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못 읽는다구요?"
"글을 못 읽는다구요? 아니, 여자도 아니고 양반집에서 글을 안 가르쳤단 말인가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글을 못 읽는 남자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보통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는데 소아마비를 앓았다고 했다.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다리를 펴지도 못하고 몇 달을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동네에 떠돌이 의원이 왔는데 뭔지도 모를 약재로 무릎 양쪽에 뜸을 뜨고 나서 몇 날 며칠을 고열에 시달리다가 깨어났는데 걷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로 난리통에 징용으로 끌려갔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역병에 걸려 돌아가시고 형은 군대에 가고혼자 남아 친척 집을 돌아다니며 간신히 끼니를 때우고살았노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눈물이 흘렀다.
미용실 차려준다는 말만 굳게 믿고 결혼을 했는데 그마저도 허사였다. 그 사람의 형수가 길길이 날뛰면서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통에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여 한숨만 깊어갔다. 먹고살아야 했기에 나는 동네에 있는 종이 공장에 가서 일을 했고, 글을 모르는 사람이 번듯한 직장을 갖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벌목하는 곳에 가서 날품을 팔았다. 그래도둘이서 힘을 합쳐 열심히 일을 하니 근근이 생활을 할 정도는 되었다.
형편이 조금 나아진 듯하여 남편에게 한글을 가르쳐 보려고 밤마다 한 글자씩 가르쳤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읽는 것이 나아지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외워야 할 것도 있고 군가도 있고 해서 여러 번 글을 배우려고 했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구구단은 외워서 샘은 할 줄 아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글을 모르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고 부끄러워했다. 그러면서도 글을 읽지 못하는 게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보니 그게 바로 난독증이었나 보았다.
남편이 글을 읽지 못하니 아이들이 태어나 출생신고를 한다든지, 학교를 가야 한다든지, 집문서나 행정적인 모든 일을 내가 맡아서 해야 했다. 나를 중학교에 보낸다고 하니 할머니께서 몸져누우시며 여자 아이를 가르쳐서 뭐 하냐면서 본인 죽거든 보내라고 어깃장을 놓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신식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고 여자도 배워야 세상을 밝게 살아갈 수 있다면서 기어코나를 중학교에 보내었다. 옛말에 여자 똑똑하면 남자가놀고 자기가 벌어먹고살아야 하는 팔자라고 하더니 내가 꼭 그 짝 꼴이 된 듯하여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그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라 비쩍 마른 몸이라도 강단은 있어 열심히 일을 나갔다. 바깥에서 일을 하니 그 곱고 잘생겼던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거칠어져 갔고 도끼질을 하고 톱질을 많이 해서 손가락 마디마디에굳은살이 박히고, 손등은 오래된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투박해졌다. 잠을 잘 때도 손에 도끼를 들고 나무를 치는 동작을 하곤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왔다. 부모님 살아계시고 좋은 시절 태어났다면 그 고운 얼굴로 배우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집 밖에 나가면 가게의 간판과 이정표, 신문, 모든 게 글자로 되어 있는데 글자를 모르는 그의 세상이 어떨지감히 알아챌 수도 없었다. 눈을 감은 것이나 뜬 것이나 매 한 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뉴스를 봐도 저 많은 소식을 말로만 알아들으려니 얼마나 힘들런가 싶기도 했다.캄캄한 그 사람의 세계 속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대신 그 사람은 기억력이 좋았다. 적어놓을 수 없어 모든 걸 기억해야 해서인지 길도 잘 기억하고 뭐든 봤다 하면 척척 머릿속에 담아 넣는 능력을 지녔다. 그게 캄캄한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결혼 1년 만에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그 사람을 닮아 눈에 쌍꺼풀이 얄푸리 하게 지고 콧날이 동글동글하고 얼굴이 뽀얗고 뽀송뽀송 했다. 태어나자마자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자라서 나와 마치 다 큰 아이처럼 보였다. 아이를 낳고 보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살아갈 희망이 생겼다.
"아가, 예쁜 아가, 어떻게 우리한테 왔니?"
눈을 감은 채 입을 샐쭉거리며 배냇짓을 하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아이가 젖을 힘차게 빨아대자 몸 전체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아가. 엄마의 모든 걸 너에게 줄게. 엄마는 꼭 그렇게 할 거야."
우리 아가를 위해서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이의 이름을 명옥이라고 지었다. 밝을 명, 구슬 옥. 명옥. 그렇게 명옥이는 그 남자의 맏딸로 그의 눈이 되어 캄캄한 세상을 보게 했다. 남편은 어디든 딸을 데리고 다녔고 딸은 글을 못 보는 아빠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렇게 당신의 캄캄한 세상이 밝아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