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희망 없이도 떠나야 한다

무감한 성장기의 그림자

by 서린

사랑하는 남자와 데이트를 하던 그날도 그녀는 그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 하자면 그녀는 사랑을 가득 담은 반짝이는 눈빛을 하고 그녀 자신이 그에게 있어 세상에 둘도 없는 연인이라는 것을 표현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시선은 창문 너머의 나무를 향하고 곧 검은 실루엣의 쥐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무를 타고 올라앉은 쥐는 너무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 '진희'는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익숙한 존재를 조우한 듯 쥐의 생김새를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진정한 삶은 삶에 대한 냉소에서 나온다고 믿으며 일찍이 삶에 대한 성장을 완성시킨 이 소녀는 인간에 대한 사랑,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도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현실과 완전히 일치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녀에게는 삶의 진리나 사물의 이면을 탐구하려는 자세는 없습니다. 대신에 삶의 충격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지켜보는 유리된 시선을 선택하면서 역설적으로 삶의 이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게 된, 약간은 불운한 운명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진희가 성장한 배경은 60년 말에서 70년대 초반으로 박정희의 독재가 극에 달했던 시대였습니다. 진희의 삼촌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반독재체제를 위해 운동권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모는 세상 걱정 없는 태도로 집에서 소소한 용돈벌이나 펜팔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 남매의 어머니인 진희의 할머니는 집안의 어른으로 마음이 넓고 현명한 인물로 틈틈이 어머니를 잃은 진희의 심정을 헤아리려 애쓰지만 진희는 그 누구에게도 속내를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진희는 어른스럽고 성숙한 시각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분석하는 동시에 어린이의 태도를 견지하려 노력합니다. 그 편이 어른들에게 비밀을 캐내기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악스러움을 가진 진희는 때로는 이성적이고,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주변의 어른들을 마음껏 평가하며 삶의 이면이라는 운명적 진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합니다.


그녀는 장군이 어머니와 광진테라 아저씨의 부인, 이모의 사랑, 그리고 허석과의 관계를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진심을 감추고 때로는 마음의 위안을 위해 거짓을 믿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이 작품에서 정확히 대비되는 인물은 장군이 엄마와 광진테라 아줌마입니다. 남 말하기 좋아하고 험담 잘하는 장군이 엄마에게서는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는데 주저함이 없지만 광진테라 아줌마로 대표되는 여성의 이미지에서 진희는 많은 것을 느낍니다.


겁탈당해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그녀는 오랜 시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그 현실 속에서 깊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듯이 한참을 서서 버스의 뒤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는 광진테라 아줌마의 모습을 보며, 진희는 몇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 사람들은 왜 떠나가는가. 그것은 지금의 삶에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한 진실 때문이다. 둘. 사람 특히 여성의 운명은 어쩌다 이루어진 우연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셋. 나는 첫 경험이라는 금기를 깨뜨릴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이모가 펜팔을 통해 만난 '이형렬'이라는 인물에게 집착하며 오로지 그만을 자신의 사랑이라 여기는 서정성을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모는 이형렬만이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라 믿으며 그에게 자기 내면의 모든 마음을 보여주고 드문드문 오는 그의 편지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쌍꺼풀 수술의 고통까지 감내한 이모의 사랑은 친구인 '경자'에 의해 배신당합니다. 절친한 친구에게 남자를 뺏긴 이모는 실연을 통해 성숙합니다.


진희는 이모의 성숙을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이란 없으며 사랑이란 것은 그저 단편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뒤집어 까져 부은 이모의 눈꺼풀에 이형렬이 더 이상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한 것입니다.


일련의 일들을 통해 진희가 '나는 더 이상 성숙할 것이 없다.'라고 자조 섞인 냉소를 자신의 삶에 던진 그 순간 삶은 또 하나의 이미지를 그녀에게 던져줍니다. 염소와 하모니카 그리고 석양의 실루엣.. 그 속에 서 있는 한 남자. 그는 삼촌의 친구로 시골집에 놀러 온 도시 청년 '허석'이었습니다.


이모와 이형렬이 헤어진 후 허석과 이모는 가까운 사이가 되어 이모를 좋아하던 마을 청년 홍기웅의 질투심에 불을 지릅니다. 그 이후 홍기웅을 완전히 거부하는 데 성공한 이모는 허석과 급히 관계가 진전되어 그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진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도대체 삶은 나에게 무슨 말을 걸기 위해 사랑이라는 질문을 던진 것인가. 허석을 향한 나의 사랑이 사라지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면 도대체 내 마음속에 남은 이미지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고요.


그것은 삶이 던지는 악의였습니다. 이모와 허석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연히도 그 사이에 생긴 아기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진희는 이모의 수술을 기다리며 삶이 던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이모와 자신에 대해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슬픔과 자신을 분리해서 관찰하는 진희의 유리적 시선은 아마 이때를 기점으로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 광증이 도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슬픔, 사랑에 배반당한 이모의 슬픔, 진희의 어머니이자 누나를 잃은 삼촌의 슬픔.. 그런 슬픔들을 똑똑히 마주 보면서 슬픔을 느끼는 자신을 유리창 바깥에서 관찰하는 이중적 시선을 견지하게 된 것입니다.


가끔 저도 마주하기 힘든 현실 앞에서 차라리 컴퓨터나 책상 같은 정물이 돼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무감각해지고 멈춰버린 상태라면 아픔도 고통도 느끼지 않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 다시 움직이고 느끼며, 삶은 그런 우리 곁을 지나갈 뿐이라는 것을

시간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진희가 성장하던 60년대에서 90년대, 지금 2020년대까지 삶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모이면 험담하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고 애인을 뺏고 뺏기고.. 우리를 이골 나게 하는 세상만사는 여전합니다.


그런 세상의 선의와 악의 사이에서 저는 진희처럼 삶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때로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주는 충격과 상처 앞에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잠시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고 내가 겪은 아픔을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우리가 쥐를 바라보듯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시대를, 그리고 삶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삶이 건네는 이야기를 이해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이해가 언젠가 우리를 과거의 성장통에서 해방시킬 것이라 믿습니다.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