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으로 지구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채식 일기 (2): 이기적인 90% 채식인

by 서박하

Photo by Robert Bye on Unsplash


지난 9월 몸이 안 좋아 자연식물식에 도전한다고 하고 중간보고 글이라도 쓰려고 했는데 이제야 글을 쓴다. 일단 도전은 4주 정도만에 완전히 실패했다. 완전 자연식물식 4주 차 생리 시작 전까지는 정말 몸이 좋아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생리를 시작하고 나서 역시나 극심한 빈혈과 두통, 어지러움을 경험했다. 이 시기에 불안장애 약을 끊었는데 그게 문제였던 것으로 확인을 하긴 했다. 약을 먹고 나서 1주일 정도만에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에 외주로 받은 업무가 너무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정말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스트레스성 가려움도 생겨서 온 다리에 상처가 생겼다. 보고서도 엉망진창이었다. 병원을 2군데나 갔지만 검사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스트레스성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다시 병원에서 약을 먹었다. 그리고 거의 1주일 만에 상태가 호전되었다. 다시 영양제도 7개씩 먹기 시작했다. (건강염려증 있음)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힘든 외주는 받지 않기로 결심을 하며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100% 비건 1명보다 90% 채식지향인 10명이 낫다

100% 비건 1명보다 90% 채식지향인 10명이 낫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도 조금 느슨한 채식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지 2달 정도 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붉은 고기는 먹지 않았다. 닭고기도 먹지 않았다. 생선은 조금 먹었다. 붉은 고기와 닭을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수월했던 것 같다. 현미와 고구마, 양배추, 두부를 기본으로 김치나 장아찌 등을 먹고 있다.


피치 못할 상황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약간 먹었고 컵라면을 먹었다. 우유로 만든 요구르트를 완전히 끊었다. 크림치즈도 먹지 않는다. 대신 이 기간에 딸기잼 한통을 다 퍼먹었다 (....) 아직 우유와 계란이 들어간 빵은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 베이글과 페스트리를 끊는 건... 정말 어렵다. 집에서 완전 비건 통밀빵을 만들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비건 머핀이나 팬케이크들은 모두 맛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통밀가루도 밀가루고 비정제 설탕도 설탕이고 유기농 코코넛 오일도 기름이기에 살도 찌고 몸에도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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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착한 매일 식단은 다음과 같다.

- 아침: 거의 먹지 않은. 보리차 정도 마신다. (16시간 공복 유지에 힘쓰고 있다)
- 점심: 고구마 혹은 현미밥/ 김치, 두부된장찌개, 나또, 김치, 샐러드 등 혹은 비건라면, 버거, 샌드위치 등 든든하게
- 간식: 빵 혹은 과자 (비건으로 먹으려고 노력), 무첨가 두유, 커피, 과일 등
- 저녁: 고구마 혹은 현미밥/ 김치, 두부된장찌개, 나또, 김치, 샐러드 등 가볍게

가끔 채식 라면인 정면을 먹는다. 아주 맛있다. 채식 안 하시는 부모님도 맛있다고 좋아하셔서 우리 집 라면은 이걸로 정착했다. 채식 비건 돈가스나 탕수육은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다. 비건용 베지 볼은 시도해봤는데 가성비가 영 좋지 않았다. 비건용으로 나오는 음식들은 아직 그다지 맛이 없다. 코로나가 끝나면 비건 레스토랑에 가보고 싶은데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부터 다니던 홍대 수카라가 비건 레스토랑이었다는 게 요즘 새삼스럽게 반갑고 신기하다. 햄버거가 먹고 싶으면 가끔 서브웨이 얼티밋 서브를 먹거나 쉐이크쉑의 슈룸버거를 먹는다. 프렌치프라이는 비건이라 종종 먹는다.



자연식물식/비건머핀/서브웨이 얼티밋서브/쉐이크쉑 슈룸버거 (왼쪽 위부터)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몸 상태이겠다. 현재 느끼는 것은 몸이 정말 가볍다는 것이다. 또 채식 위주 식단을 유지하며 신기하게 떡볶이가 막 먹고 싶지 않다. 보통 생리 전에 떡볶이를 꼭 먹곤 했는데 이번에는 먹지 않았다. 자극적인 음식이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아 져서 다행이다. 나는 예전에 일주일에 5번도 먹은 적이 있을 정도로 떡볶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생리통이 거의 없어졌다. 생리양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난번 몸이 안 좋을 때 생리양이 엄청나서 더 걱정했었는데 이 부분이 해결되어서 정말 좋다. 생리할 때 피부가 예민해지고 염증이 많이 생겼었는데 이번 달은 특히나 이 부분이 개선되어서 다행이다. 사실 더 몸을 클린 하게 하려면 비건 버거니 빵이니 먹지 않아야 하는데 아이와 함께 집에만 있으면 자꾸만 뭔가 단것이 먹고 싶어 진다. 너무 가혹하지 않게 살이 찌지 않는 선에서 먹고 있다. 간식으로 과일을 먹으면 배도 안 고프고 허기도 지지 않아서 가능한 과일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먹는데 적응을 하고 나니 동물성 제품을 먹게 되면 즉각적으로 몸에서 반응이 나타난다. 시부모님과 함께 갈비탕을 먹으러 가서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 그 후 이틀간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고 나면 속에서 부글부글 가스가 올라오고 배가 빵빵해져서 아주 불편하다. 그리고 이렇게 먹고 나면 항상 2-3일 후에 얼굴에 뾰루지가 몇 개 올라온다.


단점은 외식할 때 불편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없다. 다만 내가 초밥, 회, 물회 등을 엄청 좋아하는데 이제 못 먹는 게 조금 아쉽긴 한다.그래도 항상 횟집 수족관을 보면 마음이 불편한데 이제 먹지 않으니 조금은 덜 미안하다.


글을 쓰다 보니 셰이크 쉑의 쉬룸버거가 먹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쿠팡이츠가 생기고 나서 먹을 수 있는 음식 범위가 넓어져서 즐겁고도 괴롭다. 물론 완전 비건 버거가 아니다. 아마도 빵에 달걀과 우유가 들어갈 것이다. 소스도 확인이 안 되지만 그래도 고기고기 한 버거가 아닌 것에 만족한다.


지구 상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한다고 해서
세상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하나가 달걀 안 먹는다고 닭들이 케이지를 모두 벗어나고 젖소들이 송아지들에게 젖을 물리며 살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새우를 안 먹는다고 해서 태국에서 어린아이들이 얼음물에 손을 담그는 대신 학교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 상 모든 사람이 비건이 된다고 해서 세상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플라스틱과 비닐에 파묻히거나 물이나 공기가 안좋아져서 멸망할것 같다...


하지만 남은 삶을 지구에서 보내는 동안 그리고 내 아이가 이 세상에서 지내는 동안 지구가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내 아이와 같은 아이들이 최소한 내 아이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이기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고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지구 상 모두가 이렇게 이기적이 되어서 지구에게 자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이기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고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지구 상 모두가 이렇게 이기적이 되어서
지구에게 자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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