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사 손석구를 만나다

노블 결정사도 갈수록 악성 매물만 남는다.

by 초록

매니저님의 미스커뮤니케이션 이후, 조금 미안하셨는지 다음 매물을 엄청 신중히 골라주셨다.


어떤 분들은 사진과 프로필을 보내시다가도, 이 분은 경제력이 빠듯해 당장 결혼하긴 힘들 것 같다며 철회하기를 몇 번. 금융권 사내 변호사를 추천해주셨다. 사시 최연소 패스였나. 암튼 무슨 타이틀이 많았음. 그래 속는 셈 치고 다시 잘 해보자!



# 7. 금융권 사내 변호사.


키도 직장도 무난했다.

이제는 소개팅도 그만 하고 싶었다.

이성적 매력이 덜 해도 좋으신 분이면 일단 한 번 만나보자 싶었다. 세상에 없을 딱 맞는 누군가를 찾을 시간에 정들이는 게 빠르겠다고.


다행히도 카톡에서 상대는 자상한 편이었고.

경복궁역 근처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주셨다.

운동이 취미여서 퇴근하고는 줄곧 헬스갔다 러닝까지 두탕을 뛰시는 듯 했다. 오..괜찮은데?


오늘도 퇴근했지만 무더운 오후다.

경복궁역으로 환승해서 가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결국 오랜만에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예쁜 프랑스풍 식당이 하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상대를 처음 뵈었는데 깔끔한 훈남 이셨다. 근데 보자마자 “안녕하세요!!!!!” ㅎ. 목소리가 겁나 큼. 우리 주변 테이블은 퇴근 후 모임을 위해 모인 근처 금융권 아줌마들과 몇 커플들이 있었는데. 남들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옆테이블 줌마들이 소개팅 하고 있는 우릴 흥미롭게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계속 얘기를 나누어봐도 그의 데시벨은 낮아지지 않았다. 즉, 표현하기 어려운데 뭔가 이상했다. 대화 중 멍을 때리기에 이 사람도 겁나 지겨운갑다 하고 보면. 창 밖의 고양이가 귀엽다며 한참을 쳐다보고 계셨다. 한마디로 “은또”. 은은한 또라이셨다.


숨막히듯 턱턱 막히는 티키타카에 귀가가 마려웠다.

웬만하면 2차를 사드리고 귀가하고 싶지만 오늘은 안되겠다. 줄곧 창밖을 보며 멍때리던 그는 근처에서 2차를 제안했다. 엥..? 댁도 집에 가고싶으신 거 아니에요? 그도 그럴 것이 지 집 근처 식당을 찾아 본인은 5분 정도 걸어왔단다..ㅋ


우선 2차를 가기로 하고 식당을 나온 뒤,

아무래도 컨디션이 안 좋아 이만 가봐야 겠다며 서둘러 작별 인사를 했다. 적잖이 놀라시던 상대분. 나는 이번만큼은 결정사 졸업하자는 마인드로 왔다 된통 당하고는. 집 가는 길에 바로 배민을 켜 청년치킨을 시켜 먹었다. 그렇게 사람만나고. 스트레스 받고. 살만 계속 찌는 중..


# 8. 금융권 머리숱 없는 손석구 호소인.


매니저님께서 이 분은 손석구 스타일인데,

참 괜찮아 보여 본인이 먼저 소개해달라 다른 매니저에게 물어왔다며 강력추천을 해주셨다.


나는 이미 문래 아파트남과 직전 소개팅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매니저님께 늘 예스걸이었던 나는 이제 아무나 소개받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80년대생은 웬만하면 걸러야겠다고.


다행히도 이분은 90년대생이었다.

근데 사진의 보정 정도가..보정이 아니라 마치 화장하는 어플 쓴 느낌? 암튼 이런 사진 보정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다 내 스타일도 아니라 결정사 가입 이후 처음으로 거절의사를 밝혔다.


나의 거절을 처음 받아보신 매니저님은 엄청 당황하셨는데.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쪽에다 나를 만날 건지 먼저 물어보셨다고 한다. 즉 이미 상대방이 오케이한 매물을 내게 보여줘 무르기가 애매한 상황이셨던 듯. 매니저님은 멀쩡한 사진 하나를 더 보여주며 남자는 직접 봐바야 안다고 끈질기게 설득하셨고. 괜한 실랑이 하기 싫어 알겠다 하고 나갔다.


