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크리스마스

썸남도 베프도 잃은 최악의 하루.

by 초록

가을무렵 롯데캐논을 다니는 키크고 핸섬한 사람을 소개 받았다.

직장이 그렇게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일단 나갔다. 강남에서 근무한다기에 고터에서 만났다. 고터 데블스도어. 약간 어두우면서 편안한 분위기의 펍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보자마자 내 스타일 이었다. 나도 간만의 소개팅에 힘을 왕창 주고 가 그도 나를 맘에 들어하기를 바랐다. 대화도 나쁘지 않게 통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바로 애프터를 했고, 우리는 무엇을 할 지 고민했다. 둘 다 글램핑을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었는데, 그는 쿨하게 글램핑을 가자했고 바로 예약까지 해버렸다. 나도 자연과 캠핑을 좋아하는데 늘 같이 갈 사람이 없던지라, 그의 쿨하고 스피디한 행보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캠핑엔 고기와 술인데 집에 돌아올 때 어떻게 되는건지 예상이 안 됐다. 설마 1박을 하자는 건 아니겠지? 그가 예약한 글램핑장은 반일권도 파는 곳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가 반일권을 예약했겠거니. 맛있는 거 먹고 분위기나 즐기다 오겠거니 했다.


그가 나를 태우러 집앞까지 차를 끌고 왔다.

네이비 색의 GV70. 새차 같았다. 이놈은 무슨 돈으로 이렇게 큰 새 차를 뽑았나?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연봉이 엄청 높은 것도 아니고, 본가도 경기권이라 GV70 새차를 뽑을 경제적 여유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포멀한 룩의 첫 만남과 달리, 센스있는 캠핑룩을 보니 더 설레었다. 포천의 캠핑장을 가기 전 근처 마트에서 장도 보고 여유롭게 도착하니 금방 해가 져 캠핑장의 알전두가 유독 로맨틱해 보였다. 2차로는 군고구마를 먹으며 불멍까지 했다. 옆 팀의 아기가 우리 텐트로 놀러와 귀엽게 바라보며, 미래에 우리가 아기를 낳아 캠핑장에 놀러오는 상상도 했다. 개웃김.


그도 역시나 나와 같은 헤비드링커 였다.

캠핑장에서 술과 고기는 당연지사. 우리는 적당히 사온 소주를 다 먹고 그가 계속 캠핑장 슈퍼에서 술을 더 사오자 했다. 두번째 만남 만에 캠핑장에 놀러와선 자꾸 술을 먹는 그의 의중이 뭔지 전혀 감이 안왔다. 뭐 하자는 거지...? 설마 여기서 자고 가려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뜨뜻한 텐트 바닥에 자꾸 널부러지는 그를 재촉하며 이제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그는 별말 없이 차에 올랐고, 생각보다 음주운전..?을 안전히 잘 했다. 그렇게 우리는 삼프터는 삼겹살 집에 거는걸로 약속하고 약속장소를 찾던 그때. 그가 나에게 더 이상 좋은 감정이 들지 않는다며 삼프터는 없던 일로 하자며 카톡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뭔가 달라진 카톡 텐션에 찝찝하던 찰나였다. 그렇게 나의 헤비드링커 존잘남과의 인연도 끝.


그러다 크리스마스 쯤 해서 소개팅이 또 몰려 들어왔다. 이제 누구를 통해 소개받았는지 기억도 안 나는 남성들. 그 중 키는 좀 작았지만 나에게 정성을 쏟던 서초남 한 분이 계셨다.

그는 약속장소에 하루 전 사전답사를 다녀올 정도로 나와의 만남에 진심이었고, 지하철역을 나오면 본인이 식당까지 에스코트를 해준다고도 했으나 그건 내가 불편해서 사양했다. 본인의 나와바리가 서초동이라 하니 집에 돈은 많은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분위기 좋은 2차 바에서 그는 갑자기 본인이 이혼 가정이라고 했다. 당황해서 리액션이 잠깐 고장났던 것 같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둘이 살았고, 어머니가 워낙 취미부자에 바쁜 편이라 집에서 자주 보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내 머리 속엔 강남에 편부모, 외동아들이라.. 온갖 안좋은 선입견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와 별개로 그는 연락부터 데이트까지 늘 나에게 관심을 가지며 최선을 다했고,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라면 한 번 시작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프터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사프터 당일 몸살 마냥 컨디션이 좋지 않아 크리스마스에 보기로 약속을 미루었다.

나는 그쯔음 이미 극심한 집순이라 집에 있으면 카톡 답을 잘 하지 않았다. 몇 시간 뒤 답장이 기본.

그는 나의 무심함에 마상을 입었는지 줄곧 칼답이던 그의 답장이 점점 늦어졌다. 그러고는 크리스마스에도 그냥 보지 말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그저 안일하게 올해 크리스마스는 혼자는 아니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아놔. 또 혼크? 그의 마음이 큰 게 느껴져 방심하고 있던 나도 약간 타격을 입었다. 결국 근처 사는 고향 베프에게 연락하여 크리스마스날 합정에 분위기 좋은 이자카야를 예약했다. 늘 좋은 식당을 찾아 예약해주는 나에게 그녀는 고맙다고 하다가도. 2차 장소로 이동해선 갑분 본인에게 공감은 안해주고 늘 팩폭만 때리는 내게 섭섭하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나와 더 잘 지내기 위해서라고. 나는 급격히 그녀가 불편해졌고. 그 이후로 우린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때 소개팅 사프터 까이고, 동네 친구도 잃게 된 완벽한 마무리..

베프와 의절 직전 갔던 이자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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