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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May 27. 2019

일상의 조각 05

대충 그린 그림

 내가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하면서, 꽤 많이 들었던 말이 "간단하게 부탁해~", "대충 그려줘도 돼."와 같은 말과 함께 오는 지인들의 그림 부탁이었다.

대부분 그들은 대가를 제시하지 않고 말을 걸어온다.

가까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이런 말을 들어왔는데, 그렇게 들으면서 깨달은 건 대충 해도 괜찮은 건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해준 결과물에 대해서 나는 점수가 매겨진다. 정말 대충 해주면 정작 저평가되는 건, 상도 없이 그림 노동을 시킨 의뢰자가 아닌 성의 없이 작업한 나다.


요즘에야 조금 나아졌지만 -아마도 내가 그런 사람들을 걸러냈기 때문- 일부 사람들이 예술을 열정 페이나 보람으로 대신하는 게 속상하다. 가치는 인정하는 척하면서 값어치는 합당하게 안쳐준다.

즐거워 보이고, 쉬워 보여서 즉 쉽게 하니까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그래서 5분도 안 걸리는 시간에 하는 캐리커쳐를 3천 원에 해주는 작가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렇게 그리기 위해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어렸을 때부터 하루 12시간 넘게 책상 앞에 서서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서는 비싼 재료비뿐만 아니라 등록금을 내며 시험기간 따로 없이 주마다 밤새 가면서 작업한 과제를 제출했다.

5분 만에 그린 그림은 5분 만에 그린 그림이 아니고, 단돈 3천 원에 판매될 그림이 아니다.

그림을 대할 때 대충 해달라고도, 대충 여기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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