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tone Color Chip를 통해 한국의 '다채로움'을 담다.
얼마 전 광복 70주년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가브랜드 공모전을 주최했다. 평소 국가, 도시 브랜딩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참여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마음에 잘 맞는 팀원도 구했다. 나의 역할은 디자인이었고, 팀원 효은과 유진은 기획을 맡았다.
처음 계획은 이랬다.
기왕 하는 거 BI를 만들어보자!(좋게 말하면 용감한 시도이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무식한 시도라고 하는 편이 맞는 거 같다.. ) 또, BX (Brand Experience)도 제안해보자! 하고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국가브랜드라는 게 그렇듯 답이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계속 원점으로 돌아오기만 했다. 수많은 디자인 레퍼런스와 국가 브랜딩 서적을 보고, 한국에 대한 리서치도 나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론은 국가브랜드 컨설팅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안홀트(Simon Anholt)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방향을 틀었다.
도시 브랜드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상품 브랜드와 달리 수년에서 수 십 년을 내다보고 만들어가야 한다.
국가브랜드를 강화시키려면, 단순히 순위와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도시브랜드와 같은 실질적인 ‘알맹이’를 개발해야 한다
아무리 디자인이 예쁘고 컨셉이 좋다고 한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실질적인 정책, 즉 '알맹이'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대학생 차원에서 생각해내는 것들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미 잘 갖추어진 프로 도시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을 참고해 우리나라만의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차라리 확실한 하나의 컨셉을 가지고 짧은 1분짜리 광고를 만들어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응모분야를 광고 영상으로 바꿨지만 그동안 팀원끼리 같이 연구했던 레퍼런스와 책들이 결코 쓸모없지 않았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참고한 도시브랜드 컨셉은 코펜하겐과 베를린이다.
첫째로, 코펜하겐의 ‘당신에게 열려있는 코펜하겐 cOPENhagen - Open for you이다.
‘열려있다(OPEN)’라는 메인 단어는 다양한 카테고리에 적용되고 코펜하겐과 협력하는 여러 기업 혹은 단체도 시정과 관련한 다양한 상황에 맞는 유연한 활용이 가능하다. 즉, 고정되고 변화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유연한 브랜드이다. 이처럼 새로운 대한민국 브랜드는 내국인들과 외국인들이 직접 브랜딩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Copenhagen 브랜드 컨셉은 자신만의 Copenhagen로고를 만들 수 있게 한다.
With the new brand we can show the world that Copenhagen is a capital with many possiblities which is always open to new input, new ideas and new thoughts.
-Bjarke Ingels, Founding Partener BIG
두 번째로 베를린이다. 베를린 브랜드 be Berlin 의 컨셉 또한 비슷하다. be Berlin은 1963년 J.F Kennedy가 베를린에서 남긴 말인 "나는 베를린 사람이다(Ich bin ein Berliner)"에 착안한 것으로 "베를린이기 때문에, 베를린 시민이기에 자랑스러워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민이 만드는 도시 브랜드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be Berlin의 심벌은 빨간 네모 박스의 말풍선으로 이는 시민들이 직접 완성하는 형식의 다양한 이벤트로 활용되고 있다.
광고 컨셉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던 차에 우리가 영감 받았던 것은 Pantone Color Chip이다. 미국의 색채 전문기업인 팬톤은 수많은 색에 고유번호를 붙여 만든 팬톤 컬러 매칭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이다. 팬톤 컬러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색채 언어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각종 시각예술분야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 건축, 패션, 도료 등 산업 전반에서 표준 색채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작가 Paul octavious의 The Pantone Project. 팬톤의 컬러칩 속에 있는 색깔들과 일상생활 속 컬러를 직접 매치한 프로젝트이다.
벨기에 디자이너 Alison Anselot의 팬톤 컬러 프로젝트. 색깔을 일상 속 음식 속에서 찾았다.
이렇게 다양한 색을 담는 팬톤 컬러칩을 활용한 대한민국 광고 컨셉을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다움은 ‘다채로움’이다.
다채로움이란 '여러가지 색채나 형태, 종류 따위가 한데 어울리어 호화스럽다'는 뜻인데,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색채가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은 비교적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산과 바다, 사람과 도시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 우리의 삶은 풍요롭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여행을 다닐 때, 잠깐 한강에 나와 여유를 즐길 때 등 굉장히 많은 색깔을 만나는데 그것이 곧 문화적 풍부함, 삶의 풍부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배고픈 시절을 지나 이제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워진 대한민국을 우리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인지시켜주고, 외국인들에게도 소개하고 싶기에 ‘대한민국의 다채로움’이라는 주제로 광고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다.
한국은 다채롭다라는 컨셉이 다소 진부하게 들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정한 이유가 있다. 위에서 참고한 코펜하겐과 베를린 브랜드처럼 참여를 유도하는 열려있는 컨셉을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있지도 않은 것을 억지스럽게 만들어내야 하는가? 지금 한국이 갖고 있는 그대로를 풀어서 보여주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한국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be Berlin처럼 '있는 대로 보여주자!' 가 가능한 컨셉이 필요했다.
영상에서의 컬러 카드는 컬러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풍성한 삶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다. 각 소재가 담고 있는 가치는 다음과 같다.
소재 , 함축된 가치
저고리, 전통 한옥(Yellow) :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독특한 삶의 양식인 ‘전통’ - TRADITION
비빔밥, 음식(Red) : 갖가지 재료들의 최상의 ‘조화’를 찾은 우리 음식 - CUISINE
패션, 스타일(Orange) : 사람들은 물론 산업적 측면에서도 ‘유행을 선도함’ - STYLE
한강(Blue) : 바쁜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휴식과 여유’ - LEISURE
엔터테인먼트(Purple) : 놀 땐 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흥과 열정’ -FUN
이렇게 우리의 삶이 가진 다채로움은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을 말하며 “What is your color in Korea?”라는 질문으로 영상은 끝이 난다. 이는 한국에 방문한 관광객이나 국민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영상을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국민 또는 관광객이 찾은 한국의 색깔, 한국의 다채로움에 대한 공모전이나 각종 캠페인으로 이어짐을 목표로 한다. ‘다채로운 대한민국’을 직접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래는 1분 광고 풀버전 영상이다.
편집: 김선유
기획: 김선유, 김효은, 김유진
촬영: 김선유, 김효은, 김유진
출연: 김선유, 김효은, 이규현
학업과 병행한 1달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같은 목표를 향해 팀원들과 똘똘 뭉쳐 과연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이렇게 스케일이 큰 고민을 해본 것은 뜻깊은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답을 못 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레퍼런스와 책들을 뒤져가며 공부했던 것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넓혀주었다. 또한 한번쯤 진정한 한국다움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깊게 고민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좋은 경험인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에프터 이펙트를 처음 해봤다. 에펙 기본도 안 갖춰져 있는데 유튜브 튜토리얼 보면서, 미대 친구들한테 물어보면서 밤을 새우며 작업했던 것이 꽤 힘들었고 그렇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초보라 영상과 편집 퀄리티는 떨어지지만 그 한정된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했기에 후회는 없다. 서울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추운 날씨에도 촬영하며 고생했던 팀원들과도 훨씬 가까워졌다. 전국을 여행하며 촬영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공모전에서 상을 타진 못하였지만 값진 경험이었음은 틀림없다.
우리가 만든 광고는 하나의 컨셉이지만 실제로 대내외적으로 사랑받는 열린 대한민국 브랜드가 만들어지길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