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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유 Mar 30. 2020

쿠알라룸푸르, 그저 즐거웠던 한 달

Office Exchange Program, 말레이시아 2~5 주차

2월 초 말레이시아에 입국해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첫 일주일을 적응하는 데 보내고 나니, 나머지 한 달은 더 시간이 빨리 간 것 같다. 평일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을 하고, 주말에는 부지런히 관광을 다니면서 새로운 문화와 도시를 경험했다. 주말은 일주일 7일 중에 2일밖에 안 되는데 이 시간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 한국에 있는 것과 다른 점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열심히 나돌아다닌 것 같다. 동남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모스크에 가보기도 했고, 말레이시아 힌두교의 성지 바투 동굴에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고, Frim Forest라는 숲에 가서 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등산도 했다. 이 이색적인 체험들을 말레이시아 팀원들과 함께 해서 더 좋았다.


반면 그 시기 코로나 19가 한국을 강타해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심지어 죽고... 모두가 불안과 두려움에 떨던 때, 날씨가 더워 소위 청정지역(?)이라고 불리던 말레이시아에서 '나는 다행히 운이 좋게 적절한 시기에 안전한 곳에 와있다'라는 상대적 안도감을 느끼며 걱정 없이 한 달을 보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상상도 못 한 채...




2월 15일 토요일

Batu Caves

말레이시아 힌두교의 성지이자 셀랑고르의 대표적인 관광지 Batu caves를 다녀왔다. 우리가 가고 싶다고 해서 중국계 친구 John이 같이 가줬는데 거기 갔다고 친구한테 말했더니 거긴 대체 왜 갔냐며 장난으로 놀렸다고 한다. 힌두교인이 아닌 팀원들도 하나같이 쿠알라룸푸르에 평생 살았는데 한 번도 Batu Caves에 가본 적 없다며 웃었다. 생각해보면 자기 종교나 문화와 관련된 게 아니면, 아무리 유명한 장소일지라도 갈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교회 건축이 유명하다고 해서 굳이 교회를 찾아가진 않으니까 말이다.

힌두교 예술을 엿볼 수 있는 저 화려한 계단은 동굴을 들어가는 입구이다. 올라가는 내내 잘못하다간 원숭이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작은 인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입구부터 동굴 안에 들어갈 때까지 다소 정신이 없지만 재밌는 광경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힌두교 신자가 대부분, 30프로 정도가 관광객인 것 같았다. 신문에서 알게 된 내용인데 Batu Caves를 중심으로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요즘 핫한 부동산 투자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위치가 KL 북쪽에 있어 약간 도심 밖이라고 볼 수 있는데, 쿠알라룸푸르도 계속해서 도시가 팽창하는 단계에 있는 것 같다.




2월 16일 일요일

Strangers at 47

혼자 카페 가는 걸 좋아해 Pedaling jaya에서 유명한 카페 TOP10 리스트를 하나씩 클리어하고 있다. 좋아하는 바질 파스타가 시그니처 메뉴라 해서 와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양이 적어 아쉬워 다른 것도 또 시켰다. 여기 와서(?) 정말 잘 먹는다. 혼자서 음료에 메인 메뉴를 두 개나 시켜먹었는데 원화로 2만 원도 안 한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싸다 보니 별생각 없이 막 쓰게 되는데 돈이 아주 줄줄 샌다.

혼자 온 손님은 나밖에 없었지만 여유롭게 식사를 즐겼다.



2월 22일 토요일

Frim forest

말레이시아는 적도 가까이 위치한 매우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야외활동을 하려면 새벽같이 아주 일찍이거나 아예 해가 지고 난 후에나 가능하다. 이번 주는 말레이시아의 Wild한 면을 체험하기 위해 오전 9시쯤 다 같이 모여 Frim forest라는 숲을 다녀왔다. 등산에는 나름 자신이 있는 편인데 너무 힘들어서 죽을 뻔했다. 땀 한 바가지를 흘리고 너무 어지러워서... 이곳에서는 나 같은 빈혈, 저혈압이 심한 사람은 늘 조심해야 한다.

Hanim, Nadia, JYP와 함께한 Frim Forest.

우리가 등산로를 못 찾아 헤매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아저씨께서 너무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시면서 자기만 따라오라고 하셨다. 전 세계 어딜 가나 산에는 산을 매우 잘 아는 도인 같아 보이는 아저씨들이 꼭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저씨들은 항상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신다. 자연과 친하면 사람이 착하고 너그러워지는 것일까?



더위 때문에 지친 우리를 달래기 위해 Banana leaf rice 맛집을 데려왔다. 16년 전 문화충격을 받았던 그 밥그릇이다! 혹시나 해 물어봤는데 재활용은 안 한다고 한다.




