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청소를

평안한 연휴를 보내며

by 서박하

12월 21일 밤에 일을 받았고 마감이 25일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연휴로 지내지 않는 나라에서 들어온 일이었다. 번역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문서 포맷을 맞추는데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었다. 사실 번역가는 번역만 하면 되는 게 원칙이지만 세상사 원칙대로만 되는 게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랩탑을 최신버전으로 유지하고 정품 프로그램들을 설치해서 많은 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번 번역도 어도비어크로뱃과 번역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시간 내에 끝낼 수 없었을 것 같다. 깨알 같은 무거운 워드파일에서 번역을 하는 건 한자 고치고 기다리고 한자 지우고 기다리고 하는 등 시간이 너무 오래 소요된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데 고정비용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투자라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월 고정 비용들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은 수입을 올리면 좋겠다. 아무튼, 연휴 내내 일하고 25일 오전에야 파일을 마무리해서 보냈다. 마감은 오늘 자정이니 여유가 있게 보내 다행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먹고 놔둔 탄산수 캔들로 가득하다. 나는 일을 하다 보면 방을 잘 치우지 못한다. 특히 감기로 골골대며 일하다 보니 방안에는 택배박스에 출력한 문서들에 사탕 봉지까지 가득이다. 온 가족이 몇 주간 아팠더니 집 전체적으로도 청소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그동안 최소한의 집안일만 하며 지냈는데 이제는 다시 물걸레질도 하고 재활용쓰레기도 내버려야 할 시간이다.


아침은 토스트로, 점심은 어제 먹고 남은 오징어볶음에 밥을 볶아 먹고 딸기를 먹었다. 그리고 기운을 내 남편과 청소를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행사는 이미 23일 저녁에 한터라 오늘은 그냥 연휴가 되었다. 연휴라 좋은 것은 그래도 합법적으로 좀 쉬어도 되는 날이라는 것이다. 프리랜서에게 휴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아이도 학교에 가지 않아 아침시간이 여유가 있고 남편도 집에서 쉬니 함께 청소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택배 박스들을 뜯어 정리하고 청소기로 구석구석 밀어 본다. 다용도실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재활용품들을 정리해 본다. 일하는 동안은 내 방에 잘 들어오지 않는 딸이 내 방을 보더니 "엄마 방이 쑥대밭이에요"라고 한다. 최근에 익힌 새로운 단어인데 적절하게 잘 사용하는 걸 보고 웃었다. 쑥대밭이 된 내 방 책상에 잔뜩 쌓인 책들을 다시 정리하고 문서들은 재활용박스에 넣고 쓰레기들을 봉지에 담아 내어놓는다.


문제는 거실 테이블이다. 6인용 테이블을 놓고 쓰는데 밥도 먹고 아이가 숙제하고 만들기 하고 놀다 보니 하루만 안 치워도 아니 한 3-4시간만 안 치워도 정말 금세 쑥대밭이 되고 만다. 물건들을 한쪽으로 밀고 밥을 먹는 것도 부지기수다. 이걸 치울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물건의 자리를 알고 기억할 수 있고 버릴지 말지 판단하는 건 나뿐이라. 내가 팔을 걷었다. 남편이 재활용을 버리러 간 사이에 책상을 정리한다. 아이 물건은 정말 버리고 싶은 것들, 특히 작은 종이에 그리고 클레이로 만든 것들, 이 많지만 어릴 적 상처를 떠올리며 아이 잡동사니 넣는 상자에 넣는다.


정리한 거실 테이블


그 사이에 아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문한 피카추 인형이 도착했다. 아이는 피카추 인형을 보며 신나게 재잘거린다. 그 사이에 식기세척기는 돌아가고 건조기가 끝나고 청소기도 마저 다 돌렸다. 테이블 청소도 이제 끝이 났다. 바닥 물걸레청소까지 하려 했으나 체력의 한계로 내일로 미루고 차 한잔을 내려 테이블에 앉는다.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집안은 따뜻하다. 아이는 이제 책을 읽고 있고 나는 글을 쓴다. 평화로운 오후. 감사한 시간들이다. 하늘에는 영광을, 땅에는 평화를.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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