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답이다?
“무조건 대기업이 답이야. 중소기업은 노답이라니까.”
서른 중반에도 명확한 진로를 정하지 못한 나를 보며, 동생은 한결같이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라고 한다. 동생은 대기업 최종면접에서 다섯 번을 떨어졌지만 여전히 대기업을 입사를 꿈꾸는,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진 친구다. 중소기업을 접하고,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왜 중소기업의 이직률이 높은 지를 실감 중이다. 그렇다고 내가 중소기업에서 겪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 대기업 입사는 아닐 것이다. 이상적인 일터에 대해 고민하며, 대기업에 가고 싶은 이유와 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본다.
체계적인 교육과 높은 연봉
노무사가 되어 처음 법인에 출근했을 때, 오후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나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일이 주어진다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이 없어서 눈치 보는 상황이 더 싫다. 그러나 기업에서 공채로 입사한 첫 날을 되돌아보면, 당시에는 취업 성공으로 인한 설렘이 존재했다. 동기들을 만나 면접 비하인드를 나눌 수 있었으며, 오리엔테이션과 한 달 정도의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조직의 일원이 됨을 축하하는 회사의 노력에 행복했고, 감사했다.
중소기업에서 신입사원 교육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끝인 경우가 많다. 당장의 실무 투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업무 관련 매뉴얼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을 하면서 스스로 프로세스를 익혀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사수가 없어 대표에게 직접 묻기도 해야 하며, 용기를 내서 대표에게 질문해도, 대표 역시 모르는 경우도 많다. 반면, 대기업은 다르다.(물론 체계가 있는 중견기업, 외국계 모두 포함된다.) 신입사원에게 체계적인 교육과 멘토링이 지원되며, 직무기술서와 직무명세서 등을 통해 직무에 적합한 배치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한다.
또 하나의 차이는 바로 연봉이다. 중소기업은 연장,야간,휴일근로가 상시적으로 발생해도 포괄임금이라는 명목 아래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변을 보면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이 오히려 칼퇴한다. 중소기업에서는 체계적이지 않은 업무 시스템 때문에 일이 더 복잡해지는 경우도 많고, 대기업이라면 여러 부서에서 할 일을 혼자 해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역시 바쁜 곳들은 상시적으로 연장,야간,휴일근무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임금이 다르기 때문에 법정수당이 부여되면, 실제 받는 연봉은 중소기업과 더욱 차이가 난다. 대기업과 차별화되는 복리후생이 주어진다면 모를까, 굳이 열정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과 높은 임금을 포기하고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가
대기업에 다니는 대학원 동기들을 보면 이상할 정도로 조직 친화적이다. 나 역시 HR 부서에 있었지만 그만큼 회사를 사랑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분들은 늘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고 회사에 부적응하는 구성원에 대해 걱정한다. 업무를 보다 잘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셨고 소속된 조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보를 공유한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대기업에 입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부분은 그 지점이다. 조직을 사랑해보고 싶다. 조직의 의사결정에 불신을 가지지 않고, 온전히 한 방향으로 노력해보고 싶다. 물론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HR 부서 소속이라는 점은 특이한 부분이긴 하다. 어쨌든 대기업에서는 조직을 사랑하며, 일을 잘하기 위해 자기계발에 노력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대리님이 있었다. 늘 퇴사를 꿈꾸며, 경력이 쌓이는 것을 기다리신다고 했다. 더 좋은 기업에 취업할 목적으로 경력을 쌓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놀랍지는 않았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페 창업을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했고, 그 말씀을 하실 때 대리님은 행복해 보였다. 중소기업에서는 퇴사를 꿈꾸며, 조직이 아닌 나를 위해 자기계발에 노력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좋은 회사의 조건
교육담당자로 일할 때 신입사원이 이직하는 이유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연봉, 사람, 좋아하는 일. 이 세 가지 조건 중 두 가지가 충족되면 사람들은 쉽게 이직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 좋은 회사란 이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는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중소기업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급여가 적을 가능성이 많고, 급여가 높다면 철야 야근이 당연한 곳일 수 있다. 야근이 많은 회사에서 친절한 사람들은 많지 않다. 피로는 성격을 변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체계적이고 명확한 업무가 있는 곳이 좋다. 그리고 자기 일을 사랑하며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높은 연봉까지 주어진다면 대기업이야말로 내가 가장 원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머슴이 되고 싶지 않다
최근 상사의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을 한 네이버 직원과 관련된 기사가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네이버는 수평적이고 유연하며,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직이었다. 항상 혁신을 거듭하며, 포털 1위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위 사건과 관련된 기사에서 IT 부문의 경우 수시로 팀이 생겼다 사라지고, 이 과정에서 공정한 인사평가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팀과 직군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재직자의 의견이 있었다. 대기업이라고 무조건 체계적인 것도 아니며, 빠르고 잦은 변화는 일관성을 잃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것은 조직이 아닌 구성원 개인이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낫다고 해도 내가 근로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조직은 언제든 개인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머슴이 되고 싶지 않다. 머슴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전문직을 선택했는데, 고생해서 걸어온 길이 10년 전 진로 고민하던 취준생의 모습이라니 좀 서글프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머슴이지만 머슴이 아닌 척, 행복한 머슴으로 지내거나 사업체를 차려서 대감인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머슴도 싫지만, 척하는 삶도 싫은데... 내 고민에는 답이 없다. 헬스장을 두 군데나 다니고 영어학원에 다니며 자기계발에 노력하는 동생이 생각난다. 답도 없는 문제를 매일 고민하는 것보다 동생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쓴다. 6월에는 뭐라도 시작해볼 것이다. 머슴이 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