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y Travelo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유 Apr 14. 2016

샌프란시스코,
일상이 곧 여행인 도시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 신비주의 스콜라 철학자 '빅톨 위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다. 친숙함과 낯섦의 끝없는 변주, 그것이 여행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것이다(24). 그러나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여행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내가 여행에 대해 냉소적인 진짜 이유는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파노라마식 관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파노라마란 무엇인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퍼레이드다. 거기에는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얼굴과 액션이 지워져 있다. 또, 그때 풍경은 자연이라고 하기도 어렵다(15)."


프롤로그부터 무지 흥미롭다. 나는 여행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나 역시 작가가 말하는 파노라마식 여행을 하진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이미 우리는 영상이 실물을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낯선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잠시 일뿐, 어떠한 내적 동요나 찐한 감흥을 받기는 힘들다는 것을 4년 전 유럽여행을 하면서 깨달았다.


"이질적인 마주침과 신체적 변이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어떤 화려한 여행도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패션' 혹은 '레저' 이상이 되기 어렵다. 하나의 문턱을 넘는 체험이 되지 않는 여행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17)"라고 작가는 말한다. 지난 여행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봤는지도 기억에 남지만,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가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곤 한다. 주요 관광지를 급하게 둘러보는 식이 아닌, 현지인과의 많은 접촉, 여행자들과의 만남, 지인들과의 재회를 통해 뭔가 진정한 '체험'을 할 수 있길 기대하며 미국 여행을 준비해보았다.






여느 다른 한국 학생들과 다를 것 없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식 영어를 배우고 미드,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미국 정치에 대해 배우고, 팝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겐 미국이란 나라가 상당히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다. 그러나 심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것과 달리 미국은 물리적으로 상당히 멀어 우리나라와 시간차도 엄청나다. 때문에 내게는 한번 여행하자고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 나라이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인턴, 유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 친구들이 있는 김에 샌프란시스코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로 틈틈이 모은 돈과 그리고 가족들의 도움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총 여행 일정은 시카고, 뉴욕에도 친지, 친구들이 있어 루트를 샌프란시스코-시카고-뉴욕(San Francisco-Chicago-New York)으로 정했다. 친구 만나러 미국 갔다고 해도 될 만큼 친구들이 있는 거점을 중심으로 루트를 정했다. 또 첫 미국 여행이니만큼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말고 천천히 즐기자는 생각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0일, 시카고는 6일, 뉴욕은 8일 정도 나름 넉넉하게 일정을 잡았다. 3월 11일 16시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 후 시간을 거슬러 3월 11일 오전 10시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03. 11. 2016

24일의 짧고도 긴 여정의 첫 시작은 버클리였다. 버클리대학에서 유학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사는 sorority의 게스트룸에서 4일 동안 신세를 지기로 했다. 공항에서 내려 바트를 타고 버클리로 가는 내내 이국적인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날씨는 흐리고 비가 왔지만 창밖을 보며 마치 자로 잴 수 있을 법한 레고 블럭같은 쭉쭉 뻗은 도로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장시간 비행을 마친 후 피곤한 몸이었지만 반가운 얼굴을 보니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Berkeley.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버클리까지 바트를 타고 약 1시간정도 걸려 도착했다.


화창한날 버클리 캠퍼스. 이렇게 좋은날, 이렇게 예쁜 캠퍼스에서 맥주 한잔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Doe Library

미국도 처음이고 미국 명문대학 방문도 처음인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선했다. 학교 교정도, 학생들도, 건물들도... 각 단과대별로 건물에서 과의 특색이 보이는 것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버클리의 Doe Library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천장이 무지 높다. 여기 앉아있기만 해도 공부의지가 샘솟을거 같다.


Morrison Library. 마치 해리포터에 나올법한 Reading room. 이런곳에서 공부를 하는 친구가 마냥 부러운 따름이었다.


TO U.C BERKELEY STUDENTS , FACULTY, AND STAFF WHO SERVED IN WORLD WAR 2

이곳을 밟으면 F학점을 받는다는 괴담(?)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도 F 받는다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계단이 있는데 어느 학교엘 가든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는 미신이겠지만... 우리는 순진하게 버클리 기념사진이라고 찍어보았다.



03. 12. 2016

Haight Ashbury

샌프란시스코의 히피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Haight Asubury의 한 가게. 모두 핸드메이드 상품이라고 한다.



03. 13. 2016

Sausalito

우중충한 비오는 Sausalito. 비가 쏟아져 바깥 구경은 커녕 허기진 우리는 seafood 레스토랑에 갔다.
1인당 최소 인당 23달러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딜가든 이정도는 내야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살인적인 물가



소살리토에서 식사를 마친 뒤, 친구의 차를 타고 골든 게이트 파크에 위치한 California Academy of Sciences에 갔다. 세계 10대 안에 드는 자연사박물관이라고 한다. 명성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규모와 다양한 동식물들로 눈과 귀가 참 즐거웠다. 원래 입장료가 30불이 넘는다고 하는데 운이 좋게도 나는 친구가 뮤지엄에서 일해서 동반 1인 무료입장으로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친구 덕을 참 많이 봤다.

바다물고기부터 날아다니는 나비까지. 생물의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었던 뮤지엄


실제로 보면 크기가 엄지 손톱만하다.  몸색깔이 너무 영롱해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름은 기억이...


트루먼쇼를 연상케하는 속임수




Ghirardelli

거대한 초콜렛 가게 기라델리. 바다를 보며 달달한 초콜렛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그야말로 휴가에 온 기분이었다.


이날 아침에 비가 쏟아졌지만 해질 무렵이 되니 어느새 그쳐있었다.


