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을 피할 수 없다면 잊어버리자
최근 개인적인 사유로 영어가 필요한 일이 있었다. 영어로 문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정말 기본적인 단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파파고는 나를 도와줬지만, 인생의 절반 동안 영어를 배웠음에도 아직도 영어를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토익 900점을 위해서 대학교 3, 4학년 토익학원을 네 곳을 다녔다. 기초반, 심화반, 청취반, 종합반을 다녔음에도, 결국 895점으로 토익 생활을 접었다. 토익점수가 필요한 이유는 하나였다. 취업에 대한 불안감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토익 점수 올리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토익점수 올리기에 매진하지 않고 노무사가 되었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잘 살지 않았을까?
돈을 잃었다.
서른까지 나는 돈 개념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월급을 받으면 100만 원을 저금하고, 나머지로 한 달을 생활하였다. 돈에 민감해진 것은 역시나 돈을 잃고부터였다. 가까운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몇십만 원이었다면 그냥 축의금 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돈은 내 1년 연봉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처음 몇 달은 웃음도 나지 않았다. 밥도 먹기 싫었고, 남들과 대화하기도 싫었다.
무리하게 집을 샀다. 그리고 잔금을 치를 때 2천만 원 정도가 부족하였다. 회사에서 대출을 받았고, 신용대출도 받았다. 내 돈 아닌 대출금들이 모여 잔금을 치르고 나서도 돈이 남았다. 누군가 그 돈을 빌려주면 나머지 빚도 갚아준다고 하였다. (물론 그 누군가는 정말 나와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돈을 빌려주고 싶어 했던 신랑을 믿었다. 3개월만 쓰고 돌려준다는 기한은 한없이 길어졌고, 현재까지도 그 돈을 받지 못했다. 빚을 갚아준다는 말을 믿었다기보다는 추가로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 불안했다. 2천만 원은 한 달에 150씩 모아야 갚을 수 있는 큰돈이다. 그 돈을 갚아준다면 그렇게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완전 바보였다.
시간을 잃었다.
한 회사에서 장기근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재취업이 가능할까 싶었던 불안감도 있었다. 30대 초반, 이직을 준비했던 친구는 최종면접에서 계속해서 떨어졌다. 함께 최종면접에 올라간 30대 초반 남성 지원자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책임감이 있다는 평을 받았고, 비혼주의였던 친구의 진심은 무시당하기 일수였다.(아직도 그 친구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들리는 부정적인 경험은 내 경험이 아님에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당시 다니고 있는 회사만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그 사이 나는 서른 중반이 되어 있었다.
체력을 잃었다.
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날 너무 기뻤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불안해졌다. 나이 많은 내가 수습처를 구할 수 있을까, 애엄마인 나를 싫어하진 않을까. 그런 불안감에 합격한 11월부터 노무법인에 입사지원서를 넣었고 12월부터 근무 중이다. 노무법인의 워라밸 등은 언젠간 쓰겠지만...., 어쨌든 나의 불안감은 나를 강남으로 출퇴근하게 했고, 나는 도보 20분 회사를 두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서 1시간 넘게 걸리는 강남으로 이직을 하였다. 아이는 나 때문에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고, 나 역시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매일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다. 하루는 지하철에서 빈혈로 쓰러질 뻔하였다. 수습생활 세 달 만에 체력이 너무 떨어졌는데 운동할 여유는 없다. 그 불안감을 좀 더 참아보았다면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을까?
내가 잃어버린 것
나는 불안감 때문에 돈과 시간, 체력을 잃었다. 결국 돈은 시간이며, 체력 역시 돈이다. 돈이 있으면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체력이 있다면 좀 더 오랜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 때문에 잃은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도, 매일이 불안하다. 일을 제 때 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수습이 끝난 후 진로 걱정에 또 불안하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하였다. 불확실한 삶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불안을 극복하는 법은 없다. 그저 할 뿐
모두가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의 잣대에서는 부족하고 부족한 수습노무사일 뿐이다. 20대에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30대인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다. 그리고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여전히 모르는 채 나를 몰아붙이며 살고 있다. 긍정적인 점을 찾자면, (시간과 돈을 잃게 했지만) 나를 변하게 만들었는 점이다. 법인 생활과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기로 결심한 것은 졸업이 늦어지는 것, 나이 많은 수습노무사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이었지만, 해보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한 번에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하루 동안 부당해고 답변서를 작성했고, 컨설팅 자료를 서치 했으며, 근로계약서 10개를 만들었고, 2개의 취업규칙을 개정하였다. 대학원 수업에서 사례발표를 했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와 간지럼 참기 놀이를 했으며, 아이를 재우고 과제를 하였다. 불안할 시간도 없이 하루는 간다. 이 하루가 모여 전보다 나은 내가 되길 바라며, Good L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