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랩소디 (4): 랩세미나, 콜로세움과 아고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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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의 일상 중의 하나는 바로 "랩세미나"입니다. 대학원마다 교수님마다 워낙 다르게 운영하기 때문에 이것이 랩세미나다! 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대략적으로 랩세미나는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교수님은 계시기도 안계시기도) 각자의 연구에 대해서 발표하거나 공통주제로 연구하고 토론하며 연구역량을 키우는 시간입니다. 연구는 혼자서 엉덩이 붙이고 논문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도 무척 중요하지만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아이디어를 얻고 엉킨 실타래를 푸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대 아테네의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서 함께 토론을 하며 지혜를 쌓아갔다고 하지요. 아마도 이런 문화들이 이어져 내려온 게 아닌가 싶어요.
고대 아테네의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서
함께 토론을 하며 지혜를 쌓아갔다고 하지요
제가 졸업할 때쯤에는 랩세미나가 거의 없어지고 교수님과의 개별연구모임으로 간소화되었지만 하지만 제가 한창 석/박사를 하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2-3번씩 랩세미나를 한적도 있었지요. 대학원생들만 모이는 세미나/ 학부생들까지 오는 전체 세미나/ 연구팀별 모임 등등 말이죠. 영어로만 랩세미나를 진행한적도 아주 많았어요. 물론 우리 모두는 한국말을 다 잘했지요. 정말 랩세미나 발표를 앞두고는 밤을 안 새운 날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중압감을 받았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아고라에 모인 시민보다는
콜로세움에 들어선 글래디에이터였어요.
살기 위해 서로에게 모진 말을 내세우던 우리들은 늘 상처투성이 검투사들이었지요. 사실 다른 사람 연구에 뭐 그렇게 할 말이 많겠어요. 내가 할 것도 많은데 말이죠. 그냥 밥 먹으면서 변수 몇 개가 있는데 그 중간즘에 뭐가 들어가면 좋을까? 이건 어때? 물어보면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주면 그게 다였지요. 가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건 어떨까? 음 그건 이미 있는 연구 아니야? 하면서 가볍게 서로 물어보는 것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다였어요.
하지만 교수님은 우리들이 서로 비판적인 사고 (Critical Thinking)을 하는 연구자로 성장하길 바라셨어요. 랩세미나 전날 질문을 써서 냈어야 했는데 그러려면 상대방의 연구를 쥐 잡듯이 잡아야 하지요. 이걸 물어보는 게 도움이 될까 싶은 내용도 그냥 막 적어서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질문이 없거나 너무 쉬운 질문이면 랩 세미나 분위기가 더 험악해졌기 때문에 우리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찔러대야 했어요. 하지만 랩 동료가 결코 답을 잘 못하는 일이 없도록 질문은 항상 그 전날까지 보내주고도 찾아가서 질문의 의도에 대해서 설명해주곤 했어요.
마치, 유능한 글래디에이터를 살리기 위해 약한 상대를 배정하듯 말이지요. 우리는 다 함께 살아남아야 했으니까요. 학위 논문 발표를 디펜스(방어)라고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요!
며칠 밤을 새워 연구 페이퍼를 쓰고도 교수님과 동료들의 모진 비판을 들으며 앉아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아요. 약 3-4년 정도를 거의 매주 그런 랩세미나를 경험하면 어디 다른 곳에 가서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논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집니다. 그때부터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내 연구 이외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타인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도 아주 아주 조심스러워졌어요. (물론 반대 케이스도 있는 것 같아요) '아 내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구나' 라고 깨달은 건 박사학위 논문 디펜스를 마치고 나서였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나'라는 자괴감에 시달리면 박사학위증이 나온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여름방학이었어요. 학교에서는 방학이라고 하지만 대학원생에게는 수업도 없고 방학이 없지요. 학회다 저널이다 해서 방학에도 거의 매일 만나서 랩세미나를 하고 울고 불고 (...)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학기를 앞두고 1주일 정도 휴가가 주어졌어요. 당시 랩원은 저까지 총 4명이었는데 마지막 랩세미나가 끝나는 날 함께 밥을 먹고 찜질방에서 목욕을 하고 계란과 식혜를 까먹고 나서 다시 술집에 가서 매*수를 얼음 가득 넣은 맥주잔에 부어마시며 (이건 진짜 맛있어요 꼭 해보세요 ㅋ) 그 여름을 돌아보았어요. 우리들은 젊었고(혹은 어렸고) 열정적이었고 함께였지요. 서로 위로하며 격려했지요. 그 뜨거운 여름을 잘 버틴 우리였으니까요.
그래도 우리 모두 살아남아 다행이야.
그 여름이 지난 이후로 저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대학원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한명은 다른 랩으로 옮겼고 한명은 빠르게 졸업했고 한명만이 오래도록 남아 랩을 지키다가 결국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지금은 다행히 모두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시간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요? 우리들은 서로를 보면 당연스럽게도 그때의 아픔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각자의 길을 가게 된 후로는 다함께 만나는 일이 없었어요.
저는 그 시절을 거쳐 발표 PPT를 잘 만들게 되었고 (이부분은 박사학위 디펜스 할때 다른 교수님께서 저희교수님께 ppt 포맷이 랩에 있냐고 물어보셨을 정도였어요) 영어 작문실력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과물에 대해서 결코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고 그 시절 우리를 바라보시던 교수님을 기억하며 직장 후배를 조용히 기다려주게 되었어요. 치열했던 그 여름의 햇살은 그래도 몇몇 가을의 열매를 잘 익게 해주었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데로 그런 의미가 있네요.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