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급이 아니라 사원부터 고민해 보세요
다양성(Diversity)은 문자 그대로 다양한 특성을 의미하는데요. 조직에서도 다양한 특성들이 어우러져야 성과를 낼 수 있으므로 다양성관리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다양성 관리란 여성, 외국인, 장애인 등 소수자 또는 상이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인력을 배제하지 않고, 그들의 장점을 활용하여 성과를 내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조직 내부에는 이미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조직 내부직원들의 다양한 특성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그저 갈등의 소지가 될 뿐입니다. 직원들의 저마다 다른 특성을 장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관리해야 합니다. 다양성을 관리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는데요. 현실 사회, 조직에서 다양성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요? 우선 여성에 대한 보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여성 임원 할당제가 있다고?
2021년 4월 20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약칭 자본시장법) 제165조의 20이 개정됨에 따라 자본총액이 2조 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 이사회는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상장법인 등기임원 중 여성 비율이 4%에 불과한 현실에서 이사 전원을 특정 성으로 구성할 수 없게 하였으니, 단 1명이라도 여성 임원을 지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여성 임원 할당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네이버에서 여성임원할당제(붙여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시사상식사전 바로 밑에서 여성임원 할당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뉘앙스의 글을 확인하였습니다. 지금 같은 자유경쟁 시장에서 유리천장은 없으며, 희생이나 노력, 능력 없이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글이었죠. 저 역시 희생이나 노력, 능력 없이 성별을 우선하여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싫습니다. 어떤 희생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자리 욕심으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정치질하며 임원이 된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두 특정 성별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바사, 케바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늘 희생, 노력하지 않고 능력 없는 존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슬로건 중 하나인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윤석열 정부가 세워지는데 큰 공헌을 한 슬로건이기도 하죠.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불공정했으며 결과적으로 정의를 외친 사람의 모습에서 정의를 찾을 수 없었음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전 이 슬로건이 좋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잡을 수 없는 것이 불평등이며, 임원이 될 수 있는 과정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 공정입니다. 기회와 과정이 보장되어야 결과가 도출되는 것입니다. 실제 회사에서 여성은 하나의 기회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이때 노력은 업무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과 본인이 적임자임을 어필해야 하는 노력, 그리고 개인적 환경(결혼, 출산, 육아 등)이 업무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노력이 포함됩니다. 회사에서 저는 정말 일을 잘하고 싶었고, 중요한 일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요.(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일이 없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늘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많은 책을 읽었고, 교육을 받았으며, 회사에 적용할 것들을 먼저 찾아 제안했지만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묵묵히 일하는 남성 직원들은 요구하지 않아도 일이 생기고, 자리가 생기고, 권력이 생기더라고요. 왜 저한테 그만큼 노력하고 희생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말 많은 여자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정리하면, 우리나라에 여성 임원 할당제는 없습니다. 심지어 자본총액이 2조 원 이상인 회사에만 특정 성별로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는 자본시장법은 자본총액 2조 미만인 회사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후 26년간 성별 임금 격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여성 임원을 선발하고 싶어도 적합한 인재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성별 소득격차 불균형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죠. 일과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에게 소득의 불공정은 일에서 이탈하게 하는 큰 원인이 됩니다.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저 역시 “내가 이 돈을 벌려고 아이를 이렇게 고생시키는 게 맞을까.” 백 번도 넘게 고민하거든요. 고학력 여성일수록 노동시장에 이탈하면 다시 재진입하지 않아서 고학력 여성의 고용률은 L자 형태를 보인다고 합니다. 고학력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은 여성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임원이 될 수 있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므로 여성 임원의 풀 자체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여성이 임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임원이 될 수 있어야
여성이 임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성 임원이 현재 없기 때문에, 남녀 임원의 수적 평등을 위해서가 절대 아닙니다.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성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 가능을 위해서라도, 남녀의 질적 평등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특권층 여성들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새로운 시각에서 기업의 전략을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이 허용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함입니다. 여성이 회사에서 롤 모델을 찾을 수 있다면 일과 가정의 중요성을 비교하며 노동시장 이탈을 고민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실제 여성 임원의 존재가 여성 사원 수에 간접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롤 모델로 삼기 어려운 여성이 임원이 되었을 때 일반 사원들이 느끼는 좌절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블라인드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여자 직원들 사회생활, 나 꼰대야?”라는 제목이었죠. 삼성전자의 한 여성 직원이 회식, 골프 등 업무 외 사회생활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에 승진이 빨랐다는 글이었으며, 유리천장에 대해 말하는 것을 비판하여 논란이 되었죠. 개인적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회식과 골프 등 업무 외 사회생활에 집중하여 빠르게 승진하는 여성 직원이 많다면, 다양성이 확보될까요? 오히려 일에 집중하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현타가 와서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면까지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HR 전문가입니다.
여성 임원 할당제는 없습니다.
다양성 강화를 위해서는 임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원일 때부터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