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솔은 다 좋은 남자일까.
좋은 남자란 뭘까.
나에게 좋은 남자란.
집돌이. 집-회사-헬스. 회식이나 단체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고 술도 잘 못 마시는. 사람에게 늘 진심이고 사랑에 있어서는 순수한.
후..이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전직장 후배였다. 한참 후배였지만 대학원을 나온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사람들은 생긴 건 멀끔한데 숫기없고 어딘가 어리숙한 그를 신기해했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싶어 재질이랄까. 팀원들은 그가 남편감으로 좋은 남자라며 나와 엮을 때도 있었지만 이성적 매력은 안 느껴졌다.
그는 늦은 취업 후 연애를 하고 싶어했다.
키가 커 허우대 멀쩡하고 학벌도 직장도 좋은 그에게 사람들은 연신 소개팅 매물들을 구해다 주었다. 그렇게 그는 연상의 누나와 짧은 연애 후 차여서 혼이 빠진 채로 사무실에 앉아있기도 하고. 하튼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나는솔로 29기 영식의 온순한 버전이랄까.
그는 친구가 많이 없고 늘 과묵했다.
퇴근 길 어쩌다 마주쳤는데 그가 어디가냐고 물었다. 영어학원에 가는 길이었는데 뭔가 쪽팔려서 놀러간다고 했고. 그는 자기랑도 놀아달라며 애교를 부렸다. 아.내가 후배를 너무 안챙겼나? 쟤가 저런 말도 할 줄 아네. 얼마 후 우리는 삼쏘를 달렸고 친구가 되었다. 나는내 얘기를 들어줄 과묵한 술 친구가 필요했고, 그는 앞에서 재잘거려줄 친구가 필요했다.
전직장에서 사내연애만 이미 두 번을 했던 나는.
이번에도 같은 부서 동갑내기의 직진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아놔. 같은 회사만 아니어도 가볍게 만나나 볼텐데. 애는 참 착하고 괜찮은데 도무지 이성으로 안 느껴졌다. 그냥 착한 동생 느낌?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서 남녀관계로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몇 해의 솔로기간을 보냈고.
그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나는 종종 술친구가 없을 때 그를 호출했고. 그는 언제고 나의 집 앞까지 찾아왔다.그리고 사무치게 외롭던 어느 봄날. 그가 해외출장에 가서 나에게 개인 카톡을 하더니 우리는 매일 카톡을 주고받게 되었다. 나 역시 아 결혼은 이런 친구랑 하는 게 맞겠지. 바로 결혼해버리면 사내연애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받을 일 아닌가 하며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출장에서 다녀오자마자 우린 만났고.
그는 출장지에서 사온 스타벅스 텀블러를 내게 선물했다. 나는 계속 이 친구와 만남을 이어가야 하나. 그냥 이렇게 착한 친구와 결혼을 해 평생 친구가 되면 어떨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그 때. 그가 나에게 짐을 맡겨두고 화장실에 갔다. 그 때 종이가방 안에서 울리던 그의 폰. 미리보기 창엔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이의 서운함 가득한 메세지가 와 있었다. “아직 자? 나는 빨리 보고 싶은데...”
미친.
나한테는 여친이랑 정리했다고 만나보자던 모솔남이 알고보니 여친한테 잔다고 속이고 나와 데이트 중이었다. 소름끼쳤다. 이래서 속을 모르겠는 애들이 더 무섭다는 걸까. 나는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그 뒤로 우린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 이후에도 나는 좋은 남자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더러운 이면을 보고 들으며 모쏠남도 양아치남도 모조리 다까버리는 철벽녀가 되었다.
소개팅에 지쳐 또 외로워져 가던 올 해.
주위 이성 두 명에게 호감 표시를 받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학교 후배와 작년 술자리에서 만난 업계 오빠. 어제 가혹한 소개팅 후 우연히 역에서 업계 오빠를 만나 맥주 한 잔을 더했다. 우리는 늘상 하던 소개팅 얘기를 소재로 맥주 몇 잔을 뚝딱 해치웠다. 솔직히 그와의 첫 만남에 그는 엄청 매력적이었지만 딱 봐도 양아치 과였다. 얽히면 위험할 것 같은. 나는 호감 표시를 받은 후배와 그 오빠 모두 나쁜 남자로 정의하며 이성으로 곁에 두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양아치과였던 주위 오빠들도 이젠 다 애낳고 본인 가정을 꾸리며 얌전히 잘 살고 있었다.
문뜩 모솔남과의 과거 썸도 떠오르며 역시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되는걸까 혼란스럽다. 아무래도 나 지름 외로운거겠지. 이래서 까고 저래서 까면 자만추는 언제 하나. 양아치를 내가 사랑으로 길들일 수 있을까. 떠오르는 건 성급한 결혼 후 이혼엔딩 뿐이다. 아 대체 좋은 남자란 뭘까. 일단 만나보고 알아가는 게 맞는걸까. 주변인들도 인정한 특급 쎄믈리에기에. 조금이라도 쎄하면 시작할 엄두도 안난다. 하 나만 어렵냐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