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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유 Mar 15. 2020

16년 만에 다시 찾은 말레이시아

Office Exchange Program, 말레이시아 1주차

2004년, 가족여행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다녀왔었다. 당시 너무 어렸던 나는 사실 그때 기억이 그렇게 생생하진 않은데 그래도 유난히 인상적인 기억들을 있다. 처음 느껴보는 숨이 막힐듯한 더위와 따가운 햇빛, 맛없이 부서지는 밥, 그릇이 아닌 나뭇잎 위에 놓인 음식, 평생 본 적 없는 울창한 밀림 숲(Taman Negara라는 국립공원에 다녀왔었다) 정도...? 기억들이 파편적 이긴 해도 어릴 때의 생생한 감각과 기억은 오랫동안 남기 마련이라,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좋은 추억을 심어준 부모님께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오빠는 나보다 더 기억이 생생할 텐데 그때 경험이 너무 좋아서 썼던 기행문이 학급문고에 실려 상도 받았다는 얘기를 우리끼리 가끔 하곤 한다. 어쩌면 그때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지금도 계속 여행할 수 있다면 모든 게 다 새롭고, 신나고,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그 나라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엿한(?) 직딩된 나는 2020년, 16년 만에 다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오게 되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스윙비(Swingvy)는 동남아시아 시장을 타겟으로 HR software를 만드는 회사인데, 말레이시아에 지사가 있어 이곳으로 장기출장을 오게 되었다. 사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출장이라기보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Office Exchange Program에 지원해서 한두 달 정도 머물고 있다. 작년에 싱가포르는 단기 출장으로 두 번 다녀왔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해외에 나가는 건 오랜만이다. 벌써 3주 차에 접어들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너무 즐겁게 생활하고 있지만, 고국 한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국가 전체가 거의 마비상태여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계속해서 사망자와 확진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 아침에 뉴스를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린다. 이 모든 게 빨리 지나가길 빈다.





2월 8~14일

쿠알라룸푸르 1주 차, 먹고 먹고 또 먹고....

토요일 저녁 Kuala Lumpr에 도착해서 곧장 숙소로 향했다. 나름 괜찮은 콘도다. 뷰도 괜찮고 gym이랑 풀장도 있다. 그러나 바퀴벌레는 여전히 우리의 친구다. 첫날에 너무 놀라서 소리치고 난리를 부렸다. 룸메들에게 사과의 말을...




태국음식, Boat noodle

다음날 일요일, 먼저 와있던 한국 팀원들과 아침식사를 하러 만났다. 현지인이 다된 대표님은 맛집을 데려왔다.  

태국 음식인데 수상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님들을 위해 개발된 음식이라고 한다. 양이 작아 진짜 한입거리다. 한 다섯 그릇은 후딱 해치울 수 있다.



월요일 두근두근 드디어 출근! 회사 전용 오피스가 완공되기 전에 임시로 Co-labs라는 공유 오피스에 둥지를 틀고 있다.

Chinese new year을 기념하는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공유 오피스.  
여긴 다 좋은데, 공용 오피스의 가장 중요한 서비스인 인터넷 환경이 정말 안 좋다. 근데 카페를 가도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이 드물다. 성격 급한 한국인은 성격 버릴 수가 있다.


오피스는 Starling mall이라는 몰 안에 있는데, 실내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어서 진짜 편하다. 헬스장, 영화관, 서점, 카페, 음식점 등등 꽤 규모가 있는 몰이다 보니 없는 게 없다.





Nasi Lemak at Village Park Restaurant

점심시간, 따가운 햇빛을 맞으며 찾아간 Nasi lemak 맛집. 현지 팀원들이 데려간 곳이라 역시 치킨이 완전 바삭바삭하니 정말 맛있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Nasi lemak 중 제일 최고인 듯. 여긴 진짜 닭요리가 엄청 다양하고 많다. 한국사람들이 튀긴 닭 좋아하는거랑 비교가 안된다. 아무래도 Halal 음식이 기본이라서 그런것 같다.




인도음식 at Mamak

저녁에는 Steven's corner라는 인도 음식점을 다녀왔다. Mamak은 에어컨이나 별다른 냉방장치가 없는 반야외 로컬 음식점인데 보통 24시간 운영을 한다. 여러 명이 가서 주문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계산을 할 때는 우리가 무얼 시켰는지 딱히 체크를 안한다. 그냥 대충 손님이 주문했던 메뉴를 말하면 그걸로 계산을 한다. 희한한 시스템이다. Mamak은 손님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나?



