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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04. 2024

나는 일 중독일까

일이 없으면 불안한 프리랜서 일상 

나는 일이 들어오면 기운이 나고 일이 없으면 시무룩한 평범한(?) 프리랜서이다. 일없는 어느 오후 아이 학원 아래 카페에 앉아서 기다리며 일이 없어 심심하다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일 중독인가 싶었다. 일 중독 증상을 확인해 보았다. 


브라이언 E. 로빈슨이 저술한 '책상에 묶인 마음(chained to the desk)'에서 소개한 일 중독의 10가지 증상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항상 서두르며 매일 바쁘다 ▲과도하게 계획하고 과도하게 조직한다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완벽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일 때문에 인간관계가 어긋나곤 한다 ▲요란 법석을 떨며 일한다 ▲끊임없이 일하고 불평을 자주 한다 ▲일에서 황홀경을 경험한다 ▲참을성이 없고 자주 화를 낸다 ▲일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


10가지 증상을 보니 간헐적 일중독이 맞는 것 같았다. 늘 그런 것은 아닌데 가끔 저런 증상들이 나타날 때가 있다. 매일 저런 일 중독 증상이 나타나면 수명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하지만 일이 있어도 없어도 불안한 마음은 아마 일중독에 가까운 마음일 것 같다. 


항상 서두르며 매일 바쁘다

시간당 페이를 받는 일들이 있다 보니 늘 서두르게 되고 바쁘다. 밥도 자리에 앉아서 먹고 화장실도 뛰어서 다녀오기도 한다. 모처럼 주말에 아이와 함께 놀러 가도 마음은 늘 다른 곳에 가있다. 


과도하게 계획하고 과도하게 조직한다

늘 계획을 세운다. 이 정도 일하면 이 정도 수입이 들어올 수 있겠지, 그러면 뭘 해야지. 이력서를 여기에 넣어야지 저기에 넣어야지 하며 계획하고 또 계획한다. 그러면 불안함이 좀 덜해지기 때문이다.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완벽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사실 이게 제일 큰 문제인데, 일을 한 번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불안함이 늘 한구석에 있다. 이 불안함은 언제 즘 가라앉을까. 


일 때문에 인간관계가 어긋나곤 한다

다행히 어긋날 인간관계가 별로 없어서 이런 일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과 아이인데, 감사하게도 나는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는 일을 내려놓는 연습을 많이 했다. 물론 마감이 닥치면 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가정을 지키려 노력한다. 


요란 법석을 떨며 일한다 

맞다. 이 항목을 보고 웃었다. 나는 일할 때 모든 것을 갖추고 요란 법석을 떨면서 일한다. 막 자료는 프린트해서 밑줄 치며 봐야 하고 듀얼 모니터에 다 갖추고 일을 해야 하고 온 책상은 자료들로 엉망이다. 


끊임없이 일하고 불평을 자주 한다 

끊임없이 일하는 것은 맞다. 거의 하루 종일 일 생각을 하고 이메일과 슬랙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불평은 불쑥불쑥 올라오지만 그래도 감사로 대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에서 황홀경을 경험한다

일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부분인데 약간 이런 면이 있다. 일이 있으면 자존감도 좀 있고 그런데 없으면 축 처지고 세상 우울해진다. 일이 잘되면 너무 기쁘고 날아다니 다다고 금세 클라이언트 피드백에 풀이 죽는다. 일과 내 삶을 분리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너무 필요하다. 


참을성이 없고 자주 화를 낸다

이미 몇 개월간 인내심 훈련을 했고 화를 낼 기운이 없어서 다행히 화를 내지는 않는다.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

조금만 바쁘면 자신을 돌보질 못한다. 밥도 빨리 먹고 운동도 못하고 로션하나 제대로 바르지도 않는다. 그나마 아이를 픽업하고 학원 기다리느라 옷도 제대로 입고 화장도 하는 것이 있어서 완전 폐인의 길에는 접어들지 않게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상당한 일 중독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너무 애쓰고 발을 동동 구르지 말고 평안히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특히 일이 없을 때의 내 모습은 너무 안쓰럽다. 


프리랜서는 일이 몰려오기 때문에 바쁠 때는 너무 바쁜데, 일이 없으면 일주일씩 할 일이 없다. 그러면 세상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다. 하지만 몇 번의 비수기를 겪고 나니 느낀 건 쉴 때 쉬자이다. 비수기가 있는 것은 곧 다가올 일의 홍수를 대비하기 위한 시간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이력서를 넣는 등의 소소한 일들을 제외하고는 책 읽고 운동하고 쉬며 체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하기 비수기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면 다시금 일이 몰려오고 생각한다. 그때 더 쉴껄하고 말이다. 


매일, 며칠, 몇 달이 비슷하다. 인생도 길게 보면 그럴 거라 생각한다. 1,2년 뒤처지는 것 같은 시간들에 낙심하고 넘어져 있기보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건강하게 자신을 돌보는 것이 이후에 다가올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인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들을 또 잘 보내보려 한다. 며칠 쉰 것이 무색하게 잔뜩 쌓여있는 일과 마감에 감사하며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로 돌아가보자. 


사진: Unsplash의 Glenn Di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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