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플레이리스트 8p
가로등이 앞 옆으로 날 위로해주는 듯 한 오후 8시 1분. 추운 기운이 뺨을 스치며 약간의 닭살이 돋을 시간.
어렴풋 내 머릿 속에서 맴돌던 질문이 오늘은 꽤나 눈 앞에 가깝게 다가왔다.
"예술을 안 했다면". 한창 중2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시기부터 난 다짐했던 한 가지가 있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 다짐만 했을 뿐 정작 23살까지는 다짐과 다른 동선을 밟고 있었을 뿐이었다. 공고에서 갈고 닭은 내 이력서는 나이에 비해 꽤나 번쩍였고 넉넉한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은 채워주지 못하는 이력서였고 나는 이내 곧 그 위에 새로운 이력서를 작성했다. 연기와 무용수, 안무자와 기획자 그리고 작가의 삶. 한 마디로 예술의 삶이었다. 마음이 향하는 일에는 돈벌이가 중요하지 않았고 무슨 일이든 행복했다. 오히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나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렇게 6년차를 맞이한 지금 역시 예술이 좋다.
그러나 겨울 지나면 봄이 오듯 매년 2월 언자락에 이런 질문이 꼭 찾아온다. "만약 내가 예술을 안 했다면."
9 to 6의 삶이 익숙했을지도. 무용이라면 어렵다며 손사래를 쳤을지도. 지금의 단짝을 못 만났을지도.
반대로 이런 수식어도 없었을 것 같다. 예술인 정선호란 말도. 에디터 작가 정선호란 말도. 청년기획자 정선호란 말도. 그저 사회에서 회사에서 시킨대로 살고 있지 않을까. 가끔 공연을 보러가 무대 위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무대 위에 있더라면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토록 원하던 삶이 이루어져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매년 2월 "예술을 안 했다면"이란 질문은 항상 날 찾아왔고 오늘이 그날일 뿐이다.
습관적 글쓰기를 위해 하루를 기록합니다. 하루동안 제게 입력된 생각이나 상상의 순간들 어쩌면 일기일지도 어쩌면 소설이 될 수도 있는 이 글은 하루의 끝 쯤 하루를 확인할 수 있는 영수증 정도 되겠네요. 영수증을 확인하면서 음악도 소개해드릴게요. 영수증 플레이리스트 <영플리> 지금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