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y Travelo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유 Mar 30. 2020

말레이시아 국가 봉쇄령, 그리고 극적인 입국

Office Exchange Program, 그냥 갑자기 끝나버렸다.


코로나 19로 한국에 확진자가 수천 명으로 증가하는 동안 나는 따듯한 나라 말레이시아에 있어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3월 초 쿠알라룸푸르에서도 수만 명이 대규모 종교집회에서 집단감염이 시작되어 확진자가 하루 만에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늘어났고, 방역이 불가능하다 판단해서인지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국가 폐쇄 발표’를 이틀 전에 해버린 것이다. 3월 16일 저녁 9시, 무히딘 야신 총리가 Lockdown을 발표했고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지내던 와중 Office Exchange Program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급히 고국으로 쫓기듯 돌아와야 했다. 갑자기 상황이 한 치 앞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변하자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경유행이라도 비행기표를 끊었으니 집에 곧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오산이었다. 대만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오는 여행객 입국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환승이 안 돼 결국 비행기를 못 타질 않나... 정말 다사다난했다. 2020년 3월 16~20일, 이 5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익스트림한 에피소드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3월 15일 금요일

어질어질한 극심한 두통이 가시질 않자 John과 급히 근처 Clinic에 방문했다. 말레이시아에서 거의 처음 가보는 병원인데, 깜짝 놀랐다. 접수처에서는 지난 진료기록들을 종이에 일일이 적어 관리하고 있었다. 한국의 약 20년 전이 떠오르는 환경이었다. 오래전 기억인데 초등학생 때 병원 갈 때 꼭 잊지 않고 챙겼던 종이 의료보험증이 떠올랐다. 이거 알면 최소 90년대생...

웹사이트 가입하려고 엄빠 몰래 훔쳐봤었던 그 의료보험증...


동남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잘 산다는 말레이시아가 아직 의료시스템의 전산화가 안되어있다는 거에 놀랐고, 이런 환경에선 코로나 퍼지면 답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국가 봉쇄령을 내린 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은 너무 친절하게 진료를 잘 봐주셨다. 간단한 혈압, 빈혈검사 등등 했더니 모두 정상이었다. 아무래도 더위를 먹어서 그렇게 머리가 아팠나 보다.


한국 입국 이후에도 어지럼증이 가시질 않아서 동네 내과에 방문했다. 접수처에 주민번호랑 이름 적으니, 해외에서 입국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사실을 바로 알고 간호사님이 해외 어디서 오셨다고 물었다.. 정말이지 대한민국 의료시스템 대단하다. 확진자 동선을 국민들에게 실시간 공개하니 정보의 투명성이냐, 개인의 프라이버시냐 말이 많은데 논란의 배경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게 철저히 트랙킹 하는 게 맞고 그걸 공개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3월 14일 토요일 

토요일, 함께 온 개발자 JYP와 그의 출국 전 마지막 식사를 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거 같다며 예정보다 일찍 가셨다. 왜 이렇게 일찍 떠나시냐며 아쉬워했는데.. 그는 앞으로 말레이시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견을 한 것인가. 토요일 저녁에 출국 후 돌아오는 주 월요일에 정부에서 Lockdown을 발표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가 동이 나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간발의 차이로 한국에 이미 입국한 JYP가 너무 부러웠다.


아쉽게 먼저 떠나는 그와 마지막 식사. 그는 미래를 내다본 것이 틀림없다.



3월 16일 월요일, 국가 봉쇄령 발표

3월 초에 몇만 명이 모인 모스크 집회 이후로 며칠 사이 말레이시아도 확진자가 수백 명으로 급증했다. 한국에서도 신천지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시작돼 대구시 지역사회로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는데 말레이시아도 한국 초기랑 굉장히 비슷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아예 전 국민 이동제한 명령을 이틀 전에 발표해버렸다. 우리 회사도 선택의 여지없이 Lockdown 효력이 발생하는 수요일부터 전부 재택근무를 시행하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말레이시아에 있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BREAKING- FULL LOCKDOWN ANNOUNCED :
말레이시아 LOCK DOWN 속보

