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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팍 Jun 09. 2023

처음 아닌 처음 같은 일본 여행

나의 첫 해외여행은 고3이 되던 1월 때의 일이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유럽 패키지여행이었다. 영국, 스위스, 프랑스 그리고 2군데의 유럽 나라를 관광하는 패키지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무렵의 나는 다가오는 입시에 겁에 질려 제대로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

거기에 졸음이 몰려오는 탓에 하루를 온전히 기억할 수가 없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리저리 걷다가 택시나 버스 등 이동수단에 타고 또다시 두어 시간을 이동하고 나면 무지한 내 눈에는 거의 비슷한 풍경이 보이고,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을 뿐이다. 


그 여행에서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은 기억은, 프랑스에서 먹은 달팽이 요리와 어느 날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버스에서 엄마에게 기대 잠들면서 데이브레이크의 <da capo>라는 음악을 듣던 기억뿐이다.

밤거리가 무척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나는 인지하고 있지 못했고 그저 음악이 유럽의 정취와 어울린다는 생각과 함께 이 날을, 이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겠구나, 했던 것뿐이다.


가족들과의 그 여행을 세세히 전부 기억하지도, 사진을 잘 정리해서 간직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은 좀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종종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에게 섣불리 '나도 가봤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경험에서 공유할 수 있는 감상이 위에 두 문단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후 가족여행으로 싱가포르와 일본 나고야를 다녀왔다.

두 차례의 여행은 모두 자유여행이었기에 좀 더 기억이 생생하다. 사진도 드라이브에 제대로 백업해 뒀으며, 종종 그곳의 공기와 가족들과의 대화들이 떠오른다.

여전히 구체적인 장소나 일정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쯤 되면 내 기억력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일본의 나고야에서의 기억도 꽤 편안하고 즐거웠기에 언젠가 일본을 다시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출국 비행기 표 들고 찰칵. 오고 가며 두 번이나 이용하게 된 에어 프레미아...(이때는 몰랐지...)


올해 3-4월 즈음인가, 직장을 다니고 있던 두 친구가 먼저 선지수 함께 도쿄 여행을 가지 않겠냐며 제안해 왔다.

나는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생활비도 그리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고민했지만 어쩌면 백수 생활의 마지막을 청산할 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고민 끝에 함께 항공권을 예매하게 된다.

그즈음에는 막연하게 '6월쯤이면 그래도 한 달 정도 출근하면서 월차를 쓸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지금도 백수다.


백수인만큼 나는 이 여행을 머릿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씹고 뜯고 즐기고 소화하고 반추하고 아주아주 오랜 기억으로 만들어버릴 작정이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쉽게 소중한 기억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것뿐만은 아니고 성인이 된 이후 독립적으로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온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아직도 어리숙한 내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흑역사에 가까운 성장통의 기록일 것 같지만 그래도 글로 남겨보고 싶다. 그날의 정취를 하나하나 곱씹고 추억하고 싶다.


문제는 나한테 완벽주의가 약간 있다는 점인데, 게다가 나는 퀄리티가 중간이 없다.

완벽하게 하고 싶은데 안되면 중간만 하면 되는데 중간을 못하고 대충 흐갈기다가 일단 해버린다. 결과가 처참한 건 어쩔 수 없고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엄청 많이 해버려서 숙련되어야 하는데, 그즈음 다시 완벽주의 사이클이 돌아서 엄청 많이 해내지를 못한다. 일단 브런치는 발행 후에도 수정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엄마가 캐리어 잃어버리지 말라고 스티커 붙여주셨다. 창피해서 막 떼다가 PHIA만 남아있는데, 좀 힙한 것 같기도...(?)

잠시 딴 길로 샜지만 어쨌든 이 글을 시작으로 찬찬히 여행의 하루하루를 기록할 것이다.

여행 에세이를 쓰는 것도 처음이고 다른 누군가의 것을 소비하는 걸 즐기지도 않았어서 서툴 수도 있지만 시도해 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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