Islamic Arts Museum Malaysia

일요일은 좀 차분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Islamic Arts Museum을 둘러보기로 했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60프로가 Malay, 즉 무슬림인데 너무 이 문화에 대해 무지하다 싶어 공부차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슬람교의 역사, 문화, 예술을 한 곳에서 모두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Islamic Arts Museum Malaysia, 뮤지엄 자체도 예술품이다.


아무래도 Art museum이라 Mosque 건축양식과 이슬람 문화예술을 중점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인데, 예술품의 종류, 규모가 방대하다. 제대로 보려면 이틀은 걸릴 것 같다.


살면서 보았던 모든 기하학 문양보다 이 날 하루동안 보았던 게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엄청나게 복잡하고 기묘한 기하학적 문양의 심오한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이 포함된 것은 제한하나 직선과 곡선을 강조한 기하학적, 조형적인 표현만을 허용하는 '아라베스크' 미술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기하학적 예술품에 입이 떡 벌어졌다. 굉장히 절제된 화려함이랄까... 아랍어 자체도 단순히 문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상당한 미적 가치를 지니는 예술의 한 형태인데, 아랍어를 읽을 수 있어야 이슬람 예술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구경을 마치고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밖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비가 쏟아졌다. 빨리 장소를 옮겨야겠다 싶어 그렙을 부르는데 몇 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잡히지 않았다. 살짝 절망적인 마음이 드는 순간에 어떤 지나가던 택시가 나를 불렀다. 이거라도 잡아야겠다 싶어 일단 탔는데 Berjaya mall까지 30RM을 부르는 게 아닌가(그렙으로는 7RM정도밖에 안 한다). 너무 바가지다 싶어 20RM을 불렀지만 기사님이 그렙 어차피 불러봤자 교통체증 때문에 안 잡힌다고 하자 결국 25RM으로 합의를 봤다. Mall 앞에 도착해 돈을 지불하려는데 100불짜리 밖에 없어 100불을 냈더니 기사님이 성을 내면서 저기 앞에 편의점이 있으니 잔돈을 바꿔오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편의점으로 가 껌을 산 잔돈으로 25불을 맞춰서 드렸다(꽤나 먼 거리에 있어 돈을 안 내고 그냥 튈(?) 수도 있는 거리였다). 바가지는 엄청 씌웠으면서 손님이 돈 안 내고 튈 거라는 의심을 하지 않고 그냥 편의점으로 보내는 심리가 이해가 안 갔지만, 다행히 나쁜 마음은 먹지 않았다. 이 나라는 희한한 신뢰 시스템이 존재하는 곳인 것 같다.



Berjaja Times Square

Utama나 다른 몰에 비해서 좀 오래된 몰이지만, 구경하다 우연히 지나친 Rotiboy! 이게 말레이시아 브랜드일 줄이야... 고등학생 때 한참 스트레스 받을 때 거의 매일 사 먹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게가 문을 닫아버려서 얼마나 섭섭했는데 이걸 여기서 보다니! 너무나 반가웠다. 십몇년만에 다시 먹어본 Rotiboy, 여전히 맛있었다. 한국시장에서 왜 살아남지 못했는지 정말 아쉽다(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한국에도 아직 지점이 몇 개 있다).

이 감격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도 찍었다.

팀원들과 같이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Rotiboy 얘기가 나왔는데, 웬걸 대표님 Jin도 어렸을 때 엄청 좋아했다는 것이다. Jin도 Rotiboy가 갑자기 사라져서 어린 마음에 무척 슬퍼했었다는데 십몇년이 지난 지금 아직 말레이시아에 Rotiboy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듣고 너무나 기뻐했다. 말레이시아 빵 브랜드 하나 때문에 울고 웃는 한국인 두 명을 보며 현지 팀원들은 너무 웃기다며 다음날 Rotiboy를 깜짝 선물로 사 왔다. 여전히 맛있었다.




Movie Night at MBO

금요일 저녁인데 영화관에 사람이 정말 없었다. Sonic을 4D로 관람하려고 극장으로 들어왔는데 정말 우리말 고는 아무도 없었다. 한국에선 금요일 밤이면 영화관에 사람이 가장 많을 시간인데,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영화를 별로 즐기지 않는 건가? 티켓도 한국보다 훨씬 싼데 의아했다. 그래도 눈치 안 보고 4D를 우리끼리 떠들면서 신나게 볼 수 있었다.

Sonic the Hedgehog, 짐 캐리의 팬이라면 무조건 추천하는 영화. 읽을 줄도 모르는 Bahasa, Chinese 자막이 두 개나 있어 꽤나 거슬렸다.



