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vs 재력, 인생의 밸런스게임
올 여름 연이은 소개팅 실패로 지쳐갈 때쯤 매니저님이 선한 인상의 세무사를 주선해주셨다.
#9. 182cm, 87년생 강남8학군 BMI 과체중 세무사.
계약직 세일즈 부서에서 근무하다보니, 나의 미래 배우자는 안정적이면서도 수입이 괜찮은 '대기업' 이거나 '전문직'이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키 큰 전문직이 들어왔다. 이번엔 마음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임해봐야지 다짐할 때쯤, 상대방에게 카톡이 날라왔다.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보자던 분. 후후..전문직 역시 쉽지않네. 오랜만에 카페 면접을 보자니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
주말 오후 꽃단장을 하고 카페에 가니, 내가 받은 증명사진보다 30-40% 정도 못 생긴 사람이 앞에 앉아있었다. 이 정도는 익숙하다 이제. 어색하게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한 두마디 나누는데 젠장. 이 사람 리액션 모야모야. 눈물나게 따수운 사람이다. 대낮에 카페에서 어색하게 마주앉아 티키타카를 나누는 데 전혀 힘겹지가 않다. 심지어 오래된 친구마냥 편해서 입이 터졌다. 따뜻한 미소로 늘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해주시던 그. 그렇게 몇 시간을 떠들다 보니 저녁시간이다. 그가 미리 알아봐둔 파스타집으로 향했다.
그는 리액션 뿐만 아니라 매너 또한 훌륭했는데, 모든 파스타를 한 입에 먹기 좋게 덜어서 내 접시에 올려다 주었다. 30대가 되고는 수저도, 음식도 내가 퍼주는 게 늘 마음이 편했는데. '감히 어디 여자가! 넌 받기만해!' 라는 식의 몸에 밴 매너에 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그렇게 오랜만에 처음 뵌 분과 5시간은 내리 수다를 떨고헤어졌다. 곧 있을 추석 연휴에 길게 휴가를 간다하니 그 전에 한번 더 보자며, 몇 일 뒤 애프터 날짜까지 바로 잡았다.
을지로 삼겹살집.
삼쏘 매니아라는 나를 위해 애프터는 삼쏘로 잡아주셨다. 내가 애프터를 향하는 길 제일 바랐던 한 가지. 아..제발 저번보다 조금만 좀 잘 생겨 보여라. 가끔 헤어를 만지거나 스타일을 바꿔서 애프터를 오시는 분들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약간 더 호감형으로 변신해 있었다. 제발제발제발. 인성 갑인건 길게 안봐도 알겠으니 이성으로 조금만 더 보이게 해주세요 하나님 부처님 알라알라신 젭알.
삐빅.
젠장 지난 번 보다 더 못생겨 보인다. 조졌다. 스타일도그 무엇도 지난 번과 달라진 게 없는데 왜 더 못생겨 보이지? ㅋㅎ ㅠ 하..의사 선생님 왜 이렇게 스마일라식을 잘 해주셔서 제 눈에 모든 게 보이게 하시나이까. 내눈을 찔러서라도 시력을 떨어뜨려 놓고 싶다. 흐린 눈이 되고 싶다. 쏘스윗 인성갑 세무사님은 첫날 들은 나의 독서 취향을 바탕으로 내가 여행가서 읽을 수 있게 에세이 한 권을 사오셨다. 내가 개띠인 걸 생각하셔서 강아지 그림의 키링과 함께 ㅜ. 디테일 뭐세요 선생님?
그렇게 2차로 그가 알아봐둔 와인집으로 향했고, 그는 늘 나보다 일찍 와서 2차 장소까지 미리 파악해둔다고하셨다. 길을 헤매지 않기 위해서.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와 동갑이었던 문래 아파트 초동안남이 생각났다.그는 매번 15-20분씩 나를 기다리게 했고. 결국 사프터 때 내가 열받아서 헤어지게 됐는데. 그 땐 내 인성이문제인가 싶었더니 이런..이렇게 미리 와서 사전답사 해주시는 천사도 계셨다. 심지어 그 보다 키도 크고 전문직임.
휴가를 다녀와서 삼프터 하기로 약속한 후 나는 발리로떠났다. 그리고 나는 온전히 휴식을 취하기 위해 여행을 다녀오면 연락하겠다 했고, 그는 여행이 끝나갈 때즘 연락을 먼저 했다. 그러나 내가 발리에서 한 행위는 이지혜 인스타 훑어보기. 이지혜 남편도 세무사에 성격이 스윗하지만 외모 ㅠ. 나보다 더 이쁘고 잘난 이지혜도 얼굴은 포기했는데 나 따위가 뭐라고..라며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지만 그럴 수록 상대에게 정이 떨어졌다.
