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면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는 가면을 골라 오시면 됩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해 부루퉁한 얼굴로 매장 안에 들어섰다. 다양한 표정의 가면이 매장 안에 진열돼 있었다. 영주는 가면 하나하나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한 가면의 설명 앞에 멈춰 섰다.
"이 가면들은 직장 상사가 부당한 말을 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가면입니다. 한 번 이 가면을 사용하게 되면 똑같은 상황에서 늘 같은 가면만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 설명 뒤에 놓인 가면은 총 4개가 있었다. 한 가면은 세상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밝게 웃고 있었고, 다른 한 가면은 눈썹을 잔뜩 올리고 입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다. 또 다른 가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마지막 가면은 눈만 웃고 있고 입술은 일자 모양으로 굳게 닫힌 모습이었다.
영주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와 커피 한 잔을 하면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생활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부장이 팀장을 불렀다. 자리로 돌아온 팀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저기, 회사에서 신변 잡다한 사생활 이야기 나누지 말라고 하시네."
아직 점심시간이 10여 분 정도 남아 있었지만 동료들이 각각 제자리로 돌아갔다. 영주의 마음은 이미 활화산이 되어 마음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신변 잡다한 사생활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고? 2025년 대한민국에서 저게 할 수 있는 말인가? 근무 시간도 아니고 쉬는 시간인데?'
한 번 끌어 오르기 시작한 마음이 좀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일그러진 마음이 점점 더 모양새를 잃어가고 있었다. 영주는 대학 때 학생 운동을 하며 정의를 외치던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어야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음을 부여잡고 남은 시간을 보냈다.
영주는 어떤 가면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첫 번째 가면, '어떤 상황에서든 포커페이스로 표정을 관리하는 가면'을 쓴다면 표정만큼이나 마음이 편해지고 유연해질 것인가?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번째 가면, '완벽하게 내 마음을 드러낸 것'이 가면은 내 마음도 속이지 않고 다른 사람도 속이지 않은 가면이다. 영주는 그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적어도 속마음과 겉모습이 일치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 영주가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품은 삶의 신조 같은 것이었다. 세 번째 가면 '완벽하게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다' 영주는 평생 이렇게 살아보지 못했다.
"좋은 거 싫은 거 모두 얼굴에 드러내고 살면 네 손해인 거여"
영주의 엄마는 말하며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영주를 타박했다.
네 번째 가면, '눈은 웃고 있지만 입은 일그러져 있으니, 완벽하게 내 마음을 숨긴 것은 아니다.' 저 정도의 가면이라면 내 마음도 속이지 않고 상대가 나를 자세히 관찰한다면 알아챌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 살짝 마음이 동하기도 했다.
"이 걸로 주시겠어요?"
"잘 선택하셨네요. 이 가면으로 하루하루 행복하세요."
주인장의 웃음이 뭔가 미적지근하게 느껴졌다.
"구입한 가면으로 일어난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매장 문에 새겨진 글자 틈으로 첫 번째 가면을 쓴 주인장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매장에 들어섰을 때 주인장의 얼굴이 어땠는지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