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건강 사이

게으르지도 아프지도 말자

by 서리다

세종, 아주대병원 교수 이국종, 유도선수 김재범. 내 삶의 동기를 부여해주는 동시에 ‘혼란’을 안겨준 주요 인물들이다. 이들은 타인을 널리 이롭게 하는 역할을 하다 자기 육체를 망가뜨린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세종은 말년에 실명하다시피 시력을 잃었고, 이국종 교수도 왼쪽 눈으로는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김재범 선수는 폐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온 몸이 상했다.


이들의 공적과 뼈를 깎는 듯 노력해온 삶에 대해 알고 나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들처럼 이 한 몸 불살라 어떤 것에 몰입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들처럼 꼭 아파야겠냐’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순간 주춤한다. 저들처럼 살다 간 병드는 거 아닐까.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인데 아프면 도루묵이지 않나.


한 몸 던져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이 누구에게나 모든 면에서 좋은 결과를 안겨주지 않는다. 시계 도매상이었던 고(故) 이종룡씨는 1997년 IMF 외환금융위기 때문에 부도를 맞고 3억5000만원에 달하는 빚을 떠안았다. 이씨는 하루 2시간만 자고 목욕탕 청소, 신문배달, 학원차량 운전 등 아르바이트 일 평균 7개를 소화했다. 그리곤 11년 뒤인 2008년 모든 빚을 청산했다. 그는 지상파 방송에 ‘알바왕’으로 소개되는 등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됐다.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아르바이트 일을 맡았고 2009년 부채를 상환한 과정을 담은 저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2013년 대장암에 맞서 싸우다 별세했다.


이씨가 지금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와 희망을 전해줬을지 모른다. 일부 누리꾼들은 최근에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그가 이뤄낸 것들을 기렸다. 사실 그가 암에 걸린 것이 10년 넘게 이어온 아르바이트 일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가 노력한 만큼 몸이 축 난 게 아닐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열정은 일종의 미덕으로 여겨지지만 극에 달하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은연중 자리 잡고 있다.


내 몸이 의지를 따라주지 못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의 첫 심정은 대체로 ‘억울함’이다. 남들은 뛰어가고 있는데 나는 왜 여기서 주저앉아야만 할까.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계 병원인 케네디 크리거 인스티튜트의 지나영 소아정신과 교수도 마찬가지다.


지 교수는 커리어 측면에서 성공적인 삶을 이어왔지만, 한국 나이 42살 되던 해 불치병인 신경매개저혈압에 불현듯 걸린 뒤 수년간 억울한 심정을 느꼈다. 신경매개저혈압은 심장과 뇌 양 기관 사이 자율신경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발생하는 질병으로 근육통, 두통, 위장 장애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지 교수는 남편으로부터 핏불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불치병에 걸림에 따라 인생에 대한 완급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병에 걸린 이유도 이종룡씨와 마찬가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간 정력적인 삶을 이어온 점을 고려할 때 몸을 혹사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매일 열정을 불태우기로 다짐하는 동시에 과로를 피함으로써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고뇌할 수밖에 없다. 병에 걸릴지 여부는 자연의 이치라 인간이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얼마나 열정을 쏟아내는 것이 건강을 해치지 않고 적당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고뇌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로 했다. 매일 자신에게 ‘열심히 살았는가’ ‘몸이 상하지 않게 잘 돌봤는가’ 등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네’라고 스스로 답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둘 가운데 하나가 충족되지 못할 경우 남은 하루나 이튿날은 그 기준에 좀 더 부합한 일상을 보내려 노력한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균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열정과 건강 두 가치 어느 쪽도 포기해서는 안되기에, 우리는 더욱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에 예민한 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한다. 저 사람은 나보다 심신의 내구성이 더 발달했거나 단지 운 좋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주어진 결과가 나에게는 최상의 것임을 받아들일 줄도 알알면 좋겠다. 아프지 말고 게으르지도 말자. 내일 후회할 나 자신이 오늘의 나에게 해주고픈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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