발리에서의 온전한 휴식 후 나는 세무사에게 마음이 식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약속된 삼프터에 나갔지만. 그의 무턱. 치아. 통통한 손. 등등 불편한 게 그의 스윗함을 이겨버렸다. 그래..이렇게 좋은 분이 있어도 내가 마음이 가지 않는다면 나는 걍 결혼을 못할 사람이다. 내가 그토록 바래왔던 결혼 이상형 (키 180, 대기업, 인성갑, 쏘스윗, 부모님 개부자) 였지만 알빠노. 얼..얼굴....나 얼굴보네 ㅜ 하..아쉽지만 사요나라입니다. 인성갑 세무사님 좋으신 분 만나시길.
#10. 치과 페이닥터. 와꾸+성격+뚱보 쓰리폭탄 남.
이후 치과의사 한 분을 소개해주셨는데. 증명사진은 내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치과 의사라 하니 그냥 나갔다. 젠장. 사진도 별로였는데 하...사진보다 3배정도 살이 쪄있어서 마이 팔뚝이 터질 것 같았다. 카페에서 만났는데 무표정에 말수가 없던 그는. 그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아 말을 잃은 나 때문에. 억지로 대화주제를 몇 개 꺼내주셧다. 암쏘쏘리 벗 궁금한게 리얼 하나도 없으세요 ㅠ. 그렇게 1시간 만에 퀵하게 ㅂ2.
#11. 아빠가 강남 개원의인 그냥 대기업남.
이분은 키도 178에 사진도 엄청 훈남이었는데 화질이 80년대 급이었다.
아버지가 개원의로 재력이 좋은 집안 같은데 나한테 기회가 온 것은. 내 추측으로는 그쪽 아버지와 상대방 둘 다 나와 같은 대학교였다. 대학이 이어준 인연일까?. 나보다 늦게 퇴근하는 그를 위해 그의 직장 쪽으로 이동했다.
을지로 와인바. 분위기가 좋았다. 파스타, 생선구이, 와인 등을 주문했고. 나는 늘 먹던 레드 와인을 주문했는데 그가 느즈막히 속삭였다. 생선엔 화이트인데....맞네. 시키고 보니 생선구이를 주문한 게 떠올랐다. 아니 내 취향인데 알빠노 라고 하고 싶지만, 왠지 강남 부잣집 도련님 앞에 나의 지식이 바닥을 드러낸 것 같아 약간 부끄러웠다. 그러고 위스키는 좋아하지만 종류는 1도 모르는 나를 위해 무슨 조승연 마냥 위스키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셨다. ㅇㅇ 이건 좀 재밌으셨어요. 위스키 체고.
2차로 야키토리 집으로 이동했고, 맥주 한 잔을 하는데 그 날 유독 피곤했다. 월요일 이기도 했음. 그와 이런 저런 얘기 나누는데 엄청 신나지도 엄청 별로이지도 않았지만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도 내가 엄청 피곤해보인다 했고, 그렇게 나는 택시타고 칼 귀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집에 돌아와서도 몇 번의 연락을 주고 받고 나는 잠이 들었다. 그렇게 더 연락은 오지 않았는데..
몇일 뒤 매니저님에게 연락이 왔다. 그 분이 나를 맘에 들어하시는데 내 맘은 어떻냐고 ㅋ.
아니..애스끼도 아니고 30대 중후반 이시면서 왜 본인 마음을 직접 얘기안하고 매니저 통해서 전달하세요ㅠ 강남 친구들은 모두 마마보이 에겐이신가? 아무튼 매니저님께 나도 한 번 더 뵙겠다고 말씀은 드렸는데, 그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ㅋㅋ..티키타카 그저그랬던 11번째 노블남도 빠이...이렇게 그가 내 올 해 마지막 노블남이 되었다.
좋은 경험 이긴 했지만, 집안 좋은 사람들 덕에 눈만 자꾸 올라가서 뭐가 맞고 틀린지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매니저님이 몇 분을 더 보여주시긴 했지만, 상대쪽에서 거절을 했는지 더 연락이 오진 않았다. 그리고 아마 열 번 정도 했으니 나는 이제 후순위로 밀려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매칭이 끊기고 나선 한 살 더 먹기 전에 풀이 많은 듀오를 가입해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개인 소개팅도 적게 한 편이 아니라 이렇게 안 되는거면 그냥 이제부턴 혼자 살 준비를 하는 것도...그담은 일반 소개팅 썰로 돌아오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