Pier 39를 향해 걸어가는 친구들을 따라가는중


전형적인 미국의 레스토랑 디자인.


비에 젖은 Pier 39. 가게들이 하나같이 너무 예쁘고 볼거리로 가득했다.


Fisherman's Wharf 근처의 비온 후 거리



03. 15. 2016

서부의 쉑쉑 수퍼두퍼. 욕심부려 패티2장에 밀크쉐이크를 시켰지만 남겼다. 아무래도 햄버거는 콜라랑 먹어야 맛나는거 같다. 


금문교의 석양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 한 라이더


East beach. 열심히 금문교의 석양을 찍는 한 사진작가.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 있는 통통배들



03.17.2016

16일, 숙소에서 시작해 소살리토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다. 이날도 역시 날씨가 정말 좋아 자전거를 다시 빌렸다. 이날은 2시간만 빌렸었는데 빨리 둘러보고 제시간에 다시 반납하기 위해 막판에 페달을 엄청 밟아야 했다. 힘들었다. 


Ferry building에서 산 빵이랑 커피를 먹고 있는데 갈매기들이 내 식사를 방해했다.


팔자좋게 늘어져있는 바닷물개들. 자기들끼리 싸우고 난리도 아니다.


PIER 39


풍경을 바라보는 아이의 뒷모습. 무사히 자전거를 제시간에 반납하고 다시 다운타운으로.. 멀미 때문에 꽤 고생했다.


Market street의 쌩쌩달리는 자전거들. 샌프란시스코는 자전거를 타기에 아주 적격인 도시이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도시였다.


차, 자전거, 버스 다니는 길이 구분되어 있지만 아닌 곳도 꽤 있다. 옆에서 차들과 나란히 달리며 페달을 밟는 스릴감이 있다. 다소 위험천만한데 사고가 많이 나지 않을까 궁금하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버스킹 공연. 팁문화 때문인지 이런 길거리 공연에 사람들이 꽤나 큰 액수의 돈을 기부한다.  



03.18.2016

흐린날 Fillmore street 에서 바라본 전경.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뭐라도 떨어트리면 경사때문에 계속 미끄러져 내려가기 때문에 달려가서 잡아야 한다.


Children's Creativity Museum. 마감시간이 다 되도록 열심히 아들과 놀아주는 아빠의 모습




03. 19. 2016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여행 끝무렵, 1 day tour로 짧게나마 둘러본 Yosemite

전까지 계속 친구들과 있다가 혼자 투어를 하니 살짝 허전했다. 같이 투어 한 사람들 중에 한국인 여성 두 분이 있었는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하는 것이 부러운 따름이었다. 


투어가이드가 이곳을 지나가면서 버스가 아슬아슬하지만 바위에 걸리지 않는다며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60대의 샌프란시스코 토박이 할아버지였는데 중간에 Safeway에서 맥주를 사 먹는 것이 아닌가... 나를 포함해 족히 20명은 넘는 승객들을 태웠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승객들에게 맥주 좀 먹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어느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게 의아할 뿐이었다.








맥 바탕화면에서 맨날 보던 El Capitan을 직접 눈으로 보다니..

신기해하면서도 실제보다 맥 화면의 El Capitan이 더 멋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그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중에 계곡에서 발견한 '산'만 한 바위들에 이미 충격을 받았다.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








열흘 동안 진득하게 샌프란시스코를 둘러보았다. 버클리를 시작으로 친구가 시켜준 버클리 캠퍼스 투어, Sorority에 묵으며 나름 유학생활 간접체험을 해봤다. 후에 다운타운으로 숙소를 옮겨 그 근처에서 자전거 타고 해안선을 따라 소살리토까지 가보았다.

그 다음날 다시 자전거를 빌려 다운타운을 속속들이 둘러본 후 해안선을 줄곧 따라 Pier 39에 다시 갔다.


이틀 내내 라이딩을 하며 느낀 점은 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자전거를 타기 좋으면서도 안 좋은 도시인 것 같다. 시내에서는 자동차와 나란히 페달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로컬인 미국인도 자기는 시내에서 자전거는 못 타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걸 보니 다운타운 안에서는 늘 조심을 해야 함을 느꼈다.


한 번은 멀미 때문에 버스 타기가 싫어 다운타운에서 Van Ness Avenue를 따라 계속 걸어 Franklin street 에 위치한 숙소까지 가보기도 했다. 보행자가 거의 없어 살짝 무서웠지만 메인 스트릿을 내가 직접 두발로 둘러보았을 때 느껴지는 정복감이랄까... 또 바다 가는 기분을 내보겠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옷을 얇게 입고 East beach에서 사진도 엄청 찍었다. 해가 질 무렵 East beach에서 출발해 Marina district을 쭉 따라 걸으며 금문교의 석양에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그리고 눈과 입이 즐거웠던 Ferry building, 11시만 돼도 무서운 Market Street, 짧지만 강렬했던 Yosemite National Park, 금문교의 석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Marina District, 가로수길과 비슷하지만 로컬들만 올 것 같은 조용한 쇼핑거리 Union street, Pier 39, Lombard street, Asian Art Museum, Academy of Sciences, Haight Ashbury, Golden gate bridge, Sausalito, Chinatown 등...


첫 미국 여행의 첫 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 가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이 중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하면서 이 도시를 그제야 좀 알아갈 쯤에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열흘간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면서 과연 내가 진정한 '체험'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간 못 봤던 반가운 얼굴들과 좋은 추억을 쌓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다. 이렇게 날씨 좋고, 경치 좋고, 자전거 타기에도 끝내주는 샌프란시스코에 산다면 일상도 여행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북드라망, 2013


*사진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바퀴 위에서 본 샌프란시스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