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었던 4월을 보내며
최근 또 면접을 보았다. 첫 직장에서 장기근속했던 책임감과는 무색하게 계속 다른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사실 내가 어디 속하더라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역시나 나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잠을 줄여서 기한을 맞춰도 줄 간격, 글씨체 때문에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고, 매일매일 달려서 출근을 해도 1분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키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내 문제는 아닌, 대한민국 워킹맘들의 현실이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좋은 회사에 다녔는지 실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공부가 일이 되는 순간
나는 공부가 좋다. 요즘 자주 하는 말인데, (물론 수험생들은 화가 나겠지만....) 수습생활보다 수험생활이 더 적성에 맞는다. 행쟁 모의고사에서 97등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모의고사 제출 인원이 100명 정도였으니까 거의 꼴찌였다. 그 주에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고 그다음 주 바로 2등이 되었다. 나는 경쟁적인 성격이며, 남보다 못하는 것을 잘 인정하지 못하는 아주 피곤한 성격이다. 전 회사에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어도, 타사 사례를 조사하고, 논문을 보면서 필요한 내용을 기획안에 담는 것이 익숙했다. 인정받고 싶었다기보다는 정말 일을 잘하고 싶었다. 스스로 세운 기준이 매우 높아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몸이 아프거나 머리가 아팠다. 노무사로 근무한 지 4개월, 공부가 일이 되는 것은 기쁘지 않다. 스스로 궁금해서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시켜서 찾아봐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 재미조차 없다.
일잘러에서 쌩초짜로
전 회사는 실수가 용납이 되는 곳이었고, 실수 자체보다는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시는 선배들이 있었다. 어떤 일이 끝났을 때 나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큰 불만이 없었다.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법인에서 나는 수습노무사일 뿐이다. 업무에서 실수가 많다 보니, 당연히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왜 나는 내가 일잘러라고 생각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업무 지적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가장 마음이 아팠던 질책은 ‘노무사님 인사담당자였다면서요?’라는 말이었다. 그 한마디에 나의 지난 경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결론은 인사담당자였는데 이 정도밖에 못하냐는 말을 직접적으로 들은 것이다. 30대가 되어도 아직까지 싫은 소리에 유연한 대처가 안 되는 내 성격이 참 싫다.
잘 배운 사람이 되기
항상 외형을 중시하며 살았다. 잘 배운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공인노무사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였다. 누구보다 많이 배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너무 초라하기만 하다. 전 회사에서 사람에 대해 많이 배웠고 다신 실수하지 않기도 다짐했는데도 또 실수하였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외형(외모, 학력, 소속 단체, 결혼 유무 등등)에 현혹되면 안 되고, 그 사람의 언행을 살펴야 한다. 진보단체에 있어도 보수꼴통보다 더 심한 꼰대를 만날 수도 있고, 여성단체에 속한 사람도 충분히 여성인권을 무시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많이 배운 사람보다는 잘 배운 사람이 되고 싶다. 잘 배운 사람이라는 것은 내 학력이나 직업과는 무관하게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다. 같은 말을 해도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 알고 세련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 이전에 어려움에 공감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노력을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전 회사에서 장기근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잘 배운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선배들께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이다.
최근 면접을 본 노무법인 대표님의 말이 생각난다. “수습은 정해진 기간만 채우면 되는 것이고, 어차피 직무개시를 하면 똑같이 노무사가 된다. 지금 고민하시는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 것 같다. 나도 늦은 나이에 합격해서 그런 고민을 했다. 노무사님은 어떤 노무사가 되고 싶은지, 남은 수습기간동안 잘 고민해보시면 좋겠다.“ 합격의 말도 아니었고, 나를 인정해준 말이 아니었음에도 힘이 났다. 공감을 얻었다는 하나의 사실 때문에.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
많이 힘들지만 나만 힘든 세상은 아닐 것이다. 사실 남이 보면 나는 외형적으로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보다 나은 환경이라고 해서 내가 안 힘든 것도 아니다. 요즘 내가 젤 싫어하는 것이, 남의 불행을 내 행복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노무사 시험 발표 전 3개월 간 운세 어플로 하루를 보내곤 했는데, 여전히 운세 어플에 미래를 기대며 살고 있다.
주눅이 들게 되는 곳에서는 좋은 성과가 나기 어렵다는 당연한 말에 난 또 힘을 얻는다. 하나의 실수에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인생의 실패가 아니며, 성공을 위한 시행착오 중에 하나일 뿐일 것이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힘을 얻고 있다는 댓글을 보며 또 힘을 얻는다. 많이 배우고 잘 버는 사람만이 인생의 성공이 아니듯 나를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초심만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며, 길었던 4월을 보낸다. 안녕 만나서 반가웠고, 다신 보지 말자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