중국음식

사진엔 없는데 이곳에 와서 먹었던 Chinese food 중에 가장 내 입맛에 맞는 것은 Wat Tan Hor. 짜장면처럼 생긴 Hokkien Mee가 가장 대표적인 음식인데 무슨 맛으로 먹는지 잘 모르겠다. 검은색 면 중에는 역시 짜장면이 최고다.  



Nandos

Nandos는 동남아에서 굉장히 유명한 프랜차이즈라는데 나는 이번에 와서 처음 알았다. 여기는 고구마튀김이 진짜 맛있다. 가격은 약간 비싼 편.




Potluck party at Airbnb

첫 주에는 회사에서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Airbnb에 말레이 팀원들을 초대해서 Potluck party을 열었다(이름만 Potluck이고 음식은 다 시켜먹었지만). 다 같이 식사를 하면 Non halal, halal group 두 그룹으로 나뉜다. 종교, 인종이 다양한 나라인지라 먹는 음식도 다 다른데, 메뉴에 따라 그룹을 나눠 앉아 먹는 게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파티를 위해 주문한 치즈케잌.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하다... 진짜 맛있다


먹는 음식은 다 다를지라도, 음악이나 드라마, 영화는 같은 세대라면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공통적인 문화코드가 있다. 전혀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도 모두가 아는 그런 음악, 영화. 유독 흥이 넘치는 Julian이 90년대, 2000년대 초반 히트였던 Pop, K-pop을 틀었고 하나가 돼서 모두 다 같이 따라 부른다. 팀원들은 20대~30대 나이대가 비슷비슷한 편이데, 놀라웠던 건 내가 어렸을 때 보고 듣고 자랐던 한국 음악, 영화, 드라마를 나만큼 잘 안다는 것이다. 10~20년 전 케이팝을 따라 부르는 걸 보면 케이팝의 세계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 와서 국뽕이 완전 차오르는데 대한민국은 정말이지 대단한 문화 강대국이다. 공영방송 라디오에서 케이팝이 끊임없이 나오고, 택시를 타면 한국사람이냐고 반가워하며 한국음악을 틀어주고, 넷플릭스 말레이시아 Top 10 컨텐츠에 한국드라마가 1,2위를 꿰차고 있고, 한국음식점은 늘 북적거리고... 등등 한류가 얼마나 엄청난지 그저 뉴스 기사로 접할 때와는 다르게 정말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2020년 올해는 특히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BTS의 빌보드 1위 등 한류가 세계적으로 정점을 찍었다고 느껴질 만큼 영화, 음악 모든 부문에서 엄청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게 가능한 것은 예전부터 이미 한류에 초석을 다진 많은 아티스트, 영화, 드라마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냥 생각들

사람들이 많이 먹지 않는다. 1인당 양이 한국의 2/3 정도 되는 듯. 그래서 다들 날씬한 건가?

현지 팀원들이 너무 잘 챙겨준다. 잘 대접해주는 게 Duty라고 생각할 정도. 나중에 한국 오면 풀코스로 대접해야지.

오자마자 현지 신문을 하나 사서 읽어봤다. 몇 기사 안 읽었는데 사람들이랑 얘기할 거리가 생긴다. 이래서 신문을 읽어야 되는 건가.

쇼핑몰이나 음식점이 10시까지 하는 데가 많아서 그런지 8시 이후에 약속을 잡기도 한다. 저녁을 보통 7~8시 사이에 먹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만나는 경우에는 8시~ 9시에 약속을 잡는다. 서울에선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늦은 시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자유롭게 약속을 잡을 수 있어 하루를 좀 더 길게 쓸 수 있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면서 정말 편하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밍글리쉬가 여전히 익숙지가 않다. 내 영어도 못 알아듣는다. 서로 못 알아듣는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몰이 슬슬 지겨워진다. 어딜 가나 몰 몰 몰. 날씨가 너무 더워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실내에 있을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한국은 사계절이 있어 자연이 변화부쌍해 계절마다 야외로 나들이를 나갈 수 있는 게 새삼 좋은 거구나 다시 한번 느낀다.

폭우, 천둥, 번개 여기는 흔하게 경험할 수 있다. 첫날 천둥이 너무 심하게 쳐서 무서워 죽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물가가 싸서 먹을 때도 그냥 막 시키고 쇼핑도 가감 없이 했더니 정확히 7일 만에 23만 원 정도 썼다. 남은 시간 동안은 좀 절약해야겠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목&어깨 통증이 여기오니 조금 나아졌다. 어깨를 짓누르던 그 스트레스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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