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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맑음 스튜디오 Dec 18. 2022

나의 애도, 그 후

허무한 삶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서울에 올라와 직장에서 근무를 하는 동안 내 수고로움을 위해 월급날에 맥주를 마셨다. 어느 날, 스마트폰에서 월급 숫자를 표시한 산세리프 폰트가 매우 날카롭게 느껴졌다.

  차라락. 올라가는 숫자가 점수 같았다. 문방구 앞에서 플레이하던 아케이드 게임의 점수처럼, 동네의 10위까지 표기하여 '내가 지금 동네에서 2등은 하는구나', '아직 내 이름이 저기에 있구나'하는 안도감을 주는 숫자. 인기가 많은 직종인 개발자였기 때문에 연봉은 매년 올라갔고, 안도감은 계속 커갔다.



  그러다가 오랜 친구의 부고를 들었다. 누가 말하기를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느낄 때쯤, 부고의 소식을 받게 된다고 한다. 나는 올해 여러모로 애도가 잦았다. 누가 나를 떠나거나, 누가 세상을 떠나거나 했다. 이별이라는 범주의 타원 안에 사별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깨달은 이치가 없는 스물아홉에 떠올랐다.



  친구가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의 눈 주변에서 유루증(눈물흘림증)을 앓아 생긴 것 같은 짙은 적갈색을 보고 돌아왔을 때, 내가 달성한 월급에 대한 허무를 느꼈다. 무슨 100억을 가져본 것도 아닌데도 허무가 깊었다.

  그렇다고 돈이 싫은가? 물론 나도 버스 안보다 벤츠 안에서 울면 좋겠다. 돈에 대한 선호도를 대답하려고 한 말이 아니다. 돈은 당연하게 좋다, 하지만 괜한 허무가 싫다. 돈이 더 생겼는데도 느끼고, 돈이 더 없어서도 느끼는 그 허무가 싫다는 의미이다.

  


  나는 눈물은 나질 않았다. 바싹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얼굴 바깥으로 나오는 것은 없었다. 이게 내 마음마저 메마른 인간이었다기보다, 마음 안에서 끓어 기화되어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물이 아니라 내쉬는 숨으로 슬펐다. 후 우우. 후, 흑. 후우. 한숨 중간에 막히는 소리를 냈다.



  나의 애도는 눈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반대로 이 허무의 경험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살지, 무엇을 남길지, 어떻게 살지를 주변에 물어보게 되었다. 평소라면 슬픔이 아니라 약점을 공유하는 것일까 두려워 혼자 앓기에 바빴지만 이번엔 굳이나 공유를 했다. 주변을 믿었다.



  내게 이런 일이 있다, 슬프다.

나까지 이런 삶이 무슨 소용인지, 내가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사업을 하는 어떤 형은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 자기가 없어도 돌아갈 것이고, 그게 내 직원들에게 남을 것이라고. 그래서 '시스템'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불임 끝에 시험관 수술로 아이를 가진 지인 분은 자기는 가족과 아이를 만들어 '나'라는 유전자를 대를 이어 남기고 싶었다고 한다.

  다른 누구는 그런 건 없다고 했다. 뭘 남기겠다는 생각이 없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한다고. 사막 안의 바늘을 찾듯, 인생 안에 의미를 찾을 게 아니라 내가 어차피 살아가는 인생에 무슨 의미를 스스로 부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며 부여하는 의미는 그때그때 달라진다고 말했다.



키우던 석화 나무에 새 잎이 폈다.



  그럼 나는,

나는 존엄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존엄으로부터 나왔으면 한다. 내가 하는 작업이, 내가 만든 산출물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주변을 배려하고,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다. 그런 친절한 작업물을 만들고 싶다. 그것으로 나는 많은 것을 애도하고 싶다. 내 그런 마음이 담긴 작업물이 숭고해지고 주변에게 남아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어 해결하고 싶다. 공존하고 싶다. 이끌지 않고 이끌리게 하고 싶다. 모두를 부유하게 만들지 않고 서로 *부육할 것을 약속하고 싶다. 행여나 이게 돈이 안될 것이라고 말해도, 돈이 되게 만들고 싶다. *피도, 땀도 아닌 눈물로부터 일하고 싶다.

  친구를 위한 애도 그 후, 산 정상에 올라 땀 가득한 외투의 지퍼를 내리며 깊은숨을 토해내듯,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최근에 엽서를 디자인하고, 인쇄하여 주변인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나는

"그거 주변에 점 하나하나 다 찍은 거야. 매일 두 시간씩"하며 웃는다.

그리고 꼭 이어 말한다.

"참 어려운 시기잖아, 내년은 더 힘들다고 하고. 다들 잘 버티고, 떠나지 않고. 잘 지냈으면 좋겠어"




*부육하다 : 도와줘서 기르다.

*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어요. 딱 하나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눈물 즉 박애예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어요.... (중략)... 우리에겐 어느 때보다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절실합니다" - 1월 2일, 고 이어령 교수의 조선일보 인터뷰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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