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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 Jul 12. 2017

#1. 입사

40세 개발자가 작은 일본 스타트업에 갑자기 입사합니다.

형, 사쿠라이가 이력서 빨리 보내달래.

1년 6개월 정도 광고 에이전시 스타트업에서 근무한 후, 퇴사한 지 이틀 된 날, 동생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는 동생으로부터 지나가는 말로, 일본 회사도 괜찮으니 즐겁게 일할 만한 회사가 있다면 소개 시켜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던 모양입니다.  


이전에도 그 회사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퇴사를 하고 2~3개월 정도는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원하는 회사를 찾아보며 공부나 할 생각이었고,

긍정적인 답변이 왔더라도 정해진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느긋하게 준비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워낙 일본 회사들은 입사를 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걸린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일본 회사에 정식으로 일을 해본 적도 없었고, 9년 전 반년 정도 배웠던 일본어 실력이 전부였으며, 그 당시 땄던 JLPT2급 (N등급으로 바뀌기 전)이 전부였지만,

번역기와 지인을 통해 이력서를 작성해서 보냈습니다.


예상외로 다음날 바로 답장이 왔네요. 


[일본 회사로부터 받은 메일 발췌]


직접???

빠른 답변에도 놀랐지만, 스카이프 같은 화상으로 인터뷰를 할 거라 예상과는 달리 직접 보고 싶어 하는 회사 입장을 보고 있자니 겁이 나기 시작합니다.

덧붙여, 직접 인터뷰를 위한 비행기 비용과 숙박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할 예정이니 부담 없이 오라는 말도 함께 받았습니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으니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고 일본으로 인터뷰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일본 회사로부터 받은 메일 발췌]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은 중에서도 어떠한 메일 격식도 없었고, 딱딱한 인터뷰나 면접 이야기가 아닌,

단순히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나 오피스로 그냥 놀러 오라는 그의 말은  지금도 저에게 아주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참고로 메일을 나눴던 친구는 현재 이 회사의 COO이며, 디자인 업무를 동시에 담당하고 있는 젊은 친구였습니다. 


지인이 도쿄에 살고 있기도 했고, 퇴사도 한 김에 여행이나 다녀올 겸 10일 정도 일정을 넉넉하게 잡고 갑작스러운 도쿄 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인터뷰를.. 아니 놀러 가게 된 회사는 30여 명 규모의 작은 스타트업 회사입니다.

도쿄가 아닌 치바 카시와시에 위치해 있으며, 앱 분석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 미국, 니가타, 됴쿄, 츠쿠바에 거점을 두고 확장을 꾀하고 있으며, 한국인을 포함하여 대만, 오스트리아, 인도네시아 친구들을 영입하여 50여 명으로 늘어난 상태입니다. 


회사 옆 호텔에서 짐을 푼 뒤에 잠시 휴식한 후, 회사에 갑니다.

웃는 얼굴로 한결같은 반바지 차림의 회사 임원들이 맞이를 합니다. 당시 CEO는 부재중이었고, COO, CFO, CTO와 회의실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9년 전 잠시 배웠던 일본어는 그 이후에 전혀 공부도 하지 않았기에 일본어를 제대로 알아들을지가 문제라 엄청나게 긴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10여 년 전 대학원 졸업 논문 발표 이후 가장 긴장하고 덜덜 떨렸지 않았나 싶네요. 


COO : 어서 와 반가워.
나 : 응 반가워.
COO : 멀리까지 와줘서 고마워.
나 : 아냐, 호텔까지 신경 써줘서 내가 고맙지.


약 20분간 사소한 이야기만 진행되었습니다.

일본어는 왜 이렇게 잘해? (그럴리가있겠습니까? 인사치례이겠지요.) 라던가, 일본어는 언제 어디서 배운 거야? 등의 정말 사소한 이야기.

옆에 통역을 도와주신 한국 직원분이 계셨었습니다만, 가능한 한 스스로 듣고 스스로 대답하려 애는 썼던 거 같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일본어 실력보다 그때 당시가 더 자연스럽게 대화를 했던 거 같을 정도로 각성상태가 된 모양입니다. 


CFO : (CTO를 바라보며) 엔지니어끼리 궁금한 거 있음 물어봐.
(아.. 이제 시작이구나 했습니다. )
CTO : 프로그램 말고 뭐 만드는 거 좋아해?
나 : 응? 프로그램 말고?
CTO : 뭐.. 책상을 만든다거나, 의자를 만든다거나.
나 : 음... (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초등학교 시절 '과학상자'라는 걸 이용해서 전국대회까지 가서 수상했던 생각이 나서..) 응! 좋아해! '과학상자'라고 알아?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거 만들면서 지냈거든! 지금은 바쁘다고 핑계 대고 손을 놓고 있지만 원래는 만드는 거 좋아해!

(참.. 구차하고 억지스럽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15/2014051503522.html


일본인들은 '과학상자'를 모르기 때문에 한 5분 동안 서로 설명하고 이해하고 웃느라 또 사소한 대화로 시간을 보냅니다.


CTO가 그 질문을 한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 회사는 예전부터 모든 사무가구를 직접 제작해서 설치합니다.

우리 회사 사무실 전경

위의 사진처럼 모니터 빼고 사진에 있는 모든 걸 모든 직원들과 직접 제작하고 배치합니다.

현재도 지방에 거점을 만들 때도 직접 직원들이 가서 만들고 오기도 하며, 필요한 게 있다면 재료만 사서 직접 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말 1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경력에 대한 질문이라던가, 기술적인 질문은 전혀 받지 않고 사소한 이야기만 했습니다.


