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 세 살 터울의 여동생과 함께 텔레비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열심히 챙겨 본 드라마가 있다. 바로 손예진, 정해인 주연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두 배우의 알콩달콩 예쁜 투샷에 반하고 또 감탄하며 본 기억이 난다.
극중 정해인은 손예진과 사랑에 빠지는 연하남 역할이었다. 하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 게다가 자상함과 듬직함까지! 이러니 손예진이 반해, 안 반해. 한창 드라마를 보면서 심쿵을 많이 당했다.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도 안 하더라. '아, 이래서 여자들이 연하남한테 빠지는구나'라고 느끼기도 했다.
'누나'라는 말에 로망이 있다. 정해인 같은 듬직한 연하남이 "누나~"라고 불러주면 쪼르르 달려가서 해 달라는 것 다 해 줄 것 같다. 여기에 이랬어요? 저랬어요? 존댓말까지 더해주면 심쿵사로 쓰러질 지도. 가끔은 반존대(반말+존댓말)로 박력을 행사하면 게임 끝이다. 아,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면 상상 속 연하남의 모습은 죄다 잘생긴 배우라는 것.
나에게는 남동생이 있다. 6살이나 어린 막냇동생이다. 말 잘 듣는, 착하고 귀여운 남동생으로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나를 부를 때 항상 "야" 아니면 그냥 내 이름이다. 어린 게 아주 못 됐다. 어렸을 때는 꼬박꼬박 누나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이젠 언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동생한테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소름이 돋을 뿐 아니라 듣는 즉시 로망이 산산이 조각나 버릴 것 같다. 그래도 뭐, 덕분에 로망 하나 가질 수 있게 된 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운 대학교 3학년 시절엔 과 생활을 열심히 해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남자 애들도 몇 명 있었는데, 그 애들이 나에게 "누나"라고 불러주면 기분이 좋았다. 키도 큰 애들이 쪼르르 달려와 인사하며 반겨주는 게 얼마나 기분 좋던지. 남들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겠지만 뭔가 나를 존중해 주고, 잘 따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선뜻 밥을 사줄 때가 많았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예쁜'을 빼버린 그냥 밥 잘 사주는 누나였지만. 나중에는 밥을 사주느라 두툼했던 지갑이 종잇장처럼 가벼워졌는데, 어깨만큼은 으쓱했다. 멋진(밥값을 몽땅 내주는) 누나의 면모를 보였으니까.
사실 앞에서 로망이니, 뭐니 떠들어댔지만 이상형이 이상형일 뿐이듯, 로망도 그저 로망일 뿐이다. 현실은 누나라고 불러줄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럴 만한 환경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꿈은 크게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로망 하나하나 쌓아 올려서 크게 만들 생각이다. 뭐에 쓰냐고 묻는다면, 소설을 써보고 싶다. 로망이 넘실대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에게 나를 투영해 보기도 하고, 전지적 작가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만들어 내고 해결하기까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크게 부푼 그것을 어느 봄날 사뿐히 터트리고 싶다.
#에세이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