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갈매기는 무엇인가
한때 예술을 꿈꾸었지만 저는 그 삶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저에게는 예술가들이 창작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고양감과 기쁨을 느낄 재능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매기의 주인공 트레플레프는 다릅니다. 그는 재능이 있고 열정이 있으며, 자신이 만든 희곡을 사람들 앞에 선보일 정도의 용기와 자신감을 갖춘 인물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예술의 형식을 꿈꾸던 그의 재능은 빛을 보지 못하고 꺾여버립니다.
이 젊고 대담한 청년의 날개를 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빛나는 재능은 어머니를 비롯한 관객들에게 외면받습니다. 심지어 그의 연극에서 주연을 맡았던 사랑하는 연인 니나도 극의 실패 이후 그를 떠나버립니다.
무명작가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트레플레프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 앞에서 좌절감을 느낍니다. 동시에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게됩니다.
트레플레프는 연속된 실패 앞에서 자신이 믿어왔던 사랑과 모든 욕구에 외면당하는 좌절감을 느끼고, 니나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세월을 흘려보내고 맙니다.
저는 그런 트레플레프에게서 인간적인 연민과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실패했지만 적어도 시도했습니다. 저는 두려움과 회피 속에서 시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는 희곡을 올렸고 자신의 길을 걸으려 애썼습니다.
이렇듯 『갈매기』는 재능의 유무나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외로움과 이해받고 싶은 갈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갈매기』는 1896년에 발표된 4막짜리 희곡으로, 이 작품은 극적인 사건보다 인간의 내면, 예술적 갈망, 사랑과 좌절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내세운 작품입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예술과 삶에 대한 각자의 욕망을 갖고 있지만 모든 것은 어긋나고 상처받은 채 끝납니다.
나이 든 여배우 아르카디나의 아들인 트레플레프는 니나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하여 그녀를 주인공으로 극을 창작하고 무대를 세워 사람들 앞에 선보입니다.
새로운 예술의 형식을 표방한 이 극은 실패로 끝나고 어머니인 아르카디나와 그의 애인이자 유명한 극작가인 트레고린은 그의 연극을 무시하고 비웃습니다. 이에 트레플레프는 깊은 상처를 받고 그의 애인인 니나마저 트레고린에게 매혹됩니다.
트레고린의 현실적인 성공에 매혹된 니나는 그와 사랑에 빠지고 여배우가 될 것이란 희망을 품습니다. 이에 트레플레프는 깊이 좌절하여 죽은 갈매기를 니나의 앞에 보여줍니다.
니나는 갈매기에 담긴 상징과 트레플레프의 진심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트레고린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납니다. 트레플레프는 깊이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아르카디나는 아들의 아픔을 돌보려 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는 길이라 믿는 것처럼요.
2년 후 니나는 트레고린에게 배신당하고 삶에 지친 모습으로 트레플레프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트레플레프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지만 니나는 자신의 인생을 찾아 다시 한번 그를 떠납니다. 트레플레프는 깊이 상처받고 자살을 선택합니다.
이들에게 갈매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 작품에서 갈매기가 트레플레프와 니나, 두 사람 모두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니나는 트리고린에 의해 쏘아진 갈매기입니다. 한때 트리고린은 죽은 갈매기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그것을 박제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그 갈매기를 보면서도 자신이 그런 부탁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트레고린에게 니나는 단지 스쳐 지나간 흥미이자 유희였을 뿐입니다. 그는 순수하고 연약한 니나를 잠시 꾀어내어, 결국 그녀의 삶을 파괴해 버립니다. 한때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갈매기처럼 니나도 자신의 꿈을 안고 세상에 날아올랐지만, 현실은 그녀를 떠돌이 배우라는 고된 삶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럼에도 니나는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상처받고 부서진 삶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트레플레프 곁에 머무르며 안주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이 나아갈 방향으로 주저 없이 떠납니다. 박제되기를 거부하는 살아있는 갈매기처럼 유유히 날아간 것입니다.
니나가 떠나가는 삶을 선택했다면 트레플레프는 죽음으로써 박제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는 살아있는 채로 의미 없는 연극을 지속하는 대신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을 선택합니다. 끝없는 오해와 외면 속에서 지친 그는 더는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삶에서 자신을 끊어내는 결단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처럼 안톤 체호프는 작품을 통해 삶의 무게 앞에서 인간이 내리는 선택이 결코 옳고 그름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끝까지 살아내기로 하고, 또 어떤 이는 더 이상 살아내지 않기로 합니다. 둘 다 인간적인 선택이며 부서진 꿈을 가진 갈매기였는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무릎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드는 날에도 우리는 하루를 살아냅니다. 누군가는 다시 날개를 펴고 떠나고 누군가는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올지라도, 결국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마주합니다.
체호프의 『갈매기』는 그런 우리에게 묻는 듯합니다. 좌절된 꿈 앞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