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 우울감 뫼비우스의 띠
끝없는 무기력
새해는 열심히 살아보자 다짐했던 1월.
사실 다짐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나의 핑계는 생리 전 증후군. 그렇게 치면 생리 4주 전도 생리 전이고 생리 1주 전도 생리 전. 그냥 매일이 우울한 것임.
지금 더 허탈한 느낌은.
남과의 비교보다 불과 1년 전의 나와 비교해 보았을 때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이직으로 주위에 축하받고, 인사 다니느라 바빴던 그때. 살도 47-8kg을 유지하며 엄청 이쁘게 꾸미고 다녔다. 하와이 한 달 살기도 하며 추억도 쌓고. 한국에 돌아와선 새벽운동과 출근 후 운동, 영어공부까지 루틴을 착실히 지켰다. 나 스스로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주변인들도 나를 동경해 줬다.
그러나 지금은 나 스스로가 안쓰럽다.
기대가 컸던 첫 이직 생활은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았고, 상사의 인정도 받지 못했다. 조직 개편으로 업무 분장도 애매해지며 내 가치에 대해 스스로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자존감이 떨어졌고 몸은 더 무거워졌다. 다시 집순이로 돌아갔고,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며 못생겨졌다. 나름 작년 한 해 동안 사랑도 찾고, 커리어도 찾아보자 했던 노력들은 뭐 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진정 못난 사람은 아닐까.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못난 생각만 많아진다.
30대.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미혼, 기혼, 애 엄마, 해외살이.
나의 고향 친구들은 작년 추석 줄줄이 출산을 했다. 나는 연말, 연초를 이용해 친구들의 신혼집을 찾았고. 100일 남짓 된 인형 같은 아기들을 보았다. 나는 혹여 집에서 아기만 돌보는 친구들이 산후우울증은 없을까. 고되진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녀들은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신축 아파트, 육아휴직, 아기 꼬순내.
그녀들의 삶은 나와 180도 달랐다. 서울 원룸 오피스텔에서 배달음식으로 매번 끼니를 때우는 나와 달리. 그녀들은 지방에서 1천 세대 이상의 신축 아파트에 살며 아기들을 키우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정적인 가정. 자기 배 아파 낳은 아기들을 보며 찡얼대고 힘들어해도 내 친구들은 그런 아기를 보며 행복해했다. 둘째도 빨리 가지고 싶다며.
그런 고향친구들을 볼 때마다 내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럽게 된다. 친구들의 신혼집 은 내가 살고 있는 원룸 오피스텔 매매가와 별 차이가 없다. 그녀들의 소득은 나의 절반에 지금은 육휴로 벌이도 없지만, 그들은 돈에 대한 걱정 없이 둘째를 준비한다. 부럽다. 서울에선 신축 아파트도, 아기 육아비도, 그 무엇도 상상이 안 간다. 그럴 때마다 난 무엇을 위하여 서울에서 외롭게 생고생을 하나 허탈하다.
이미 지방에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는 돈을 모았지만. 서울에서 그 정도 돈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실 내가 작년 소개팅이 잘 안 됐던 이유도 생각이 너무 많았다. 나는 결혼하면 무조건 아파트를 매매할 생각이었는데. 생애 첫 주택 6억까지 대출받으면 한 달 이자만 300만 원이다. 거기에 회사에서 주택자금을 대출받으면 원리금까지 갚아야 하는 구조라 월급에서 100만 원 이상이 자동으로 차감된다.
즉 아파트 대출이자만 월 400만 원 이상이 나가는 셈. 그럼 한 사람의 월급은 그대로 은행으로 가고 다른 한 사람의 월급으로 생활을 하자니. 둘은 되는데 내 아이의 영어유치원, 몽클레어 패딩, 학원비 등을 생각하니 결혼이 엄두가 안 난다. 그럴수록 상대의 집안이나 직장을 더 따졌다. 나는 진정 정신병자인 걸까.
물론 아직 서울에서 친구들 중 출산을 한 친구는 없다. 자가가 있는 친구도 없다. 결혼을 한 친구도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해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대체 무얼 위하여 서울에 붙어 있나 그 근본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부모 지원없는 서울생활은 이제 출세의 영역이 아니라 자해의 영역인 것은 아닐까.
예전엔 곧 죽어도 서울이지. 구축이어도 서울이지.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 고향 친구들의 신혼집을 볼 때마다 현타가 온다. 서울에서 내가 죽기 전에 신축 아파트에 살 수 있을까. 서로 계산적인 30대 남녀 사이에서 시집은 갈 수 있을까. 친구들은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동안 나는 직장에서 잘리지는않을까. 내 커리어는 어떻게 쌓아야 하나. 시집은 갈 수있을까. 아파트는 살 수 있을까. 불안만 커진다.
아 몰라. 우울하다. 무기력하다.
그냥 이렇게 태어났나 보다. 그냥 일단 내일은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안 보인다. 정신병자 우울증 환자의 오늘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