1. Government announces movement restriction from 18-31/3 through out the country.
3월 18일~31일까지 국가 내 모든 이동 제한
2. This restriction includes cancellation of all religious activities, social activities. All religious houses closed except for groceries stores.
모든 종류의 종교 행사(이슬람 예배 포함), 스포츠 활동, 사회 활동 포함, 생필품 판매업을 제외한 모든 상업 시설은 문을 닫음.  
3. All Malaysian’s banned from travelling overseas.
모든 말레이시아인은 해외 출국 금지.
All Malaysians returning from overseas to be on self quarantine for 14 days.
해외에서 돌아오는 말레이시아인은 자가격리 14일
4. Banning of all foreign tourists
모든 외국인 말레이시아 입국 제한
5. Closure of all schools, kindergartens, public and international schools.
모든 학교, 유치원, 보육원, 기숙학교, 교육 시설 휴교
6. Closure of all universities and colleges.
모든 대학, 전문대학 휴교
7. Closure of all government and private offices excluding essential services such as water, post office, power, petrol station and TV, banks,  ports, airports, groceries.
수도, 우편, 전력, 가스, TV, 은행, 공항, 항만, 방송, 식료품, 의료시설, 약국, 소방서, 교소도, 안전, 보안 관련 기간, 위생 기관 등 생활 필수 시설을 제외한 모든 시설 폐쇄


3월 17일 화요일, Lockdown 하루 전

월요일 저녁, 발표가 나자마자 바로 귀국행 표를 샀다. 최대한 빠른 날짜로 화요일 저녁 Air Asia 티켓을 끊으려는데 순식간에 매진돼버려서 직항 표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수요일 오전에 출발하는 대만에서 경유하는 비행 편을 샀다.

Lockdown 하루 전, 마트에서 사재기가 엄청났다. 나는 물 사려고 갔는데 줄을 한 시간 반이나 기다린 후에나 결제를 할 수 있었다.




3월 18일 수요일, 아침 비행기를 타러 출발

아침 7시 반 비행기라 새벽 4시에 일어나 에어비엔비 체크아웃을 마치고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AirAsia 체크인을 하는데... 나의 시련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에어아시아 직원이 내 티켓을 보고 대만으로 경유하는 일정인데 지금 가면 환승할 수 없을 거라며 비행기를 타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면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재차 물었다. 그가 말하기를 '대만 정부에서 어젯밤 자정에 말레이시아에서 오는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했다. 근데 당신 티켓이 대만에서 경유하는 티켓인데 항공사가 달라 환승이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도 당황했지만 일단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다급히 대만 대한민국 영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급하게 상황을 전달하니 영사관 직원은 '환승은 문제없다. 입국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하지 마시고 비행기를 타시라'라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나는 영사관 직원분에게 항공사가 다르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직원분은 내 티켓이 단순 경유라고 생각해 비행기를 타도 된다고 얘기한 것이었다. 당황한 찰나에 안심되는 말을 들으니 의심의 여지없이 체크인, 출국 절차까지 모두 마치고 보딩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싸한 것이었다. 아, 내가 항공사가 다르단 말을 안 한 것 같다. (내 비행 경험상) 어떤 경유든 그냥 경유이기 때문에 입국절차를 당연히 거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다시 영사관에 전화를 했고 항공사가 다르다고 말씀드리자 그렇다면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입국절차를 거쳐야 다른 항공사로 갈아탈 수가 있는데 입국심사받는 데서 걸릴테니 그 비행기를 타면 나는 14일 동안 타이베이 공항에서 묶여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 그제야 이 모든 상황이 명확해졌다. 난 진짜 망했다 싶었다.


캐리어도 다 부친 상황이었지만 보딩 전에 어쨌든 빨리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미 내 16kg짜리 캐리어가 비행기에 들어가고 있을 텐데 여기에 탈 것인가 말 것인가.. 영사관 직원 왈 '어쩌다 간혹 가다 입국절차에서 안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 운이 좋은 경우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잘 판단을 하셔야 한다. 그냥 다시 말레이시아로 입국을 하거나, 위험부담을 안고 대만행 비행기를 타거나...'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영어도 안 통하는 대만으로 입국해서 14일 동안 격리되면? 그거야말로 진짜 최악이지 않나.. 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싶었고 생각을 바꿔 Gate에서 역주행 전력질주를 했다. 캐리어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끄나풀 같은 희망을 가지고.. 체크인했던 곳으로 돌아와 에어아시아 직원에게 '비행기를 안 탈것이다. 내 짐을 다시 찾고 싶다'라고 전했고, 비행기가 뜨고 난 30분 후에 다행히 캐리어를 찾을 수 있었다.


