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청소를 나의 헌신으로 삼을까 한다
우리 가족은 정리정돈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좀더 더불어 잘 살기 위해 한다.
너저분한 집에서 더 자주 다툰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 알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천성을 바꾸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단지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스로 어지르지 않았어도 그 상태가 불편한 사람이 치운다.
설령 그게 억울하더라도 소리내어 투덜거리지 않는다.
그런 일들을 마음에 쌓아두지도 않는다.
스스로 치워주기를 바란다면 명령도 잔소리도 아닌 부탁으로 한다.
특정 집안일이 누군가에게 귀속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단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딱 스트레스 받지 않는 만큼만 한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애씀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 가족은 각기 묵묵히 가족에게 헌신하는 부분들이 있다.
엄마는 집을 가꾸고 음식을 준비하고, 아빠는 회사에서 매일 성실히 일하시며 돈을 벌어오시고, 오빠도 혼자 먹을 것처럼 굴지만 이런저런 식재료를 사다 요리를 하거나 넷플릭스, 닌텐도 스위치 등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나의 헌신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실은 떠오르는게 별로 없다. 되려 투정부리던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가족들의 헌신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그저 내 앞길만 고집하며 그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풀던 순간들이 있었다. 보통은 사춘기라고 부르는 이 시기가 나는 얕게 오래 지속되었던지, 아니면 기면증의 약물 치료를 시작한 뒤로 처음 시작되었던지, 어쨌든 일반적이지 않은 사춘기였다.
가출까지 했었으니 딱 맞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오면서 끝났으니 정말 사춘기가 맞네.
20대 후반에 사춘기라니 우스운 이야기다.
도중에 가출에서 자발적 독립으로 변했긴 했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더 고집을 부렸거나 모아둔 돈이 넉넉하기라도 했다면 더 오래 스스로 가족과 거리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성정을 미루어볼 때, 그러다간 어느 순간 우리 가족은 정말로 뿔뿔히 흩어져 이전으로 되돌아오기 힘들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각자 지나치게 독립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아침 청소를 나의 헌신으로 삼을까 한다.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초록을 가꾸고, 온기로 아침을 여는 일을 지속할 것이다. 때가 되면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분리수거도 하고. 이 선언문이 빛바래지 않도록 가능한 만큼 오래.
더러는 짜증이 나거나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도 있겠지만 가족들이 내게 해주었던 것들을 기억하며 묵묵히 그냥 이 모든 일들이 아주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
본가에 돌아와 한 주 정도는 원룸텔에서의 독립적이고 생산적이던 생활이 그립기도 했다. 언젠가 다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순간이 분명 다시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에게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내 최우선의 과제이다. 청년 실업자(아니 '그냥 쉬웠음' 청년이다)의 방탕한 자기합리화라고 여길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면증으로 잃어버린 2n년간의 가족들과의 유대감은 그 얼마만큼의 금은보화도 되돌려 놓지 못한다. 한때 인터넷에서 접하는 친밀한 가족의 단상과는 너무 다른 우리 가족의 분위기를 한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조용하고 묵묵한 사랑도 있는 법이다.
알아채기 어려운 사랑도 분명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함께 사는 가족조차 알아채지 못할 아침의 청소도,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이 집에,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이 시간에 쌓이고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