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아니고 케맨헌.
2024년. 새해가 되자마자 소개팅이 들어왔다.
이제 곧 만으로도 30대가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재고 따지지 않고 들어오면 아리가또 하고 나갔다.
평온한 주말 저녁. 여의도 이자카야.
그는 결혼식을 다녀와 멀끔한 수트를 입고 있었고 관상은 꽤나 테토남 이었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목소리와 모든 행동이 에스트로겐 그 잡채였다. 가끔 소개팅을 하다 보면 남성적인 외모와 달리 말투나 행동이 되게 여성스러운 분들이 계신데. 엄청 깬다. 목소리 듣자마자 집에 가고 싶어 진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이번 판도 나가리니 술이나 마셔야겠다. 우리는 1시간 만에 3병을 그냥 깠다. 근데 그도 갑자기 이혼 가정이라며, 부모님이 각각 다른 지역에 산다고 했다. 이런..생각보다 이혼 가정이 많구나. 요즘 이혼 가정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뭐 대수냐 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에겐 대수 였다. 왜냐하면 대학시절 나의 베프와 잠깐 만난 남자친구가 이혼 가정이었는데, 누구보다 밝은 친구들이었지만 막상 가까워지면 제일 어두운 친구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1병 더 시키려는 그를 제지하고 퀵하게 귀가했다.
그렇게 몇 번의 의미없는 소개팅을 더 하다. 갑자기.
올 해는 진짜로 이직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부터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점심시간에 이력서를 업데이트 했고, 퇴근하고는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같이 다이어트도 시작했다. 집중할 게 생기고 삶이 더 루틴해지니 뇌는 깨끗해지고, 몸도 가벼워졌다. 퇴근하고는 곧장 동네 카페로 달려가 노트북을 켰다. 보통은 인강을 들으며 공부를 했지만, 집중이 안되는 날은 내리 다섯 시간 폰만 보다 집에 가는 날도 허다했다. 그렇게 서류가 붙으면 면접 준비 하느라 시간이 후딱 갔고. 나의 4개월 간의 스케줄은 자격증 책 진도에 맞추다 보니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허투루 쓰지않고 의미있게 보내는 나날이라 마음은 더 풍족했다. 는 구라. 공부를 핑계로 가뜩이나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혼자 카페 구석에 박혀있다 보니 더 외로웠다. 게다가 날씨는 또 왜이리 좋아. 카페에서 훈남들을 구경하며 사냥하기 바빴다. 가끔 훈남에게 먼저 다가가 쪽지라도 남겨볼까 싶으면 백이면 백 한 두시간 뒤 여자친구가 그의 앞에 앉았다.
사람도 안 만나고 카페에 처박혀 흘려 보내는 나의 청춘이 아까웠다.
그래서 블릿을 설치했다. 대개 그런 어플에 대한 선입견으로 굳이?의 느낌이 있었으나 이렇게 내 청춘을 허비할 순 없었다. 그나마 블릿은 직장 이메일로 인증하는 어플이니 안전한 쪽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공부하는 카페로 블릿남들을 초대했다. 나는 늘 연락이 귀찮아 채팅으로 시작되는 어플 특성 상 만남까지 잘 이어지지 않았는데, 그 중 나처럼 얼굴부터 빨리 보자는 스타일이 있었다. 그는 연희동에 살며 시간만 맞으면 바로 오겠다는 식. 초등학교 교사라던 그를 카페에서 만났다. 혹시나 사진과 다른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나 나름 꾸안꾸로 신경쓰고 나온 내 앞엔 사진보다 1.5배 정도 옆으로 더 늘려놓은 사람이 있었다. 아..남자들도 사기 많이 치네 ㅎ 워낙 의심걱정이 많은 나는 이상한 사람 나오면 어쩌나 잔뜩 긴장하고 나갔는데 그냥 평범한 서울 시민 이었다. 부모님이 대구 분이라며 쓰는 푸근한 경상도 사투리에 경계도 조금 내려놓았다.
그는 코 앞이 한강이니 같이 가겠느냐 물었고, 몇 시간 대화해본 결과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그의 차에 올랐다. 차도 꽤나 좋았다. 연희동에 사는 BMW 교사남. 그의 전여친 얘기도 듣고 어플에 가입하게 된 얘기를 들으며 산책을 했다. 그는 내가 처음 어플을 해보는 거라는 거에 신기해 하며 너무 경계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본인도 나이를 먹어 예전만큼 적극적이지 않다고. 상대가 마음을 보이지 않으면 노력을 안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원래 마음이 가기 전엔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라며 맞받아쳤다. 그렇게 기분좋은 데이트를 마무리 하고 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그의 호의를 한사코 거절하며. 왜냐면 어떤 또라인줄 알고 우리집을 오픈하냐..아무튼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 헤어졌다. 그렇게 나의 어플에 대한 경계를 풀어준 그 덕분에 그 이후로도 몇 명의 남자들은 동일한 카페로 부르기 시작하는데...
블릿남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사진보다 실물이 2-3배는 더 못생겼다.
대체로 사진보다 뚱뚱하거나 비율이 약간 요상함.
얼굴보자 마자 집에 가고 싶어짐. 대체로 숫기 없도 말도 잘 못하는 편. 대노잼.
소개팅도 끊기고 어플이라도 해서 짝을 만나려는 노력을 해보자. 미래 남편 찾기 숙원사업 마냥 노력을 해보았지만 하면 할수록 현타만 오지게 왔다. 이 사람들이랑 내가 왜 커피를 마시고 있는가. 금융권. 현대차. 금호타이어. 정도 만나고 어플을 지웠던 것 같다. 역시 오프라인에서 못 만나고 온라인까지 가는 놈들은 다 이유가 있다. (나 포함..? 주륵) 근데 재밌는 건 1년 뒤쯤 자산을 증빙하는 어플을 깔아서 다시 미래 남편찾기 숙원사업을 시작하는데. 그 때 블릿남들이 내 리스트에 다 떠서 약간 웃겼다. 역시 어플을 하나만 하는 놈들은 없으며, 그 때도 솔로인 놈들은 아직도 FA 시장을 떠돌고 있다. 나처럼..헤헤. 이 때 온라인은 걸러야 겠다 마음 먹고 나서는 카공하다 보이는 훈남들만 찾아다녔던 것 같다. 이거 완전 케데헌이 아니고 케맨헌 아니노...ㅋ
이 이후엔 실제로 시험도 보고 이직 절차가 진행되며 많이 바빠졌고, 이직이 거의 확정되고 나서 다시 소개팅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한다..투비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