세은이의 마음을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나는 그저 상황을 흘려보내듯 지나가게 했다.
게다가 우리는 많이 걷거나 이동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만나서 밥을 먹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제한되었다.
새언니는 오랜만에 이런 자리가 너무 좋다며
연신 웃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마음이 지쳐갔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밖에 나가면 세은이는
결국 무엇이든 하나는 사야 한다.
처음에는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아이가 안쓰러워 허용해 주기 시작했다.
이해와 타협이 쉽지 않은 삶 속에서
조금이라도 즐거운 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나씩 허용해 주었던 일들이
어느 순간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그 습관을 만들어 준 것인지도 모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만든 자리였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마음속에서는 지친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도 마음은
우울한 롤러코스터처럼 계속 흔들렸다.
자식이지만 지치고, 미워지는 날이 있다.
어제는 원망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무엇이 현명한 육아인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서른 살이 되어가는 딸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세은이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좋아한다
세은이를 세상 속으로 데리고 나가는 일과
내 마음을 지키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은
끝까지 부모의 번뇌인지도 모른다.
이 길을
나 혼자 외롭게 걷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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