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더 존중되어야 할까
채용 노무사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대부분 사용자 측(대표님, 인사담당자, 임원 등)과 일했습니다. 저 역시 인사팀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법률 자문을 할 때 최대한 '정당하고 공정한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됩니다.
컨설팅과 자문을 진행할 때 법적으로 위반되는 사항이 없는지, 제도 자체가 타당하고 공정한 것인지를 계속 검토하죠. 직원 개개인들의 감정을 고려하지는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회사의 수임을 받아 제대로 일을 했으니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정당한 회사와 억울한 직원들
최근 법인을 개업하고, 근로자 상담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공덕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근방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분들이 가볍게 상담을 하러 오십니다. 대다수 정당하고 공정한 회사의 결정에 피해를 보는 근로자 분들입니다. 억울함에 저희 법인을 찾아오신 것이지만, 그 억울함을 법적으로 해소해 주기 어려운 사안도 많습니다.
회사에서는 노무사의 자문을 받거나, 많은 조사를 통해서 근거를 마련하고 인사조치를 행한 것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당한 이유 있는 회사의 결정에 직원 개개인은 피해를 보게 되죠.
가장 많은 것은 바로 인사이동입니다.
저 역시 회사를 다닐 때 원치 않는 부서로 인사발령이 난 적이 있었는데요. 어떠한 협의절차도 없이 인사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판례에서도 인사권은 사용자의 고유권한으로 그 재량이 폭넓게 인정됩니다. 예외적으로 회사의 업무상 필요성에 비해 직원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이 현저한 경우에 한하여 인사이동을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신의칙상 요구되는 협의절차는 필요하지만, 협의절차가 없었더라도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면 정당한 인사이동인 것이죠.
현재 노무사로 일하고 있고 당시 인사팀 소속 직원이었지만 당시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모든 선배들이 그렇게 인사이동을 받아들이고, 회사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 일을 계기로 회사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고, 회사라는 곳이 내가 탈출해야 하는 곳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정당한 이유로 인한 회사의 결정은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하여 문제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그러한 회사의 결정으로 인해 회사에서의 소속감,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더 많은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죠.
정당함과 억울함, 어떤 것이 옳을까요?
옳다는 것은 결국 사리에 맞고 바른 것이니, 정당함을 선택하는 것이 맞고 바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존중되어야 할까로 질문을 바꾼다면 저는 '억울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습기간이 연장된다면,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에 연장조항이 있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 맞지만 수습직원에게는 왜 연장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인사이동이 진행된다면, 몇 가지 선택지를 주어 직원에게 어떤 이점이 있는지 알려주면 됩니다. 선택지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라면 왜 인사이동이 이루어졌고, 해당 자리에서 직원이 어떤 업무를 담당하게 되고 어떤 성장을 할 수 있는지 정도만 공유해도 됩니다. 동의까지도 필요 없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신고된다면 조사 후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사건을 종료하면 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더라도 신고인이 회사에서 왜 문제를 겪고 있는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조직문화와 노무이슈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직원들을 존중할 때, 작은 노무이슈들은 저절로 해소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저희와 같은 노무사가 필요한 것이겠지만요.
인사노무와 관련된 상담이 어려운 이유는 정당한 것을 판단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의 억울함을 존중하고 최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 때문인데요.
정당함과 동시에 억울함을 풀어드릴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늘 고민합니다. 이번 달에 저에게 상담을 받으신 분들은 모두 회사의 결정에 억울해하셨지만, 바로 회사를 상대로 문제제기를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회사를 상대로 감정을 소비하기 싫은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문제제기가 없다고 하여 문제없는 회사는 아닙니다. 억울한 사람들만 가득한 문제를 키우고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