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이 되기 전에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들

대학원생 랩소디 (1)

by 서박하

저는 학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3년 정도 하다가 28살에 석사를 시작해서 38살에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석사는 2년 6개월, 박사는 7년 6개월 걸렸습니다. 그냥 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시작한 저는 석사과정부터 엄청난 대가를 감당해야 했는데 혹시 이제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을 위해 대학원생이 되기 전에 준비했다면 좋았을 것들을 (이제 와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기술경영이라는 것을 전공했습니다. 경제학을 학부에서 전공하고 이공계 융합 공부를 하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세부 전공은 조직행동(기술경영대학원에서 뜬금없이...)을 했습니다.



1) 해당분야의 top journal 논문 (영어)을 최소 10편은 읽어보면 좋았을 것 같다.

내가 전공하고 싶은 분야의 top journal (분야마다 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저는 impact factor 기준) 논문을 최소 10편은 읽어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부 때 나름 리서치를 잘한다고 생각했고 한국의 거의 대부분의 논문 사이트들에서 논문을 읽으며 리포트를 작성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원에 오니 그런 국내 저널들은 거의 읽지를 않더군요. 99.99% 영어 논문을 읽어야 했습니다. 지도교수님을 처음 뵙고 받은 과제가 교수님이 보내주신 논문을 요약정리해서 1페이지로 만드는 것인데 정말 1주일을 내내 20페이지 정도 되는 논문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마 저의 고난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가기 전에 한편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이 분야를 선택했을까부터 어떤 부분을 준비했어야 하는지 등등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교과서와 논문은 독자가 다르기 때문에 글 쓰는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어떤 방법론을 써야 하는지 어떤 이론들이 있는지 전혀 감도 없이 시작한 석사 생활은 정말 정말 힘들었습니다. 대학원을 가고 싶다면 학부 3학년 때부터는 가고 싶은 분야의 좋은 논문들을 다운로드하여서 천천히 10편 정도는 읽어보고 분야를 정하고 대학원 갈 준비를 하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2) 위의 논문을 자유자재로 읽을 만큼의 영어실력을 갖췄으면 좋았을 것 같다.

대부분의 학계는 미국 중심입니다. 탑 저널도 당연히 미국에서 발행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아니어도 다 영어 저널이죠. 영어를 잘해야 합니다. 듣기, 말하기는 잘 못해도 독해와 쓰기는 일반 원어민 수준도 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영어 읽기를 정말 잘해야 합니다. 저는 석사 때 처음 영어 저널을 받아서 읽는데 한 페이지 넘어가는데 하루가 걸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방법론 쪽으로 가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헤매고 사전을 찾아도 알 수 없는 게 참 많아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석사 때는 정말 잠도 거의 못 자고 논문 리딩을 했습니다. 내가 원어민이었다면 몇 시간이면 읽고 요약할 것을 읽는데 3-4일 요약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리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나고 나니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 시간 동안 연구를 그만큼 못했겠지요. 기본은 리딩입니다. 리딩을 많이 하면 라이팅은 금방 좋아집니다. 학부 때는 시간이 많은 편이니 (학부 때도 바쁘다고 느끼긴 하는데 대학원 오니 학부는 천국이더군요), 방학 등을 이용해서 영어공부, 특히 리딩을 많이 하면 좋겠습니다. 토플이나 GRE/GMAT 준비를 하면 사실 자동으로 많이 실력이 늘어납니다. 토플 시험 점수도 만들 겸 준비해서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3) 무엇보다 통계를 잘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영어와 통계는 대학원 생활의 쌍두마차입니다. 분야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특히 경영 쪽을 전공한다고 생각하면 통계는 지나치게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통계 방법론과 툴에는 정말 많은 분야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어떤 방법론을 많이 쓰는지 어떤 툴을 많이 사용하는지 알고 기초를 갖춰야 합니다. 지금은 R로 많이 옮겨가고 있지만 사회과학분야는 SPSS를 많이 쓰고 그 외에도 AMOS, STATA, MINITAB, SAS 등등 아주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공부하느냐! 는 바로 첫 번째로 강조한 논문을 읽어보면 다 나옵니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론, 통계프로그램 등이 아주 자세히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데이터는 어떻게 모으는지 어떻게 분석했는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무료 데이터들도 많이 있고 유튜브에도 통계책 저자들이 잘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영어로) 통계책을 하나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서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들과 스터디를 해도 좋은 것 같아요. 저희 랩에서 석사생들이 방학 동안에 한 권을 쭉 스터디했는데 아주 효과가 좋았었습니다.


4) 교수님과 랩 분위기에 대해서 어떻게든 내부인의 솔직한 피드백을 들었어야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어떻게 준비를 해도 잘 알 수가 없긴 합니다. 내부인이 내 친구여서 솔직히 이야기해준다 해도 이미 그 교수님께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들어가면 쉽게 연구실을 바꿀 수 없고 앞으로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알 수 없을 만큼 의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합니다. 그렇기에 조사를 하고하고 또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것보다 나의 성향과 잘 맞는지가 중요합니다. 나는 조금 빡빡해도 지도를 자세히 해주시는 분이 좋다라거나 자유방임식이 좋다라거나 등등 여러 가지 성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같은 학교에 있는 연구실을 간다면 교수님의 수업을 들어보거나 (syllabus를 잘 보세요. 교수님의 성향을 잘 보여줍니다), 교수님마다 운영하시는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면 좋습니다. 아는 사람이 랩에 있으면 더 좋겠지요. 저는 다른 학교에서 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정했는데 저와 정반대 성향의 교수님을 만나서 저도 교수님도 많이 고생을 했습니다. (저는 INFP, 교수님은 INTJ였습니다. 지나고 나니 죄송한 게 많습니다...) 요즘은 김박사넷이라는 곳도 있긴 한데 정말 정확한 정보는 아닌 것 같아요. 최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고민하고 결정하시면 좋겠습니다.


5)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데 최대 몇 년까지 걸리는지 생각해보고 마음을 좀 더 길게 잡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저는 박사과정 마지막쯤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병원을 다니며 공부를 마쳤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제 예상보다 박사과정이 길어져서입니다. 석사는 졸업요건이 석사논문이면 되지만 박사는 특정 저널에 논문을 실어야 하는 등 조건이 많이 있었어요. 그것을 채우는 것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그 바람에 여러 가지 계획이 뒤로 밀리면서 맘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장기간 스트레스를 오래 받다 보니 몸도 아프게 되더라고요. 애초에 조금 길게 봤으면 훨씬 좋았겠다 이제 와서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학위를 하기로 하면서 외국에서 하는 것보다는 빨리하겠지 싶었습니다. 그래서 박사를 3년이면 하지 않을까 (주제넘게) 생각했습니다. 저널에도 금방 실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오래 걸리고 실험도 잘 안되고 주제도 바꾸게 되고 등등 변수가 많이 있었습니다. 결국 7년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애초에 7년즘 걸리겠지 했다면 아마 마음이 이렇게 까지 고생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조급한 마음이 오히려 더 연구를 방해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졸업을 못하면 잘리나 정도를 알아보고 느긋하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자잘한 것들이 생각나긴 하지만 일단 큰 줄기는 위 5개 정도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철저한 준비를 하고 대학원에 가는 것, 마음의 준비든 학업의 준비든, 이 핵심인 것 같네요. 대학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으로 많이 선택하시는 학교들에서는 대부분 위의 내용이 적용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그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던지 적용이 되는 사안인 것 같습니다. 작은 팁이나마 대학원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PS. 앞으로도 대학원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에 대해서 글을 몇 가지 더 발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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