캐리어를 찾고 나니 공항에서 그 난리를 친 게 무슨 꿈만 같았다. Jin과 HR 담당자 Lani께 소식을 바로 전했고, 두 분은 괜찮다며 이틀 뒤 직항 비행기표가 아직 있다며 나를 안심시켜주셨다. 사실 돌이켜보면 어떤 상황이든 다 방도가 있는데, 사람이 한번 당황을 하니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배웠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항에서 티켓을 샀고, 다행히 원래 묵고 있던 숙소를 연장해 그곳으로 일단 돌아갈 수 있었다.



3월 19일 목요일, 친구들의 위로 방문

John에게 자초지종을 말하자, 외국인인 내가 혼자 말레이시아에서 그러고 있는 게 안쓰럽다며 위로차 방문을 해주었다.

John, Janica 의 위로 방문. Lockdown된 타국에서 어디 가지도 못하고 혼자 숙소에서 외로워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다.



3월 20일 금요일, 숙소에서 Work Form Home

토요일 새벽이 빨리 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숙소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Atria mall에서 30프로 세일 중이어서 사본 바질 페스토 파스타. 대부분의 음식점이 세일을 했다.



3월 21일 새벽, 무사히 출국

이틀 전 카오스 자체였던 멘탈을 가다듬고 차분히- 체크인 절차를 밟고 체온검사도 통과하고 보딩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텅텅 비어있는, 말레이시아 사람 없는 말레이시아 공항.



3월 21일 아침, 무사히 입국

열도 안 나고 코로나 증상도 없어서 안도하며 입국할 수 있었다. 그래도 100프로 확신할 수는 없으니 무조건 조심하는 게 낫겠다 싶어 입국 후 자가격리 중이다. 14일 동안 자가진단 앱에 증상이 있는지 매일 체크하고 제출해야 되는데, 혹시라도 까먹고 제출 안 하면 바로 질병관리본부에서 문자가 온다. 또 긴급재난 문자로 확진자 동선을 계속해서 받고 있는데 이렇게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니 불안감이 덜한 것 같다. 생각해보니 말레이시아에서 Lockdown을 발표하고 갑자기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였던 건 타국에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황 때문인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숨겨진 확진자가 많길래 이틀 만에 이동제한 명령을 내리는 건지? 하는 불신과 의심이 계속 생기니깐 말이다.


내가 입국한 날부터 시행된 특별입국절차. 건강상태 질문서와 특별 검역 신고서, 그리고 자가 진단 앱을 다운받아 14일 동안 건강상태를 보고 해야한다.

다행히 예상보다 특별입국절차를 빨리 마치고 무사히 입국했다. 출발할 때 풍경과 너무 다른 텅 빈 인천공항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입국과 동시에 이렇게 Office Exchange Program 일정은 조촐히 막을 내렸다. 갑자기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팀원들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끝나버려 아쉽기만 하지만, 코로나가 이렇게 빠르게 전 세계를 마비시킬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급박한 마무리였지만 한 달 반 동안 새로운 환경에서 적당한 자극과 동시에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어 행복했다. 직원이 타겟시장을 더 잘 경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해외로 보내주는 회사가 어디 많을까.. 정말 감사한 기회였다!



귀국 후 며칠 내내 집에만 있으니 하루 종일 뉴스만 보게 되는데 코로나 19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국내는 좀 안정되는가 싶다가도 나 같은 해외 입국자 중에 확진자가 많아 방역당국은 애를 먹고 있고, 국외 상황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의료진 마비로 하루에만 수천 명이 사망하고, 영국의 국가원수인 총리도 확진 판정을 받아 영국 내 공포가 더 커지고 있으며, 미국은 앞으로 1,2 주 후에 최고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현재 3월 30일 기준 전 세계 확진자는 70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 또한 3만 명이 넘는다.


Global Pandemic이 선포된 가운데,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지역사회에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도록 외출을 자제하고 개인의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모두가 다 같은 마음으로 이 비극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겠지만, 전염병과 자연 앞에서는 인간이 한없이 무기력함을 이번 코로나 19가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못 본 친구들, 친척 그리고 회사 동료들.. 다들 너무 보고 싶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별 탈 없이 힘 내주길 오늘도 기도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