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남자와 환상의 티키타카.
결정사 매니저인 친구 어머님께 내가 요청한 것은 딱 세가지.
1. 나이는 30대 일 것.
2. 키는 176cm 를 넘을 것.
3. 직장은 대기업 이상일 것. (전문직이나 사업가일 필요없음)
처음으로 어머님께 86년생을 소개받았다.
이 분은 나이가 좀 있지만 집안이 좋고 인성도 좋으시니 일단 대충 만나 보라는 식. ㅇㅋ. 나는 들어오는 선개팅을 굳이 거절하진 않았다. 질릴 때까지 다 만나보자!
# 5. 서울 치과 페이닥터. 마흔 살.
광화문 파스타 집.
너드미 빠방한 사진과 달리 실물이 훨씬 나으셨다.
초반의 결정사 남들은 주로 카페를 선호해 더 면접같은 분위기를 풍겼다면, 그 이후 사람들은 대체로 파스타 집을 예약해주셨다. 하도 이놈 저놈 만나다보니 그런 기본 매너도 이젠 감사했다.
문제는 파스타 돌리면서 나누는 형식적인 대화가 너무 어색했다. 그냥 친구가 해주는 소개팅이면 대충 아무 이자카야나 잡아서 술이라도 마실텐데. 뭔가 결정사는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마흔 살의 치과의사는 키도 크고 피부도 좋았다.
퇴근하고 주로 헬스를 간다하니 뱃살도 나이에 비해 없는 편이었다. 그냥 직장 상사랑 밥 먹는 기분. 아무 느낌이 안 들었다. 형식적인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다. 어머니께도 좋으신 분이나....의 매번 하는 레퍼토리로 나의 피드백을 전달 드렸다.
그러고 한동안 매니저 어머님의 연락이 없었다.
내가 피드백을 드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날 혹은 다다음날 다음 매물들을 보내주셨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아.. 어머니도 계속 되는 나의 거절에 이제 매물들도 씨가 말랐나보다 큰일났다 싶었다. 이래서 매물이 많은 듀오로 가라는 건가? 벌써 매물 소진되면 어떡하지 내가 너무 불성실하게 선개팅에 임했나 반성하던 어느 날 매물이 떨어졌다. 기다렸다 받으니 왠지 더 감사했다. 이번엔 성실히 임해보겠노라!
# 6. 회계법인 컨설팅 초동안남.
감사하게도 퇴근하고 우리집 쪽으로 와준다 하여 대충 내가 아는 이자카야 에서 만났다. 더이상 어색하게 파스타 돌리고 와인한잔 때리는 연기는 하고싶지 않았다.
젠장. 하필 비가 우라지게 내린다.
내 헤어스탈 괜찮나 하고 들어서는데 그가 없다.
셔틀을 탔는데 차가 막혀 늦을 것 같다던 그는 20분 뒤 환하게 등장했다. 뭐야..와꾸 괜찮은데?? 나보다 7살이 많아 반년 뒤면 마흔을 앞둔 매물이었기에 별 기대없이 나왔는데. 대박 초동안 이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자 마자 환히 웃었고, 그는 연신 늦어서 미안하다 사과했다. 저는 오히려 저희 동네로 와주셔서 감사한걸요. 지 집 앞 카페 찍어 보내는 색끼도 있는데..ㅎㅎ
그 이자카야는 두번째 선개팅남이랑도 갔던 곳이다.
추억이 좋지는 않다보니 기대도 없이 나갔는데 이런.
같은 장소인데 이렇게 느낌이 다르다니. 역시 늘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중요하다. 맛있는 안주에 사케 한병씩 하며 얘기를 나누는데 모야모야 대화 왜케 재미난고야. 늦은시간에 만나 이제 집에 가려나 싶은데 2차를 제안하셨다. 우린 근처 이자카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더 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환상의 티키타카! 그 자리에서 바로 애프터 약속도 잡았다.
애프터는 한남동 퓨전 한식당.
네이버 지도를 보다 이제 스윽 나가려고 하는데 카톡이 왔다. 30분만 미룰 수 있냐고. 아직 출발 안해서 괜찮다라고 말하고 식당에서 만났다. 예약자명에도 없고 웨이팅을 해야 한대서 아놔 설마 예약도 안했나 싶었는데 워크인으로 자리를 잡아놓으셨다.
J라 소개팅 웨이팅 제일 극혐하는데 휴우..안도했다.