2월 29일 토요일

APW

Instagramable 한 그런 곳. 창고 부지를 리디자인해 커피숍, 미용실, 옷가게, 펍으로 새롭게 태어난 문화 공간이다. 이런 곳은 세계 어디든 나름 차려입은 힙한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것 같다. 획일화된 프랜차이즈가 아닌 스토리, 문화가 있는 그런 공간. 그런 곳에 가면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찾는 것 아닐까. 뭔가 여기서는 Mall이 아닌 어떤 다른 공간에 가는 게 한국에서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카페나 음식점이 옹기종기 거리에 막 모여있는 게 아니라 듬성듬성 흩어져 있어서 무조건 차로 가야 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APW, 이름부터 힙하다(www.apw.my)


  

3월 1일 일요일

World of Phalaenopsis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 한참 벗어나 북쪽으로 난초를 주로 파는 꽃집이자 정원인 World of Phalaenopsis라는 곳에 왔다. Hanim이 예전에 친구들이랑 같이 왔는데 좋았다며 데려왔다. 가족들이 아이들이랑 주말에 쉬러 오기 딱 좋은 곳인 것 같다. 핑크색 난초꽃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정원 주인의 아내가 난초꽃을 좋아해 아내를 위해 이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로맨틱한 스토리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민들이 더불어 무료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건 멋진 일인 것 같다.

Nasi lemak. 역시 음식은 먹음직스럽게 꾸며야 맛도 더 좋다.



Blue Mosque Selangor

두 번째 행선지로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크다는 Blue Mosque Selangor(Sultan Salahuddin Abdul Aziz Mosque)를 방문했다. 모스크에 가보고 싶다는 내 말을 듣고 독실한 무슬림인 Hanim이 말레이시아에서 제일 큰 모스크에 나를 데려온 걸 보면 외국인에게 아주 제대로 된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역시나 나는 그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아이폰으로 얼마나 크고 선이 아름다운지 담아보려 했지만 실패...



히잡도 써보고, 메카방향으로 절하는 방법도 배우고, 예배할때 예절도 배우고... 숙지해야 할게 참 많았다. 그래서 더 재밌었던 1일 무슬림 체험!



3월 2일 월요일

피부 클리닉

지내는 동안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고 싶었는데 그중 하나가 피부 클리닉이었다. 아무래도 인건비가 싸다 보니 이런 1:1 서비스를 받는 것이 확실히 부담이 덜하다. 마사지, 피부 관리, PT 등등... (우리 대표님은 마사지가 너무 싸고 좋다며 거의 매일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셨다). 피부 관리 비용도 진단부터 시작해 관리받는 시간까지 다 합해서 100RM(3만 원 정도)라 한번 가봤다. 비용 대비 생각보다 매우 만족스러워서 매주 갈 수 있겠다.

한국 전문피부과보다는 어설픈 느낌은 있지만 가격 대비 괜찮다.



3월 3일 화요일

Sate Kajang

말레이시아 현지 음식 다 먹어보기 챌린지를 하는 것처럼 John과 Nicol은 매일 새로운 현지 음식을 소개해줬다. 이날은 퇴근 후 저녁으로 Sate를 먹으러 갔다. 소고기, 닭고기를 구워서 기호에 맞게 소스에 찍어먹는 Sate는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닭꼬치 같은 음식이다. 다른 점은 우리한테 닭꼬치는 길거리 음식이지만 여기서는 Sate만 파는 식당이 많다. 맛있게 먹었지만 한국인 입맛은 아닌 것 같다. 덩어리가 더 크고 육즙이 많고, 매운 소스의 닭꼬치가 나는 더 맛있다.

주방을 살짝 구경해봤는데, 주문을 받고 만드는 방식이 꽤 체계적으로 보였다. 굉장히 빨리 나온다.



3월 7일 토요일

Atria Sofo Suites, 새로운 숙소

서울 강남에서 이 정도 룸에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룸메들이 예정대로 먼저 한국으로 떠났고 나는 홀로 지낼 수 있는 에어비엔비로 숙소를 옮겼다. Atria mall 바로 옆에 붙어있는 레지던스로 크기, 위치, 시설, 주변 환경 모든 게 너무 만족스러웠다. 출퇴근은 Grab 타고 10분도 안 걸리고, 먹고 싶은 게 있을 땐 얼마든지 Atria mall에 가면 되고, 필요한 거 있을 때 장도 볼 수 있고... 삶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아무래도 주거환경이 만족스럽다 보니 상황이 좋지 않은 한국에는 더욱 빨리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Office Exchange Program 기간을 3월 말까지 연장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임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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