(눈치를 나누더니)
COO : 참 즐거웠어.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우리랑 같이 일해주면 참 좋겠어. 바로 결정은 안 해도 되니 너의 결정이 정해지면 언제든지 연락해줄래?

나 :???

모두 :???

나 : 음... 어... 그니깐.. 음... 그래도 기술직이자너? 엔지니어로써 뭔가 확인을 한다던가 하는 게 필요하지 안
겠어?

CTO : 우린 그런 거 안 해. 전에도 안 했고 앞으로도 안 할 거야.

나 : 그래도, 너네가 원하는 엔지니어가 아닐 수도 있어.

CTO : 우린 공채보다는 지인 소개를 통해서나, 친구, 선후배를 데려와서 멤버를 구성했어. 그들도 스킬 테스트라던가 그런 건 하지 않았지만, 지금 훌륭하게 잘 일해주고 있어.

나 : 난 너희를 실망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

COO : 너를 소개시켜준 그 친구는 우리가 참 좋아하는 친구야. 우리는 그 친구를 신뢰하고 있고, 그 친구가 너를 소개시켜줬다면 너도 신뢰할 수 있어. 우리 회사는 신뢰만 있으면 돼. 


이전 대화들은 정말 사소한 대화들이었기 때문에 생략을 했지만, 위의 대화는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뚜렷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가감 없이 적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 충격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대화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일본에서 직업을 갖게 되고, 엔지니어로써 그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물론 지금도 회사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들과 갈등이 계속 존재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신뢰하려고 애쓰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가 그들을 신뢰하며 회사에서 힘이 되려 노력하게 되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번갯불에 콩볶듯한 시간 동안 일본 인터뷰 이후 취업까지 결정이 났지만, 취업비자로 인해 이 회사와 처음 메일을 교환한 지, 4개월 만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취업비자만 아니었으면, 인터뷰한 다음날부터 출근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행히 취업비자도 정말 빨리 나왔고, 저는 시나가와에서 취업비자를 수령한 당일 입사를 했습니다. 


인터뷰 이후 고민할 문제들이 있어서 며칠 고민을 한 뒤, 입사 결정을 전달했고 회사에서는 입사 전 일본 적응을 위해 3개월치의 거주비까지 지원해주는 등 아낌없는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신뢰

위의 대화는 그 당시 충격이 너무 커서 인터뷰 이후, 호텔로 돌아와 바로 기억나는 대로 기록했던 부분 중 일부입니다. 적어도 일본이란 나라는 의심도 많고 확인도 많이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면접을 볼 때, 특별히 따로 공부를 한다거나 준비를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기술테스트에서 비참하게 뚜드려 맞고 넉다운이 돼서 돌아온 뒤 탈락 통보를 받는다고 해도, 그 회사는 내가 할 줄 아는 기술을 원하는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회사의 경우는 한국인 엔지니어로써 적어도 망신은 받고 싶지 않아서 인터뷰 전에도 "혹시 내가 미리 준비하거나 대비할 게 있어?"라고 질문을 했을 정도로 준비를 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답변도, 

준비 같은 거 없어도 돼. 그냥 놀러 오기만 해

라는 말뿐이었고, 실제 인터뷰에서도 개발 관련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했던 단어는 '신뢰'였고, 인터뷰 또한 소개시켜준 친구의 신뢰로 결정하고 마무리를 짓게 된 거지요.


이제까지 '신뢰'라는 말은 저에게 있어서 회사-사원 관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삐뚤어지게 보이기만 했습니다. '신뢰'라는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어적인 모습으로, 10개월 동안 이곳 회사생활을 하면서 얼굴이 붉혀질 정도로 부끄러웠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유가 있을 때 따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면 회사-사원관계에서도 신뢰가 있을지도 몰라.

최근엔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나..

입사 이야기라 엔지니어로써의 이야기는 많이 없었지만, 이런 경우로도 일본 취업이 될 수 있구나.. 정도로만 봐주셨으면 합니다. 지금도 저는 한자의 대부분은 읽지 못하고 있고, 엔지니어 또는 같은 회사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수도 없이 버벅대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못 알아듣는 부분은 염치없게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봐야 이해를 할 때도 있고, 전달이 잘못되어 일정이 딜레이 되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안일하게 생각했던 그들의 개발 수준도 젊은 개발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21세~30세) 이곳, 30세 엔지니어 같은 경우는 저보다 개발 경력이 더 많을 정도로 높습니다. 이곳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공업 고등학교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 커리큘럼이 대부분 프로그램 언어였던 친구들이기에 기본적으로 모두 UNIX full control이 가능하며(front-end 개발자도 물론), 구현 언어는 최소 3개씩은 가능한 스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취업에 있어서 결코 일본어가 부족해도 가능하다거나, 기술 테스트 없이 지인 버프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일본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부분은.

절대로 일본어가 능숙해야 한다는 것과.

만약 그 당시 기술 테스트를 봤다면, 저는 100% 떨어졌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조금은 더 빨리 알아차려서 많은 준비를 했었다면, 지금의 일본 생활은 더 풍부해졌을지도 모른다는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40세 개발자 = 치킨집 사장님 의 테크트리를 타지 않아도 엔지니어로써 열정적인 젊은 개발자들과 어울리며 꿈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세상에 참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훌륭한 젊은 개발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에게 배우고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는 의외로 생각보다 뜨겁고 즐겁답니다.


입사후, 자기소개 당시 이 곳 엔지니어 친구들중 한명이 엔지니어로써 꿈이 무엇인지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딱, 80살까지만 개발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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