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00 비정규직의 일상

대학원생 랩소디 (2): 한 대학원생의 어느 멋진 날

by 서박하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고 하지요. 이런 식의 유머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어요. 제가 석사 때에는 심슨의 바트를 보며 웃기도 했어요. (아니 울었나?...)


바트... 그러지 마... (출처: 구글 이미지)


그만큼 어느 시대에나 대학원생의 처지에 대해 가엽게 여기나 봅니다. 제가 석박사 도합 10여 년 동안 대학원 생활을 해본 결과 대학원생의 딱한 처지에 대한 이유는 크게 3無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없다.

돈이 없다.

성취가 없다.


즉, 오랜시간 일하며 적게 벌고 기약없이 긴 기간을 보내야 합니다. 경영대 대학원생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일하나?


AM 8:00 : 알람 소리에 후다닥 일어난다. 오늘은 교수님 수업이 있는 날이라 유인물 복사를 해야 한다. 수업이 없는 날은 9시쯤 일어나도 괜찮다. 하지만 랩에 9시 30분까지는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늦잠을 자긴 어렵다.

AM 9:00 : 학내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와 샌드위치 세트를 주문했다. 학생 할인이 되는 게 그나마 낙이 있다. 랩으로 가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카페에 앉아서 어젯밤 예능을 보며 먹는다.

AM 9:30 : 랩에 도착해 컴퓨터를 켠다. 오늘 오후에 있는 랩 세미나를 준비하는 동기는 밤을 새운 거 같다. 엎드려 자고 있다. 어젯밤 들어와 있는 교수님 이메일을 확인한다. 교수님께 확인했다고 이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유인물을 복사한다. 이런 복사기가 말썽이다. 학과 사무실로 달려간다.

AM 10:00: 오전 수업이 있는 강의실로 향한다. 수님 수업이 있는 날은 항상 긴장을 한다. USB에 강의자료를 담아 15분 전에는 꼭 강의실에 도착한다. PPT를 열고 화면은 괜찮은지 마이크는 괜찮은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며 대략적인 출석체크를 한다. 유인물을 나눠주고 수업시간에 졸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는지 잘 관찰한다.

AM: 12:00: 교수님과 다른 조교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으며 "오늘 랩 세미나는 누가 발표하니?" 다행히 내가 아니다.

PM: 1:00: 랩세미나가 시작되었다. 교수님과 대학원생 5명. 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랩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교수님께 단체로 1시간 정도 혼난다.

PM: 4:00: 랩으로 돌아와 어젯밤까지 마감이었던 학부생 과제를 출력한다. 이메일 시간을 보고 늦게 제출한 학생은 체크를 한다. 전체 채점을 하고 엑셀에 정리를 한다. 교수님께 보내드린다.

PM: 6:00: 랩 원들 다 함께 학교 후문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오늘은 부대찌개를 먹는다. 먹는 내내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어제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했던 랩원 한 명이 교수님께 이메일을 받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랩으로 뛰어갔다. 별일 없길을.

PM: 7:30: 커피 한잔을 들고 랩으로 다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아까 랩으로 돌아온 랩원은 데이터를 다시 돌리고 있다. 뭔가 잘못되었나 보다. 진정될 때까지 말을 걸지 않는다. 나는 오늘 밤에 미국 아마존에 올릴 설문지 마무리를 시작했다. 교수님께 7번즘 확인을 받고 컨펌이 되었다. 폰트가 교수님 마음에 안 드셔서 여러 번 바꿨다.

PM: 9:00: 과외 하는 시간이다.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다. 달려가서 과외를 하고 달려서 돌아온다.

PM: 11:00: 대학원 수업 조모임 시간이다. 옆 랩에 있는 애들과 세미나실에 앉아서 중간보고 준비를 했다. 개별 중간 페이퍼도 써야 하는데 아직 시작도 못했다.

PM: 12:00: 일단 방으로 간다. 씻고 잠깐 예능을 보며 컵누들을 하나 먹었다. 생물학과인 룸메는 아직도 방에 오지 않았다.

AM: 1:00: 저널에 낼 논문에 들어갈 레퍼런스 논문을 몇 개 읽으며 정리를 시작했다. 밤이 되니 잘 안 읽힌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었다.

AM: 3:00: 아마존에 접속해서 설문지를 올렸다. 내일 아침에 아마 다 모일 것이다. 교수님께 설문 올렸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이번에는 결과가 잘 나와야 하는데...

AM: 3:30: 잠을 잔다. 룸메는 오늘 안 들어오나 보다.


굉장히 평범한 하루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다른날에는 학부생 개별 연구지도도 하고 수업에서 강의도 하고 수업도 듣고 대학원 행사도 가고 랩 행사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집에도 가고 영화도 보고 그럽니다. 제 경우는 이 정도인데 저희 옆 랩의 경우에는 교수님이 너무 바쁘셔서 새벽 1시에 교수님과 미팅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실험도 하는 대부분의 공대의 경우 더 밤낮없이 지내야 합니다. 생물학과였던 제 룸메는 일주일에 2-3번은 방에 들어오지 못했어요. 잠은 주로 주말에 몰아서 잡니다. 주말이라고 랩에 안 나가는 건 아니에요. 주말에도 보통 점심 먹고 나면 랩에 나갑니다. 교수님도 나오십니다 (....). 그리고 방학에는 휴가가 약 2주 정도씩 있었어요. 나머지 기간에는 학교에서 랩 세미나를 하고 학회 준비를 하고 개인 논문, 저널 논문을 위한 교수님과의 개별 미팅이 이어집니다.


