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인 노동을 모색하다, 대책 없이 살게 된 초보 노무사
합격 발표일, 분명 그때는 기뻐서 눈물을 흘렸는데, 지금은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날이 많아졌다. 퇴사하지 않았으면 행복했을까? 분명 나는 괴롭고 또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내 괴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보다는 글로 남겨보려 한다.
내가 기대한 전문직의 모습
전문직의 사전적 정의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요하는 직업’이다. 노무사는 전문적인 지식으로 아직까지도 낮은 수준인 노동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HR 부서에 있었기에 노무사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존재했고, 그 환상이 어느새 나의 꿈이 되어 수험생활에 몰입하게 했다. 내가 기대한 전문직의 모습은 웹툰 <송곳>의 구고신 노무사나 하종강 교수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노동인권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스스로의 인권도 보호할 수 있는 사람.
수습 면접에서 겪은 인격모독
29기 공인노무사는 총 343명이다. 60점이 넘은 합격생이 많아 처음으로 절대평가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연히 수습처 구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노무법인이 싫어하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는 신입이다. 생동차 합격은 나에게는 큰 성취였으나, 법인에서는 생동차인지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나이가 많았으며, 대학원을 졸업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아이 엄마였다.
전화로 인터뷰를 한 법인이 있었다. 대표는 처음부터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나의 전 직장이 진보성향이라는 것 때문에 자문사에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이가 많은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하셔서, 책임감이 있어서 장기근속할 수 있고, 나이가 많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럴 거면 젊은 사람 뽑지 왜 노무사님을 뽑아야 하냐고 반문했다. 아이도 있으면서 법인 생활을 할 수 있냐고 물었기에, 아이 키우면서 대학원 다니고 생동차 합격했고, 나는 스스로를 멀티플레이어라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잘 못할 것 같다고 굳이 말해주었다. 받았던 연봉을 물어보셨고, 법인 3년 차도 못 받았네요 하며 나의 지난 노력을 받은 돈만으로 평가절하하였고, 자꾸 신입이 나가므로 앞으로 연봉을 줄일 계획이라고 말씀해주셨다. 30분 동안 10회 이상의 인격모독을 받았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건 그 사람 생각이니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대표도 나를 원하지 않았지만, 나도 그 법인에 가고 싶지 않았다.
신입에게 거는 열정과 노력
전문직이 되어도 신입사원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같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보고 나를 어필해야 한다. 전문직이 되었음에도 을에 입장에서 갑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최근 재직 중인 노무법인에서 일에서 열정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주어진 일을 제시간에 해내려 노력 중이다. 여기서 제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휴게시간을 제외) 단 한 번의 딴짓도 하지 않은 시간이다. 열정은 이 몰입의 시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의 생각은 달랐다. 신입의 열정은 어디서 나와야 할까? 이미 취업과정에서 모든 의지와 열정을 잃게 만들었음에도, 신입사원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열정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터가 아직도 많다. 가보지 않은 길은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한걸음 한걸음 조심히 나아가고 싶은데, 그 조심스러움이 나를 열정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내가 기대한 전문직의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난 분명 노동법을 배웠고, 노동법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은데, 왜 노동법을 지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나에게 애 엄마라 잘 못할 것 같다는 법인 대표 역시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채용 차별 금지 문구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회의적이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오늘은 정말 힘이 들었다. 수습이 끝나고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렸다.
우선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
일만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대학원 생활도 잘 마무리하고 싶으며, 무엇보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대안적인 노동을 원했고, 노무사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 하루도 대책 없이 흘러가고 하나의 상처만이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늦게 시작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는 않다.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열정은 근로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나를 지키며, 대안적인 노동을 위해 오늘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