삼각지 레스토랑.

손석구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아니..키도 피부도 머리숱도 걍 아예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쉣. 소개팅을 하면 할수록 여자의 사진 보정에 학을 떼는 남자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아무튼 우리는 시간을 떼워야 한다.

제일 뻔한 여행 얘기. 각자의 휴가 계획과 직전 휴가 썰들을 풀어내며 힘겹게 티키타카를 이어갔다. 아..집에 가고 싶다. 근데 여름이라 저녁도 먹고 실컷 떠들어도 아직 해가 중천이다. 소주나 까야겠다 싶어 대충 눈에 보이는 마라탕 집으로 이동했다.


나는 결정사에서 만난 분들 중 할 얘기가 마땅히 없는 분들과는 편히 결정사 얘기를 했다. 내가 몇 번째냐 보통 여성 분들 연령대나 직업은 어떻게 되시냐. 내 사진은 뭘 받았냐. 실물과 달라 실망하신 거 아니냐 등등..


나는 우선 요즘 소개팅 많이 하세요~? 하며 정적을 깨는데 그 분이 정색하며 “그런 걸 왜 물어보세요..?” 하셨다. 아마도 보아하니 지인 소개팅 잘 안 들어올 스탈이라 내 질문에 긁히신 것 같았다. 무례했다면 ㅈㅅ. 그러다 내 사진은 무얼 받으셨냐 제가 최근에 많이 부어서 다를텐데 실망하셨겠다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근데 그 분이 내 프로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거다.

진짜요? 난 이전에 문래 아파트남에게 내 사진을 뭘 받았는지 들어 사진은 알았지만 내 프로필은 무슨 내용이 나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오 네네 보여주세요! 본인은 프로필은 안 보여줘도 되고 사진만 보여달란다.


입이 방정이지.

저 사진보고 처음으로 거절하려 했어요. 사진이 화장한 것 같이 이상하게 나왔던데요? 라고 했고 그는 그의 플필 사진을 보고 기겁했다. 헉..이거 엄청 옛날 사진인데 누가 보낸거지. 우리 엄마 프사에 있는건가..ㅂㄷㅂㄷ


그렇게 나도 내 프로필을 처음 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 분은 본인 사진에 충격을 먹고 찍어가도 되냐 물어보셨고. 뭔가 찜찜했지만 본인 사진을 본인이 찍겠다는데 거절하기도 뭣해 그냥 찍게 내비두었다. 그 이후로도 티키타카는 안 됐고 나는 집에 가겠다 했다. 뜬금없는 귀가 선언에 당황하신듯 했지만 굳이 내가 택시타는 것까지 다 기다려주셨다.


문제는 일주일 뒤.

심심해서 카톡 리스트를 훑는데 그 분의 프사가 내려갔다 새 사진이 올라왔다 하는 것. 내 경험상 소개팅 이후 마상을 입으시는 분들이 카톡 프사로 장난치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매니저님의 전화가 왔다.


“혹시 저번 만남 때 프로필 주고 받았어요?”

네..근데 프로필은 저만 보고 상대는 사진만 보셨어요. 아...지금 상대 쪽에서 왜 그런 사진 보냈냐고 컴플레인이 왔어요. 아마 상대방이 자기 프로필 보여달라고 카톡이 갈 수도 있는데 대충 둘러대며 절대 보여주지 마세요. 네....


다행히 그분께 프로필을 보여달라는 카톡은 안 왔다.

본인의 어머니가 가입해준 결정사인데. 간섭받기 싫어 나와의 만남은 비밀로 하고 나왔다면서. 본인 사진 컴플레인은 엄마에게 바로 했나보다. ㅉㄸ색끼..


올해 4월에 가입했으니 결정사 가입도 5개월이 지났다. 5개월을 뒤 느낀 점: 초반 매물들이 제일 훌륭하고 갈수록 고스펙인데도 불구하고 결정사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악성매물만 남는다. 그러니 혹시 누구라도 결정사를 이용할 누군가가 있다면 되도록 걍 삼 세판 안에 승부 보시길.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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