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 신비주의 스콜라 철학자 '빅톨 위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다. 친숙함과 낯섦의 끝없는 변주, 그것이 여행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것이다(24). 그러나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여행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내가 여행에 대해 냉소적인 진짜 이유는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파노라마식 관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파노라마란 무엇인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퍼레이드다. 거기에는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얼굴과 액션이 지워져 있다. 또, 그때 풍경은 자연이라고 하기도 어렵다(15)."
프롤로그부터 무지 흥미롭다. 나는 여행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나 역시 작가가 말하는 파노라마식 여행을 하진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이미 우리는 영상이 실물을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낯선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잠시 일뿐, 어떠한 내적 동요나 찐한 감흥을 받기는 힘들다는 것을 4년 전 유럽여행을 하면서 깨달았다.
"이질적인 마주침과 신체적 변이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어떤 화려한 여행도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패션' 혹은 '레저' 이상이 되기 어렵다. 하나의 문턱을 넘는 체험이 되지 않는 여행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17)"라고 작가는 말한다. 지난 여행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봤는지도 기억에 남지만,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가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곤 한다. 주요 관광지를 급하게 둘러보는 식이 아닌, 현지인과의 많은 접촉, 여행자들과의 만남, 지인들과의 재회를 통해 뭔가 진정한 '체험'을 할 수 있길 기대하며 미국 여행을 준비해보았다.
여느 다른 한국 학생들과 다를 것 없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식 영어를 배우고 미드,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미국 정치에 대해 배우고, 팝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겐 미국이란 나라가 상당히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다. 그러나 심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것과 달리 미국은 물리적으로 상당히 멀어 우리나라와 시간차도 엄청나다. 때문에 내게는 한번 여행하자고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나라이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인턴, 유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 친구들이 있는 김에 샌프란시스코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로 틈틈이 모은 돈과 그리고 가족들의 도움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총 여행 일정은 시카고, 뉴욕에도 친지, 친구들이 있어 루트를 샌프란시스코-시카고-뉴욕(San Francisco-Chicago-New York)으로 정했다. 친구 만나러 미국 갔다고 해도 될 만큼 친구들이 있는 거점을 중심으로 루트를 정했다. 또 첫 미국 여행이니만큼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말고 천천히 즐기자는 생각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0일, 시카고는 6일, 뉴욕은 8일 정도 나름 넉넉하게 일정을 잡았다. 3월 11일 16시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 후 시간을 거슬러 3월 11일 오전 10시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03. 11. 2016
24일의 짧고도 긴 여정의 첫 시작은 버클리였다. 버클리대학에서 유학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사는 sorority의 게스트룸에서 4일 동안 신세를 지기로 했다. 공항에서 내려 바트를 타고 버클리로 가는 내내 이국적인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날씨는 흐리고 비가 왔지만 창밖을 보며 마치 자로 잴 수 있을 법한 레고 블럭같은 쭉쭉 뻗은 도로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장시간 비행을 마친 후 피곤한 몸이었지만 반가운 얼굴을 보니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미국도 처음이고 미국 명문대학 방문도 처음인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선했다. 학교 교정도, 학생들도, 건물들도... 각 단과대별로 건물에서 과의 특색이 보이는 것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버클리의 Doe Library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곳을 밟으면 F학점을 받는다는 괴담(?)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도 F 받는다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계단이 있는데 어느 학교엘 가든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는 미신이겠지만... 우리는 순진하게 버클리 기념사진이라고 찍어보았다.
03. 12. 2016
Haight Ashbury
03. 13. 2016
Sausalito
소살리토에서 식사를 마친 뒤, 친구의 차를 타고 골든 게이트 파크에 위치한 California Academy of Sciences에 갔다. 세계 10대 안에 드는 자연사박물관이라고 한다. 명성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규모와 다양한 동식물들로 눈과 귀가 참 즐거웠다. 원래 입장료가 30불이 넘는다고 하는데 운이 좋게도 나는 친구가 뮤지엄에서 일해서 동반 1인 무료입장으로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친구 덕을 참 많이 봤다.
Ghirardelli
03. 15. 2016
03.17.2016
16일, 숙소에서 시작해 소살리토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다. 이날도 역시 날씨가 정말 좋아 자전거를 다시 빌렸다. 이날은 2시간만 빌렸었는데 빨리 둘러보고 제시간에 다시 반납하기 위해 막판에 페달을 엄청 밟아야 했다. 힘들었다.
03.18.2016
03. 19. 2016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여행 끝무렵, 1 day tour로 짧게나마 둘러본 Yosemite
전까지 계속 친구들과 있다가 혼자 투어를 하니 살짝 허전했다. 같이 투어 한 사람들 중에 한국인 여성 두 분이 있었는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하는 것이 부러운 따름이었다.
투어가이드가 이곳을 지나가면서 버스가 아슬아슬하지만 바위에 걸리지 않는다며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60대의 샌프란시스코 토박이 할아버지였는데 중간에 Safeway에서 맥주를 사 먹는 것이 아닌가... 나를 포함해 족히 20명은 넘는 승객들을 태웠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승객들에게 맥주 좀 먹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어느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게 의아할 뿐이었다.
신기해하면서도 실제보다 맥 화면의 El Capitan이 더 멋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그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중에 계곡에서 발견한 '산'만 한 바위들에 이미 충격을 받았다.
열흘 동안 진득하게 샌프란시스코를 둘러보았다. 버클리를 시작으로 친구가 시켜준 버클리 캠퍼스 투어, Sorority에 묵으며 나름 유학생활 간접체험을 해봤다. 후에 다운타운으로 숙소를 옮겨 그 근처에서 자전거 타고 해안선을 따라 소살리토까지 가보았다.
이틀 내내 라이딩을 하며 느낀 점은 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자전거를 타기 좋으면서도 안 좋은 도시인 것 같다. 시내에서는 자동차와 나란히 페달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로컬인 미국인도 자기는 시내에서 자전거는 못 타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걸 보니 다운타운 안에서는 늘 조심을 해야 함을 느꼈다.
한 번은 멀미 때문에 버스 타기가 싫어 다운타운에서 Van Ness Avenue를 따라 계속 걸어 Franklin street 에 위치한 숙소까지 가보기도 했다. 보행자가 거의 없어 살짝 무서웠지만 메인 스트릿을 내가 직접 두발로 둘러보았을 때 느껴지는 정복감이랄까... 또 바다 가는 기분을 내보겠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옷을 얇게 입고 East beach에서 사진도 엄청 찍었다. 해가 질 무렵 East beach에서 출발해 Marina district을 쭉 따라 걸으며 금문교의 석양에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그리고 눈과 입이 즐거웠던 Ferry building, 11시만 돼도 무서운 Market Street, 짧지만 강렬했던 Yosemite National Park, 금문교의 석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Marina District, 가로수길과 비슷하지만 로컬들만 올 것 같은 조용한 쇼핑거리 Union street, Pier 39, Lombard street, Asian Art Museum, Academy of Sciences, Haight Ashbury, Golden gate bridge, Sausalito, Chinatown 등...
첫 미국 여행의 첫 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 가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이 중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하면서 이 도시를 그제야 좀 알아갈 쯤에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열흘간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면서 과연 내가 진정한 '체험'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간 못 봤던 반가운 얼굴들과 좋은 추억을 쌓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다. 이렇게 날씨 좋고, 경치 좋고, 자전거 타기에도 끝내주는 샌프란시스코에 산다면 일상도 여행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북드라망, 2013
*사진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