얼마나 받나?


그리고 이렇게 지내면서 받는 돈은 한 달에 40만 원 정도였습니다. (연봉 500...) 프로젝트가 많은 랩은 그래도 100 얼마간에서 200 얼마까지 받는 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상한선이 250이었어요) 저는 대학원 다니면서까지 부모님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어서 과외를 평균 2개 정도 했답니다. 매 학기 내야 하는 기숙사 비용과 학비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 받는 40여만 원은 식비, 통신비 등의 생활비로 사용을 했어요. 이때 중고옷가게를 참으로 많이 이용 했습니다. 부모님의 넉넉한 지원 아래에서 자기 자동차도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조금은 삶이 고달프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국립대(비슷한)라 학비와 기숙사비가 저렴한 편이었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은 이후에 직장생활을 하며 일반인으로 다니면서 받은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일반인과 전일제 조교를 하며 지내는 학생의 학비는 거의 10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얼마나 걸리나?


사실 이렇게 지내면서도 석사~박사 1,2년 차까지는 견딜만합니다. 고지가 멀지 않은 것 같거든요. 하지만 졸업이 점점 늦어지고 뭔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가며 힘들어집니다. 특히 저널에 논문을 게재해야 하는데 리젝(reject)을 계~~ 속 당하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저희 랩에서만 심리상담을 3명 정도 받았고 수면제 먹고 자는 사람이 2명 넘었어요. 아주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실패를 경험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 그리 좋지 않다고 이때 느꼈답니다. 이후에 진로에 대한 고민도 계속해야 하고요.


이 모든 게 본인이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점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매일 잠 못 자가며 논문을 쓰고 노력해도 결국 졸업요건을 채우지 못해서 졸업을 못하는 동기들도 있었고 교수님 추천으로 조건부 졸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건 저널 출판이 어려운 사회과학분야의 경우이고 아마 공대는 좀 더 다른 것 같아요. 어마어마한 실험에 시달리며 본인 논문을 쓰지 못하고 요건을 채워도 교수님이 졸업을 안 시켜준다거나 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합니다. 실험이 있는 랩들을 선후배 간의 문화도 좀 있는 것 같고 텃세도 많은 것 같았어요. 실험을 혼자만 할 수 없고 또 배워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19년 동안 학위를 주지 않은 교수를 살해한 일도 있었는데 정당방위 아닌가 하는 여론이 있었지요.


지도교수를 죽인 대학원생 이야기 (심지어 위키 항목이 있네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박사 연한 같은 게 원래 없다가 하도 대학원생의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어서 몇 년 안에 졸업을 못하면 교수에게 불이익을 주었어요. 그 기한 안에 졸업을 못하면 학생은 아예 제적이 되었지요 (공대 중심 학교여서 대부분 졸업요건은 금방 채우더라고요. 교수님 실험을 돕다가 다들 졸업이 늦어지곤 하였습니다...)


또한 대학원에 다녀보지 않았거나 졸업이 비교적 쉬운 대학원을 다닌 가족과 친구들의 대화는 대학원생을 점점 위축시킵니다. 어디 가서 왜 아직도 졸업을 못하냐는 친구 가족들의 이야기를 몇 년 동안 듣다 보면 점점 만나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졸업은 언제 하니?"

"God only knows"

"논문은 금방 쓰는 거 아니야?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니야? 한 달? "

"하하하 (네가 한번 써봐라)"


정리하면, 대학원에 가면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감당하실 수 있다면 대학원에 도전해보세요! (응?) 연구가 좋으냐 안 좋으냐 보다 더 중요한 게 이런 생활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연구에 대해서도 글을 한번 정리해볼게요!) 저는 이런 것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어요. 석사 초반에 이런 걸 몰라서 교수님께 크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저희 랩은 제가 1호 석사였어요) 이후에 대학원 생활에 대해 깨닫고 개인생활을 모두 접고 랩 붙박이가 되어서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어찌 되었든 연구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고 시간이 필요하긴 하니까요. 후배들이 들어오고 나서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교수님께 말씀도 드리고 교수님께서도 연차가 올라가시며 여유가 생겨서 많이 변하기는 하셨어요. 요새는 "라테는~말이야" 이 나와서 꾹 참고 후배들 상담을 해주곤 합니다.


저는 모르고 시작해서 아주 고생하고 병원도 다녔지만 혹시라도 대학원을 준비하시는 분들 (특히 박사!)은 이런 삶에 대해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가고 싶은 대학원이 있으면 이런 건 상관없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학부생 때 가고 싶은 랩이 있으면 학부생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권장드립니다. 물론 그때 경험하는 것은 1% 정도밖에 안됩니다. 학부생이 아는 교수님과 대학원생이 아는 교수님은 (대부분) 아주 다른 사람입니다.


아마 대학원에 가기로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 분들이라면 무엇인가에 이끌리듯이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어도 가게 될거에요. 그러니 대학원에 자꾸 가고 싶다면 여러가지 글을 읽어보시되 가능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고 최대한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고 가시길 바랍니다. 행운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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