앉자마자 우리는 와인 한병을 시키며 한 주간 있었던 일들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는 왜 나에게 카톡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냐 따지듯 물었다. 그래서 오늘 안 보는 줄 알았단다. 나는 원래 애프터까지는 계속 연락 안한다. 카톡으로 하루종일 할 얘기도 없다 라고 하고 와인을 퍼마셨다. 그러고 본인이 아는 한남동 맛도리 집으로 이동했는데 유튜브에 나왔다나? 한두시간 웨이팅이 있다. 그냥 근처 술집에 들어가 청하를 달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동네에 와있었다.
소주를 또 준내 달렸다. 오랜만에 중간에 필름이 약간 끊겼다. 근처 바에 가서 위스키도 마셨다. 그리도 또 와인.. 그러고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그래 뭐 첫 만남에 맘에 들기가 쉽나. 서로 뿅하면 걍 바로 사귀는 거지. 일주일 뒤 신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오랜만에 강남으로 가 볼일을 보고 조금 일찍 신사로 넘어가는데 그가 천천히 오란다. 자기 조금 늦을 것 같다고. ㅋ....장난? 뭐 맨날 늦어ㅡㅡ 날씨도 쪄죽겠는데. 이번 여름 더위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모르는 사람 없을 거다. 심지어 예약도 안해놔서 내가 일찍 가서 테이블링을 걸어뒀다. 저녁이 되어도 무더위에 내 인중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내가 웨이팅 걸어두었다니 고맙다고 하고는 더우니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라는 그. 좀만 기다리면 들어갈 것 같은데 뭐하러 커피를 시키나 그냥 밖에서 기다렸다. 점점 빡이쳤다. 카카오택시를 타고 시원하고 편하게 달려온 그는 15분 정도 늦었나. 나의 썩은 표정을 보고는 카페를 찾아나섰다. 동네 두바퀴쯤 돌아 카페를 찾았고 거기서 대화를 나누며 화를 식혔다. 그는 말을 조리있게 잘하고 다정하고 자상한 스타일 이었다.
일주일 뒤 성수에 가기로 했다.
우리집에선 멀지만 뭐 데이트로 가볼 수도 있지. 내가 그날 저녁 결혼식이 있어 일정조율로 삐그덕 대다 결혼식 보고 넘어가기로 했다. 본인은 성수에서 미용실 볼일 보고 혼자 놀고 있으면 되니 천천히 오라고 했다. 그래도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 나는 결혼식장에 일찍 가 축의만 얼릉 내고 성수로 넘어갔다.
성수로 넘어가는 1시간 내내 그에게는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 점점 빡이 쳤다. 왜냐면 그가 성수에 오라고만 하고 어디서 볼지 말을 안해줬다. 나는 하..머리하는 동안 왜 답장을 안하는거야. 이제 슬슬 머리도 다 끝나갈텐데. 후우 그래도 보채지 말고 답장오면 물어보자. 하고 기다리다보니 성수역에 도착했다. 아놔. 어디로 가지. 일단 화장실에서 시간을 버텨보자 하고 있다보니 연락이 왔다.
소개남: 어디쯤이야~ 언제 도착할 것 같아? ㅎㅎ
나: 나 성수역인데..어디로 가?
소개남: 헉! 나 아직 머리 중인데ㅜㅜ 근처 카페에 들어가있으면 내가 머리하구 그리루 갈게~~
나: 나 오늘은 너무 더워서 못 돌아댕기겠오. 그냥 다음주에 보자 ㅜㅜ
소개남: 헉..나 이제 머리 끝났어. 식당 예약도 해놨눈데...ㅠㅠ
아놔 미친놈.
이 쪄죽겠는 날씨에 또 근처 카페 가있으란다. 아니 난 성수동은 멀어서 잘 오지도 않아 당장 몇번 출구로 나가야 될 지도 모르겠는데. 이 무더위에 또 카페는 어케 찾아다니냔 말이다. 빡이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그는 나와 네번째 만남을 가지는 동안 한 번도 제 시간에 온 적이 없었다. 아..이 새끼 나를 딱 그 정도로 생각하나보다 싶었다. 늦어도 되는 사람. 기다리게 해도 되는 사람. 나는 미련없이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보지 못했다.
2주 뒤 위 사건을 전해 들으신 매니저 어머님께서 전화가 오고.. 그 뒤에 참트루 뤼얼 대환장 파티 시작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