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보다 중요한 것
2011년 7월, 저는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했어요. 채용형 인턴, 계약직을 전전하다가 공채로 합격한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제가 입사한 회사는 역사가 오래된 중견기업이었습니다. 많은 관리자가 있었고 의사결정도 느렸죠. 어렸기만 했던 제 눈에 회사는 변화를 모르는 보수적인 조직이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기업과 우리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비교하며 괜히 주눅이 들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성공은‘조직문화’에 있다는 여러 가지 책을 접하며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지금은 유니콘 기업이 되어버린 네이버, 카카오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가 부러웠습니다. 회사생활에 지쳐갈 때쯤 이직 욕구가 솟구쳤고 취업포털에서 우연히 한 회사를 발견하였습니다.‘주 4일’ 근무하는 스타트업이었어요. 스타트업의 수평적인 문화, 주 4일에 혹한 저는 이력서를 제출하고 일주일 뒤 연락을 받았습니다. 인사담당자와 면접 일정을 잡았고 면접 장소는 이메일로 알려준다고 하였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이메일은 오지 않았어요. 물론 메일로 회사의 위치를 검색하거나 전화해서 이메일을 요청했으면 되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면접 당일에도 연락은 없었습니다. 아마 적임자를 찾아서 면접이 필요 없어진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황당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규칙 없음, 지구상 가장 빠르고 유연한 기업의 비밀’은 넷플릭스 조직문화의 장점을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넷플릭스는 휴가, 출장 및 경비 승인에 관한 규정을 없앴고, 모든 것을 공개하며 어떤 통제도 하지 않고 직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지금 넷플릭스를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문화임에는 틀림없죠.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규칙 없음이 넷플릭스의 하나의 문화였던 것입니다.‘규칙이 있는 것이 좋다, 규칙은 없을수록 좋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스타트업의 혁신은 조직문화의 영향을 받지만, 시장 자체의 성장성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정말 엄격한 대표 아래 군대식으로 움직이고 작은 의사결정 하나도 직원 혼자 하기 어려운 기업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의 수익 모델에 성장성이 있다면 기업은 혁신을 거듭하게 됩니다. 물론 혁신의 속도는 느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조직문화겠죠.
시장의 수요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자율과 책임을 강조한다면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유연함과 자율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규칙 없음’을 적용하다 직원과 불필요한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무제한 점심시간을 운영하였더니 점심시간을 3~4시간 사용하고 근무시간을 줄이는 직원, 무제한 식대를 제공하였더니 퇴근길에 저녁거리를 사서 퇴근하는 직원, 리모트워크를 도입하였더니 연락이 두절된 직원. 이런 직원들이 혁신을 가져다주었다면 기업은 본래 목적을 달성하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은 일에 몰두하여 일탈할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몇 구성원의 일탈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규칙을 만들어 경직적인 조직문화를 만드는 경우도 있고, 일탈자들을 방관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동기들 빼앗기도 합니다.
혁신은 규칙 없음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직원들이 모두‘일을 할 때’ 혁신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