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을 부정하며)
운칠기삼이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성패는 운에 달려있지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쉽게 ‘운이 나빴어.’라는 말을 하고, 원하던 결과를 얻었을 때는 ‘운이 좋았어.’라고 말한다. 고시 시험 합격 역시 결국 운인걸일까? 합격 후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할 때마다 쑥스러워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운이 좋지 않았다.
노무사 시험 첫 과목은 노동법이다. 시험 전 노조법부터 근로기준법까지 교재를 봤는데, (시험 시간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걱정되어) 불안한 마음에 화장실을 다녀왔다. 기간제법, 파견법, 산재법을 다시 보지 못한 채 시험이 시작되었다. 노동법 1에서 파견법과 산재보험법이 나왔다.(시험 직전에 본 내용이 시험에 나오는 행운 따윈 없었다.) 행정쟁송법에서는 믿었던 강사님이 노무사 시험에서 나오기 어렵다는 이의신청과 행정심판 비교 문제가 나왔고, 경영조직론 1문이었던 탐색과 활용은 “성공하는 조직은 양손잡이다“라는 J.March의 명언만 알고 있었다. 정말 난 운이 좋았던 걸까?
불합격이 기본 값인 사람들
어느 시험이든 이슈가 되는 합격자가 존재한다.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은 수능 만점자가 나오거나, 50대 경비원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도 한다. 나는 30대 중반이었고, 아이 엄마였으며 대학원생이었지만, 노무사 시험에 생동차로 합격하였다. 시험을 준비할 때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최선을 다해도 떨어지는 것이 시험이다. 운 좋은 사람들 때문에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떨어지는 시험은 불공정하다. 그렇다고 악조건 속에서 합격한 사람들을 모두 운이 좋아서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
1. 피곤한 성격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성격이다. 여유가 있으면 불안하고, 여유가 없으면 화가 난다. 20대 초반부터 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현재 상황에 만족한 적이 없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학부시절 뉴스 클리핑 아르바이트와 인턴생활을 병행한 적이 있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6시까지 종로에 출근하여 9시까지 알바를 하고, 10시부터 여의도에 있는 경제연구소에서 월, 수, 금 인턴생활을 하고, 화, 목은 학교를 다녔다. 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사는 것에 익숙하다.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꼈고,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물론 돈도 아까웠지만) 초코우유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평일에는 아이를 재우고 밤 11시부터 3-4시까지 공부하였고, 주말에는 새벽 5시에 기상하여 24시 카페로 향했다. 합격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살아야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피곤한 성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유 있고 긍정적으로 살고 싶은데 천성이 그렇지 못하다.
2. 삶의 서사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서사가 있다고 추측해본다. 이들은 단순히 취업이 어려워서 시작하는 수험생과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다. 나 역시 조직 내 불합리한 차별에 진절머리 난 상태였고, 심지어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다 피해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아픔을 겪었다. 조직은 언제든 나를 배신할 수 있다는 경험은 수험생활에 몰입하게 하였다.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어차피 그래도 넌 회사 안 그만둘 거잖아.’라는 대답을 들었다. 나 역시 조직을 배신할 수 있다는 것(물론 윤리적으로)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3. 완벽한 차단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회사를 휴직하였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나에 대해 부정적인 신호를 완벽히 차단할 수 있었다. 코로나 역시 부정적인 신호 차단에 일조해주었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나 역시 신림동에 가서 주말을 보낼 계획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오고 가는 시간 동안 공부를 하지 못했을 것이며, 나보다 어리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며 의기소침해졌을 것이다. 주말을 온전히 학원 강의에 투자하여,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지금보다 더 부정적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때문에 불확실성은 커졌지만, 외부의 부정적인 신호를 차단하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1차 시험이 끝난 후 신랑 회사의 후배가 생동차 때가 힘들지 유예 때는 1차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한결 여유롭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분명 나를 위한 조언이었는데,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조건 올해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합격
첫 시험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누구보다 빨리 합격하고 싶었고, 그 간절함이 결국 합격을 가져다주었다. 2019년 7월 처음 노무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2021년 현재 노무사로 살고 있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믿었다. 시험장에서 나는 직장인도 아니고 아이 엄마도 아닌, 노무사 수험생일 뿐이었다. 시험은 정직하다. 나의 외형(30대라는 점, 아이 엄마라는 점)이 아닌 시험지 자체로만 평가받기 때문이다. 시험에서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엔 자신 있는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외우지도 못한 산재법이 나왔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몰라서 안 썼다면 절대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 울리기 1초 전까지 답안지를 썼고, 시험이 끝난 뒤 아쉬움 없이 후련했다.
수험생활 시작할까 고민한다면
채용시장이 어려워진 만큼 고시공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작년 노무사 1차 시험 응시생이 5천 여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점점 수험생들의 실력은 향상될 것이고, 합격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노무사가 되고 싶다면, 망설이는 시간에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이고, 내가 나를 믿을 때 변화는 시작된다. 운만 작용하는 시험이라면 나는 그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시험은 아직까지 의식적인 노력으로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합격했을 때 그 성취감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 성취감만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지만, 내가 해낼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한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되었다.
스스로를 멘탈이 약한 사람,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운이 따랐다고 나 스스로를 낮추는데 익숙했다. 그렇지만 내 성취는 운만으로 이뤄낸 것만은 아니다. 나를 믿고 변화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운이 따르는 사람이라도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남의 성취를 운으로 평가절하하기 전에 운이 따랐을 때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수험생활의 교훈은 삶을 많이 바꿔놓았다. 지금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성장하고 있으며,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라 외롭지만 인생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