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처음 만난 날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내가 일 하던 식당에서였다. 전 남편과 헤어지고 고향을 떠나 충주에 가서 식당 일을 하며 미용 기술을 배우던 때였다. 식당 안으로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들어오는데 얼굴이 훤하고 눈매가 시원한 데다가 꼭 다문 입술이 다부진 인상을 주었다. 식당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는데, 군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오기에 고개를 들어 본 것이었는데 옛날 같으면 양반집 도련님 같이 반반한 사람이 들어와서 나도 몰래 달뜨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주인집 아주머니의 사촌 시동생이라 했다.
가게 문을 닫고 식당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연탄집 강 씨 아저씨와 그 사람, 내가 둘러앉아 화투를 치며 놀았는데 화투를 치면서도 슬며시 살펴보니 틀림없이 잘생긴 얼굴이었다.
'저 양반 배우 해도 되겠네'
신성일이 울고 가겠다 싶을 만큼 내 눈에는 보고 또 봐도 인물이 훤했다. 그날 밤 집에 와서 누웠는데 잘생긴 그 사람 얼굴이 천장에 둥둥 떠다녀 얼굴이 다 벌게졌다. 아마 요즘 애들 말로 첫눈에 반했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다음 날 식당에 출근을 하니 그 사람은 군복을 입고 식당에 와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져서 황급히 부엌으로 도망을 갔다. 아주머니가 된장찌개와 계란프라이를 하나 내오라고 해서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음식을 만들어 그 사람 앞으로 가져가는데 손이 덜덜 떨려 혼이 났다. 그 사람은 내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이 가게를 떠나 군대로 복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사람이 간 후 아주머니께서 나를 부르시고는 은근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순덕 씨, 우리 시동생 어때 보여?"
"어떻기는요. 그냥 그렇지요."
"사실은 내가 우리 시동생 소개 해주려고 오라고 했어. 우리 시동생은 순덕 씨가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육군 장교로 있는 형 하나 있어. 집에 토지가 좀 있으니 토지 팔아서 순덕 씨 미용실도 하나 차려 줄 수 있을 거야. 다리를 놔줄까? 우리 도련님은 순덕 씨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더라고."
미용실만 하나 차려준다면 살 길이 생길 것도 같았다. 남편이 바람이 나 쫓기듯 고향에 갔지만 아버지께서 죽어도 그 집 귀신이라며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 작은집이 있는 충주에 가서 작은 아버지께 헛간에서라도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간신히 더부살이를 하게 된 터였다. 작은 어머니가 이제 세상이 좋아져서 여자도 자기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시대이니 미용 기술이라도 배우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여 동네 식당에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저녁에는 미용 기술을 배우러 다녔던 터였다.
"미용실만 하나 차려준다면야 한 번 만나보겠어요."
"그래, 그럼. 내가 추진한다. 혼인을 하기는 했었는데 도련님이 입대하자마자 여자가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갔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양반 집안이라 점잖은 사람들이니까 마음고생은 안 하고 살 거야. 도련님도 배운 건 없지만 착실하고 착하니까 염려하지 말고."
"학교는 어디까지 다녔는데요?"
"초등학교에 들어갔다가 소아마비에 걸려서 마치 지를 못했어. 왜 순덕 씨가 중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이라 좀 차이가 나서 좀 그런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힘든 세상에 태어나서 다들 그렇지요. 뭐"
몇 년을 마음 고생하며 힘들게 살아온 세월이 이제는 보상을 받을 수 있겠구나 싶어 기대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 달 후 그 사람이 제대를 했고, 우리는 서로 재혼이라 충주에서 신접살림을 차려서 같이 살았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잘생긴 얼굴을 보고 사는 일도 만족스러웠다. 그 사람도 얼굴이 뽀얗고 둥그렇고 큰 눈망울, 흑비단 같은 긴 생머리의 내 모습이 고왔다고 했다. 그러나 인생은 꿈꾸는 대로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